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다섯번째 영화, 세븐을 보고
우리 부부는 영화를 고를 때 대부분 둘 다 안 봤고 둘 다 보고 싶은 영화를 고르지만, 가끔은 둘 중 한 명이 봤지만 강력 추천하는 영화를 같이 보곤 한다. 난 기억력이 아주 꽝이라서 내가 아주 오래전에 재미있게 본 영화도 처음 보는 영화처럼 몰입해서 보는 경우가 좀 있는데, 이번에 본 세븐도 그런 경우에 속했다.
영화의 제목 7은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하나는 연쇄살인마가 살인의 모티브로 쓰고 있는 7가지 죄악,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서머셋 경사(모건 프리먼)의 은퇴까지 남은 기간인 1주일이다. 이 1주일은 영화에서 다룬 시간이기도 하다. 즉, 이 모든 연쇄살인은 7일 동안 발생한 이야기이다.
마치 고담 시티 같이 암울한 도시에서 오랜 기간 형사 생활을 한 서머셋 경사의 공백을 메울 밀스 형사(브래드 피트)가 이 도시로 오게 되었는데, 시작부터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게임을 하는 듯한 도발적인 살인이 계속된다.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살인마를 쫓는 추격과 뒤엉켜 싸운 끝에 응징하는 흐름이 일반적일 텐데, 이 영화는 곳곳에서 예상을 빗나간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가 24년 전 영화라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다.
이 영화의 주된 분위기는 암울하고, 보고 나면 찝찝한데, 그럼에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렬하다. 나는 17~18년 만에 다시 보는 것이라서 세세한 것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덕분에 초중반은 처음 보는 영화처럼 봤지만, 그래도 마지막만은 기억이 생생했다. 잊히지 않았다. 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강렬한 마무리는.
무려 24년 전 영화인데 낯설지가 않다. 1995년이면 응답하라 1994에서 비추던 그 시절 이건만, 이 영화는 지금 봐도 세련됐다. 주조연으로 등장하는 브래드 피트, 모건 프리먼, 귀네스 팰트로, 그리고 케빈 스페이시까지.. 이 4명의 배우는 아직도 주연급으로 롱런하고 있다. 너무나 익숙한 얼굴들이라 낯설지가 않을지도 모른다.
데이빗 핀처 감독은 정말 몇 안 되는 믿고 보는 감독인데, 영화 연출이 뜸해서 좀 아쉽다. 러브, 데스+로봇 같은 실험작도 좋지만, 그래도 2014년 이후 연출작이 없다니. 새 작품이 나오기 전까지 아직 못 본 영화라도 보고 있어야지. 머지않아 아직 보지 못 한 조디악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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