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단둘이 걷던 때가 그립습니다

by 김콤마

오늘의 말씀

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 / 어디든 좋으니 나와 가줄래

—박보검, <별 보러 가자>



묵상

박보검은 잘 생기고 인성 좋은 것으로도 모자라 노래까지 잘하네요. 저도 이번 생에 착한 일 많이 하면 다음 생엔 저렇게 태어날 수 있을까요?


박보검이 부른 저 노래를 들으면 항상 비슷한 광경이 떠올라요. 신혼 시절에 저녁이면 아내와 산책하던 때요.


저녁 먹고 소화시킬 겸 나가는 거예요. 옷은 집에서 입던 편한 옷 그대로 입고, 신발도 편한 거 대충 꿰신고, 필요하면 모자도 푹 눌러쓰고. 동네 도는데 멋 부릴 필요 없죠.


그때 살던 곳은 아파트 단지 뒤로 먹자골목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어요. 이런저런 식당과 술집에 개성 있는 카페도 많아서 평일 저녁에도 거리에 적당히 사람이 있었죠.


둘이서 손 잡고 그렇게 적당히 북적이는 저녁 거리를 걷는 거예요. 저는 제가 왁자지껄한 분위기의 한복판에 있는 건 별로 안 좋아하지만 그렇게 남들이 웃고 떠드는 공간의 언저리에 제3자로 슬쩍 끼어 있는 건 좋아해요. 너무 한적한 곳보다는 그렇게 남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곳이 좋더라고요.


별은 안 보여도 여기저기 켜진 가게의 불빛이 별처럼 빛났어요. 선선한 저녁 공기 속에서 말없이 걷기도 하고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기도 하고 우리 다음에 저 식당 가보자, 저 카페 가보자, 하고 나중에 가서는 귀찮다고 안 지킬 다짐도 했었죠.


그러고서 동네 오락실에 가서 펌프로 땀 빼고 터덜터덜 돌아오면 기분 좋게 하루가 마무리됐죠. 별거 없이 둘이 그냥 걷는 것뿐이었는데도 그 시간이 참 좋았어요.


그립습니다. 이제는 집에 아이 혼자 두고 나갈 수가 없어서 그런 산책은 꿈도 못 꿔요. 더욱이 최근에 이사 온 동네는 주변에 상가가 별로 없고 저녁이면 아파트 단지 안 말고는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제가 좋아하는 적당히 북적이는 분위기가 아니죠.


돌아보면 그렇게 둘이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신혼 기간을 3년 정도 보내고 아이가 태어난 게 참 다행이다 싶습니다. 그때 쌓아 놓은 부부간의 정이 있기 때문에 지금 육아에 치여서 밥 먹을 때 빼고는 대화할 시간도 부족하고 저녁이면 같은 침대에 누워서도 각자 할 일 하는 삶을 살아도 여전히 곁에 있는 것만으로 행복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육아 스트레스 때문에 싸움은 예전에 비해 잦아졌어도 화해는 예전만큼 잘하는 것도 그 때문인 것 같고요.


언제 또 단둘이 손잡고 저녁 산책을 할 수 있는 날이 올까요. 억돌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은 돼야 할 테니까 앞으로 10년은 더 남았네요. 그 사이에 벤츠(아직 생기지도 않은 둘째에게 아빠가 벤츠는 물고 태어나란 뜻으로 붙인 태명)가 태어나면 또 늦춰지겠죠.


뭐, 괜찮아요. 어디 안 나가고 집구석에 누워 있는 것도 좋아하니까요.


그러고 보니 예전에 대학원 다닐 때 동기 형님이 했던 말이 기억나네요. 형님과 형수님과 딸 둘, 그렇게 네 식구가 집에 같이 있으면 항상 엠티 온 것처럼 재미있댔어요. 참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집도 그렇게 만들어보죠. 비록 엠티 같은 것 귀찮다고 갖은 핑계로 빠지기 좋아했던 성격이긴 하지만.



기도

굳이 별 보러 가지 않아도 유리 천장으로 별 볼 수 있는 집을 지어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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