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 일곱번째 영화, 남산의 부장들을 보고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그리 느꼈겠지만, 개봉 전에 선 공개된 영화 이미지나 포스터부터가 남다른 영화였다. 헤어 스타일과 안경 하나로 그 시대 사람이 되어버린 이병헌과 그 시절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곽도원, 그리고 그냥 박정희 대통령이 되어버린 이성민까지. 캐스팅만 찰떡인 게 아니라, 사진의 포쓰부터가 달랐다. 사진과 포스터만으로 분위기에 빠진 영화는 곡성 이후 처음인데, 이런 영화는 결국 뚜껑을 열었을 때 기대를 충족시키기 쉽지 않다. 나에겐 곡성이 너무나 어려운 영화였는데, 이 영화는 기대를 충족시키고도 남았다. 개봉 초기에 미루고 있다가 결국 코로나 때문에 놓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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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프로그램 방구석1열을 보면, 영화 초반에 관객을 이쪽 세계로 불러들이기 위한 연출이 중요하다고 한다. 판타지든 현실적인 영화든 몰입을 하려면 “아, 여기는 이런 세계구나!”라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건데, 이병헌은 그냥 아무 말이나 한마디만 하면 훅 빨려든다. 내부자들도 이 영화도 영화 시작은 이병헌의 몇 마디로 시작되고, 그것으로 초반 작업은 끝난다. 물론, 그 후에도 이병헌이 끝까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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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는 박용각, 데보라심, 곽상천과의 관계가 파악되지 않아 살짝 루즈했지만, 본격적으로 곽상천과 대립각을 세우고, 박용각이 사건의 중심에 들어선 이후에는 완전히 몰입해서 볼 수 있다. 후반부에는 김부장이 한 나라의 대통령이자 자신의 보스인 박통을 직접 처단하기로 마음먹기까지의 과정이 그려진다. 단순히 하나의 이유가 아니라 여러 이유가 켜켜이 싸인다. 곽상천에게 밀리며 입지가 좁아지기도 하고, 회고록 유출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기도 하고, 국민들에 대한 정책의 방향이 극명하게 나뉘기도 하고, 미국과의 관계 또한 자신을 더욱 억누른다. 결정적으로 자신 또한 언제든지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한다. 이런 장면은 이병헌의 명대사 “나한테 왜 그랬어요? 말해봐요”를 떠올리게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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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하나의 과정마다 이병헌은 감정을 폭발시키고 절제하는 장면들이 수시로 나오는데, 그때마다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화를 참지 못해 씩씩거리며 걷다가도 감정을 추스르며 머리를 매만지는 모습, 말할 필요조차 없는 눈빛과 심지어 동공과 눈두덩이의 떨림 등 도대체 어디까지가 연기가 되는 건지 신기할 따름이다. 특히, 마지막 사건에서의 연기는 백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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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당연하게도 10.26사태다. 우리 모두가 아는 그 사건이 결말이기 때문에 모두가 스포일러를 당하고 영화를 보는 셈인데, 연기 덕분에 숨죽이고 보게 된다. 이병헌이 총을 꺼내기 전에 긴장이 역력한 상태나 모든 것이 끝난 뒤에 방을 나서다 피에 미끄러져 넘어지는 장면, 다 끝났다는 마음에 조금씩 긴장이 풀린 상태에서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 차에서 행선지를 고민하는 표정 등은 정말 감탄 밖에 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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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도 이 영화에 대해서는 영화 외적인 이야기가 훨씬 많다. 좌파네 우파네 미화네 아니네 등.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이니 이런 이야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당연하지만, 영화 시작할 때 나오듯 영화적 상상력이 가미되었기 때문에 이 영화에 대한 정치적 해석은 그다지 의미가 없을 듯하다. 이 영화 덕분에 없던 관심도 생겼으니 이번 기회에 팩트가 어디까지인지 알아보고 싶어지기도 했고, 어릴 때 봐서 기억이 안 나는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이란 영화가 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역사 영화의 역할은 딱 이 정도까지라고 생각한다. 관심의 환기. 진보나 보수 모두 도찐개찐으로 보는 나로선 누가 옳다 그르다 말하고 싶지도 않다. 영화에서 나왔던 “모두가 나쁜 놈들”, “세상이 바뀔 것 같아? 이름만 바뀌지”라는 대사에 끄덕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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