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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림공작소 Jun 02. 2019

비와 계단, 두 가지로 그려낸 한국 사회

쉰 일곱번째 영화, 기생충을 보고


몇 년 전부터 봉준호 감독의 신작 기생충에 대한 소식이 들려올 때, 기대감은 별로 없었다. 설국열차나 옥자와 같이 거대한 자본이 들어간 것 같지도 않고, 유명한 헐리우드 배우가 출연하는 것도 아니었다. 뭔가 자본이 크게 들어가는 영화를 몇 개 한 뒤에 힘을 빼고 쉬어가는 영화를 만드는 건가, 전염병과 관련된 영화려나, 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웬걸. 그 영화가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단다. 상을 받았다고 해서 무조건 재미있으리라는 법도 없지만, 그래도 내 생각처럼 쉬어가는 영화는 절대 아닌 것 같아서 개봉일날 극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내 예측은 다 틀렸다. 기생충은 전염병의 확산을 막느라 고군분투하는 영화도 아니었고, 영화제 수상작이라고 해서 지루하거나 의미만을 강조하는 영화도 아니었다.


초반에는 의외로 가볍고 코믹하다. 가난한 백수 집안에 고정 수익의 찬스가 생겼고, 기우(최우식)가 가족들을 하나둘 끌어들이는 모습은 개그 포인트가 넘쳐났다. 여담이지만, 극장에서 크게 웃는 편은 아닌데, 살인의 추억 초기 수사 장면에서 정말 빵빵 터지면서 웃었던 기억이 난다. 봉감독님의 개그코드가 잘 맞는 듯 :)  여하튼, 기우 가족이 모든 계획을 성공시키고 기쁨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 모두가 웃으며 파티를 하는데 그렇게 불안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사건이 터졌다. 다만,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터졌지만. 이후 내용은 스포가 되어서 여기서 그만.



영화에서는 줄곧 계획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인생을 살며 깨달은 사실이 '절대 실패할 리 없는 완벽한 계획은 무계획'이라는 기택(송강호)의 말이나, '근본적인 대책이 생겼다며 돈을 아주 많이 벌면 된다'는 기우의 말은 웃기면서도 씁쓸하다. 그런데 이 말이 그저 영화적인 대사만은 아니다. “돈만 많으면 우리나라처럼 살기 좋은 나라가 없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그리고 맞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인 적도 많았는데,  이 소리나 그 소리나 무슨 차이가 있나 싶기도 하다.


또 기억에 남는 건 빗 속에서 가족들이 박사장의 집에서 자신들의 집으로 뛰어가는 장면이다. 골목길을 내려가고, 계단을 내려가고 또 내려간다. 우리나라에 저런 계단이 있나 싶을 정도로 계단을 열심히 뛰어 내려가고, 또 터널도 한참을 달려서 집에 도착한다. 누군가에게는 미세먼지를 씻어준 덕분에 가든파티를 할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비였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온 집안이 물에 잠기고 똥물이 역류되어 결국 이재민 신세가 되어 체육관에 모이게 만든 야속한 비다. 비와 계단, 이 두 가지로 빈부 격차를 효과적으로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 비와 계단이 전혀 쌩뚱맞지 않고 전체 스토리에 녹아들었다는 점이 훌륭하다. 간결하면서도 명확하다.


그밖에 봉테일이라는 별명대로 디테일이 살아있는 점들이 많았다. 필라이트로 시작해서 삿포로 맥주, 그리고 양주까지 가는 장면의 연결은 소소하지만 재미있다. 언제나 해피엔딩을 추구하는 감독은 아니기에 이번에도 결말은 파격적이고 기분도 유쾌 상쾌하지는 않지만,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영화였다. 보는 사람마다 감상도 다 다를 수 있는 영화이기에, 다른 시각도 기대되는 영화다. 또, 내가 놓친 다른 디테일한 장치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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