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관을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 근무하는 분들과 긴 대화를커녕 짧은 소통도 해 본 경험이 별로 없답니다. 낯선 장소에서 시설을 사용할 때 작동이 잘 안 되어서 문의를 구할 때도 대개의 경우는 아무 말 없이 고쳐만 주거나 사용하는 방법을 몸으로 보여 주기가 일쑤입니다. 템플스테이를 하려고 실상사의 종무소에 도착했을 때 숙소로 이동하기 위해 종무소 문을 나서자마자 "실상사에 대해 아시나요?"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시간이 허락하는 만큼 충분히, 재미있게 설명을 해 줍니다. 이 대화를 시작으로 누구를 만나더라도 눈인사를 나누면서 먼저 말을 걸어 옵니다. 그리고 회주 스님인 도법 스님에게 배운 불교 내용을 절에서 근무하는 분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로 전해줍니다. "소를 타고 소를 찾는다"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 표현이 너무 재미 있어서 속으로 무척 웃었던 기억이 있어요. 알 듯 모를 듯한 이 한 문장은 실상사에서 머무는 시간 동안 모든 사람들에게서 적어도 한 번씩은 듣게 되는 말입니다.
"소를 타고 소를 찾는다."
불가에서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죽기 살기로 애쓰는 사람을 이와 같이 표현합니다. 이미 소를 타고 있는데 그 사실을 모르니 계속 소를 찾는 거죠. 깨달음이란 그저 '내가 소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그걸 모르면 미욱하고 어리석은 것이죠.
소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알 때와 모를 때, 둘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소를 탄 줄 모르면 계속 소를 찾으러 다녀야 하기 때문에 현재의 삶을 살 수가 없어요. 계속 소만 찾아서 헤매게 돼요. 불교의 깨달음을 얻겠다고 선방에 틀어박혀 수행만 한다면 이 깨달음이라는 소를 찾느라고 현재의 삶은 사라집니다.
반면에 소를 찾으면 그때부터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상황에 맞춰서 뭐든지 할 수 있죠. 밭을 갈아야 할 상황이면 소를 몰고 가서 밭을 갈면 되고, 놀고 싶으면 소를 타고 옆 동네에 가서 유유자적 놀다 와도 되죠. 내게 필요한 삶, 즉 현재의 삶을 온전히 사는 게 가능해지는 거예요.
출처: 책 <오래된 질문> 154-155쪽
한국 불교에 대해 관심이 큰 영국 옥스퍼드 생물학의 대가가 삶의 고통, 두려움, 자신에 대한 성찰 등을 주제로 전국의 사찰 4곳을 직접 방문하고, 주지 스님들과 나눈 대화를 담은 책 <오래된 질문>에 실린 내용입니다. 저는 찾고 있는 것이 있을 때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곳을 찾았고, 또 저처럼 자기 내면에 담긴 질문을 탐험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리트릿을 디자인합니다. 우연히 실상사를 들렸는데 그곳에서 제 가슴과 머리가 신나게 작동을 하는 것을 알아차렸답니다. "소를 타고 소를 찾는다"는 말에 그렇게 숨통이 트인 것도 아마 저의 이런 상태를 반영했다고 느껴져요.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짚어 내는 것은 셀프케어 스킬 중에서 "정면돌파하기, " "구체적으로 바라기, " "선언하기" 등 여러 가지가 필요합니다.
자기 성찰을 할 수 있는 스폿들이 다양하게 펼쳐져 있답니다. 있는 그대로, 혹은 창의적인 시도로 여러분들이 찾는 질문을 넣어 보고, 대답도 마음껏 시도해 보길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