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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림공작소 May 21. 2020

영화는 편집의 예술임을 증명하다

백 한 번째 영화, 펄프 픽션을 보고


무려 26년 전의 영화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세련된 영화. 감독을 비롯한 주요 출연자가 아직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레전드들이 모여있는 영화. B급 감성이라 하지만 안 어울리게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나의 한심한 기억력이 고마운 영화이기도 하다. 18년쯤 전에 한 번 보고 이번에 다시 봤는데 정말 기억나는 내용이 하나도 없었다 :) 상당한 비중의 주연임에도 불구하고 브루스 윌리스가 나온다는 사실조차 다시 보면서 알게 됐으니.


두 번을 봤지만, 솔직히 이 영화의 메시지가 확 와닿지는 않는다. 그저 영화는 편집의 예술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될 뿐. 2시간 30분이 넘는 긴 영화이지만, 따지고 보면 몇몇 등장인물에게 발생한 우연한 사건 사고가 엇갈려있을 뿐이다. 그러나 3가지 이야기를 교묘하게 엮고, 스토리 텔링 순서를 마구잡이로 한 덕분에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 아마도 이야기가 발생한 순서대로 배치하면 분명 엔딩도 심심하게 느껴졌을 테고, 영화도 밋밋했을 것이다.


타란티노의 영화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메시지와 복선을 찾아내는 수준까지는 아니다. 그저 길고 긴 수다와 폭력 (잔인한 영화는 안 좋아하는데 이상하게도 끌린다), 그리고 적재적소에 잘 쓰이는 음악을 좋아한다. 이 영화가 그의 초기작이긴 하지만, 이미 스타일이 확립된 덕분에 요즘의 타란티노 영화와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라 낯설지 않다.


그중에서도 영화의 러닝타임을 꽉 채우는 수다를 좋아한다. 도대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는 수다도 있고, 기묘하게 연결되어 복선 역할을 하는 대사들도 있다. 그 의미를 생각하는 재미도 있지만, 어쨌거나 무슨 말을 하든 분위기가 점점 쪼여오는 맛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 한스 대령의 수다 씬을 최고로 꼽지만, 이 영화에서도 그런 장면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특히, 햄버거 이야기로 시작해 성경 에스겔 25장 17절로 마무리되는 장면 또한 만만치 않다. 사무엘 잭슨의 열연으로 긴장감이 점점 올라가면서 총성과 함께 폭발되는 씬이 타란티노의 전매특허가 아닐까.


그리고 뒤섞인 시간의 배치 덕분에 다른 영화에서 보기 힘든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주연 배우가 죽는 장면이 그러한데, 굉장히 담백(?)하게 그려내서 상당히 놀랐었다. 주연급 배우들은 보통 죽기 직전에도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죽는 게 태반인데, 말 한마디 해보지 못하고 죽는 장면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스토리 텔링을 시간순으로 했다면 절대로 하지 못했을 연출인데, 시간을 뒤섞은 덕분에 인상적인 그림이 만들어졌다. 영화 중간에 대놓고 스포를 한 덕분에, 곧 허무한 죽음을 맞이할 것도 모른 채 낄낄거리는 모습을 보면 묘한 감정이 든다. 누가 봐도 악인인데 안타깝기도 하고.


영화가 끝나고 이런저런 읽을거리를 찾아서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펄프 픽션은 특히나 볼 게 정말 많다. 특히 유튜브의 ‘요런시점 movie’ 채널에서 깊이 있는 분석을 해준 것을 정말 재미있게 봤다. 위키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은데,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에서 닉 퓨리 묘비에 에스겔 25장 17서가 적혀있는 것도 재미있다.


이제 타란티노 영화는 헤이트풀8과 재키 브라운만 남았다. 영화 안 찍겠다고 엄포를 하는 바람에 아껴가며 보는 중인데, 일단 빨리 본 다음에 또 기억이 사라질 때쯤 다시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완벽하게 다 까먹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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