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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림공작소 Apr 26. 2020

짐 캐리와 카메론 디아즈의 리즈 시절

아흔 여섯번째 영화, 마스크를 보고


마음대로 구분해보자면 짐 캐리의 영화는 얼굴 근육을 얼마나 쓰느냐에 따라 3가지로 나뉜다. 영화에 따라 그는 진지한 연기, 코믹을 양념처럼 섞은 연기, 그리고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자유자재로 얼굴 근육을 움직이는 연기를 한다. 이터널 선샤인이나 트루먼 쇼, 마제스틱 같은 영화에서는 진지한 연기를 볼 수 있고, 브루스 올마이티나 예스맨 같은 영화에서는 주특기인 과장되고 코믹한 연기가 양념처럼 등장한다. 그리고 덤앤더머나 케이블 가이, 라이어 라이어 같은 영화는 포스터나 사진만 봐도 범상치가 않다. 


슬랩스틱 코미디를 즐기지 않는 나는 3번째 타입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중학생 때 라이어 라이어를 극장에서 보는 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3번째 타입의 영화는 라이어 라이어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보지 않았는데, 아내의 추천으로 마스크를 보게 됐다. 넷플릭스에서 살짝 나온 예고편이 생각보다 재미있길래 덥썩 물었는데, 기대보다 훨씬 만족스러웠다.


사람은 참 단순하다. 마스크를 쓰면 초록색 피부의 사람 같지 않은 형상을 하게 되니, 과한 슬랩스틱 코미디를 해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마치 알리타에서 사람과 똑같이 생긴 로봇을 로봇이라고 생각해버리면 신체 절단 장면도 잔인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라이어 라이어 같은 영화에서는 잘생긴 얼굴을 이리저리 망가뜨려 가며 연기를 하면 내가 다 민망할 때가 많았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런 장면이 거의 없었다. 딱 한 번 마스크를 써도 변하지 않았을 때가 있었는데, 그 정도는 다른 짐 캐리 영화에 비하면 극히 양호한 편.


그런 민망한 점이 걷히고 나니, 짐 캐리의 코믹 연기를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히어로가 되겠다며 선언하고 몇 분 뒤에 은행을 털고, 경찰에 포위된 상태에서 단체로 춤을 추는 약 빨고 만든 것 같은 스토리나 설정, 그런 말도 안 되는 것들마저 납득이 되게 만들었다. 26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런 분야에서는 정말 독보적인 존재인 듯.


또 하나, 영화를 보는 내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강아지 마일로의 디테일한 연기였다. 아마 26년 전 영화가 아니라 요즘 영화였으면, 캡틴 마블의 고양이처럼 CG라고 100% 생각했을 것이다. CG가 아니고선 설명되지 않는 연기가 많았는데, 도대체 어디까지가 진짜일지, 어떻게 찍었을지가 너무 궁금하다. 무엇보다도 마일로 덕분에 감옥에서 탈출하는 씬이 백미.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기로 하기 전까지 카메론 디아즈가 나오는지도 몰랐었다. 카메론 디아즈는 미녀 배우를 꼽을 때 언급되는 배우는 아닌데, 이 영화만큼은 누구보다도 매력적으로 출연한다. 이제는 은퇴를 선언한 배우인지라 리즈 시절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이 영화의 상당한 장점이기도 하다. 


재미있게 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슬랩스틱 코미디 자체를 좋아하게 된 것은 아니라서 여전히 다른 짐 캐리 영화는 선뜻 손이 가질 않는다. 최근 작품 중 화제가 된 작품은 별로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이터널 선샤인 같은 영화 하나만 더 만들어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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