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림공작소 Sep 01. 2019

이토록 훈훈한 예능

일흔아홉 번째 영화 아닌 예능 프로그램, 유퀴즈 온 더 블럭을 보고


유재석이 처음으로 케이블의 문을 열고 시작한 아이템은 본인이 정말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 아이템인 길거리 토크쇼였다. 무한도전 때도 멤버 각자가 하고 싶은 것을 해보라고 하면, 마이크와 상 하나 짊어지고 거리로 나섰다. 그리고 꼬마들과 인터뷰를 하곤 했는데, 안타깝지만 재미없었던 코너로 기억한다. 그런데 또 그 아이템이라니… 유재석을 좋아해서 보긴 봐야 할 것 같은데, 별로일 것 같았다. 그런데 30회 이상이 방영된 지금, 내 최애 프로그램 중 하나가 됐다. 


이 프로그램은 딱 1년 전에 시작했는데, 이 당시에 퀴즈 아이템이 인기였다. 잼라이브를 비롯하여 모바일 앱도 많았고, TV와 모바일을 연계해서 진행되는 퀴즈쇼도 있었다. 퀴즈의 정답을 맞히면 100만 원을 준다는 설정은, 그런 분위기에 편승한 것 같았다. 그런데 어디까지나 미끼(?)였다. 처음 보는 사람과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고, 자연스레 헤어지기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라고 해야 할까. 주된 내용은 나와 다를 바 없는 일반 시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는, 무한도전 때 (내가 생각하기엔) 실패한 아이템과 차이가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때와는 다르게 재미가 있다. 심지어 의외의 중독성마저 있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마다 드라마가 있고, 코믹이 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의외의 곳에서 터지는 포인트가 있어서 계속 보게 된다.


아무래도 한 번 나온 시민이 또 이슈가 되는 일은 없어서 재미있게 본 이야기도 잘 생각은 안 난다. 사넬 미용실이라든가 갤러리 과장님이라든가 잔소리와 충고의 개념을 완벽하게 정의한 꼬마라든가 두고두고 회자되는 그런 사람들은 기억이 나지만, 다른 사람들은 잊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최근에 본 한 할머니의 에피소드는 잊히지가 않는다. 수원에 방문했을 때다. 파는 메뉴보다 안 파는 메뉴가 더 많은 중국음식점의 주인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먼저 보낸 이야기를 하는데, 그게 그렇게 찡할 수가 없었다. 마지막에 주저하다 돌아가신 분께 영상편지를 제안하는 장면, 할아버지가 알려준 기술로 용돈 벌며 산다는 편지, 그리고 할아버지가 함께 하는 일러스트까지.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근래 본 영상 중 가장 찡했다. 어떻게든 보여주고 싶은데 유튜브 같은 곳에 영상이 없다 ㅠ


시즌2 들어서는 유재석, 조세호의 토크쇼 외에 따로 공통 질문에 대한 답변만 보여주는 부분이 늘었다. 하나의 질문에 대해 각자가 다르게 생각하는 것을 균형감 있게 보여줘서 좋았다. 예를 들면, 워라밸에 대한 주제를 다룰 때 굳이 다수가 듣고 싶어 하는 답 위주로 편집을 하지 않는다. 힐링, 워라밸만 강조하며 감성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었겠지만, 자영업자들에 대한 시선도 놓치지 않은 점이 좋았다. 매회 주제에 대해 다소 오글(?) 거리는 방식의 접근을 하지만, 그게 마냥 오글거리게만 보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너무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은 촬영이 힘들 것 같은데, 쉴 때는 쉬면서 무리하지 말고 부디 오래갔으면 좋겠다. 사돈의 팔촌까지 다 나오는 가족 예능이 판치는 세상에서, 하고 싶은 아이템을 해서 유재석 본인도 즐겁고 함께 한 시민도 즐겁고 보는 시청자도 즐거운 프로그램이니. 



배경화면 다운로드 받기

아이폰 X (1125 x 2436), 16:9 고화질 (1080 x 1920) 이미지를 받으실 수 있어요.   




다른 매거진의 최신 글


매거진의 이전글 픽사의 가장 만족스러운 속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