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5일 화요일
나보다 나를 더 집요하게 파고든 알고리즘은 나를 한 세계에 꼼짝없이 묶어 놓기도 하지만 이따금 새로운 세계로 나를 이끈다. 그날도 '이거 어때요?' 하고 그간 들여다볼 일 없었던 입시생들의 피아노 블라인드 테스트 과정을 추천했다. 평소라면 관심을 주지 않고 그냥 지나쳤을 텐데, 무슨 바람이었는지 영상을 클릭했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힘을 쏟는 학생들의 모습을 한 참 들여다봤다. 피아노를 잘 치고 못 치고는 그리 중요치 않았다. 눈길을 사로잡은 건 그들의 태도였다. 잔뜩 긴장해 실수를 하고, 실수가 또 다른 실수를 불러온 아쉬운 테스트였지만 평가를 듣는 학생들은 담담했다. 마치 자신이 반드시 넘어서야 할 벽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는 듯 보였다. 나는 그들이 보인 태도에 압도되었고, 정신을 차렸을 땐 유명 피아니스트와 협연한 오케스트라 공연을 연이어 시청하고 있었다. 찰나의 추천영상 하나가 불러온 날갯짓은 나를 점점 더 멀리, 너머의 세계로 데려갔다.
선율과 그 선율을 따라 포개어진 연주자의 언어, 협연자들의 하모니에 푹 빠져 지내는 동안 의식의 흐름은 그들이 가진 아우라(aura)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아마도 몇 주 전 모 미술 평론가의 말이 무의식 속 어딘가에 자리 잡은 탓이리라. 그는 기본기를 갖추기 전에 유명세에 기대어, 혹은 마케팅의 수단으로 상업 미술에 뛰어드는 건 작가로서 자신의 아우라를 파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작품은 작가의 의도가 담긴 한 세계이므로 그에 맞는 품위나 품격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고도 전했다. 물론 품위나 품격이라 함은 기본기 위해 쌓아가는 실력을 말한다. 몇몇 주변인들에게는 직접 물어보기도 했다. '무엇이 아우라를 만드는가' 하고. 이 생을 통해 어떤 언어(방식)로 어떤 세계(메시지)를 구현하고 싶은지, 이때 지켜내야 할 아우라는 무엇인지, 아우라를 앗아가는 유혹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적게는 두 시간, 많게는 며칠간 이어졌고 이야기는 지금까지 변모하고 있다.
그동안 나 역시 나만의 언어와 세계에 대하여, 아우라를 지키기 위한 방법과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무언가를 이룬다는 건 시간과 비용, 에너지는 물론 인간관계와 타이밍까지. 아주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요소들이 집합된 결과이기에 사실상 명료하게 정의하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한계를 요새삼은 안정감을 경계하고 이를 돌파하고자 하는 의지, 한계를 등지지 않고 기어코 마주하려는 용기가 저마다의 세계를 확장시키고 견고히 하는 초석임은 분명해 보였다.
안을 향하던 시선을 뒤로하고 돌아서서, 기꺼이 감수하고 견뎌야 할 시간들을 가늠해 보았다. 아무도 모르게 오롯이 혼자일 때 완성될 벽 너머의 세계를 상상하며.
글 글리
사진 gryffyn m(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