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짜릿한 차

by 김콤마

오늘의 말씀

드림카.. 제게도 드림카가 있는데요. 평생 드림으로만 남을 것 같아 속상합니다.

<나의 드림카>​에 달린 서윤​ 작가님의 댓글



묵상

지난번에 제 드림카는 캐딜락 에스컬레이드라고 했는데요, 사실 제겐 드림카가 여러 대입니다. 에스컬레이드는 현시점에서 최종 단계의 드림카이고(추후 변경 가능) 그 전 단계에서 타고 싶은 새끼(?) 드림카들이 또 있어요. 예를 들면 볼보 V60 크로스컨트리, 벤츠 GLC, 제네시스 G90 등등.


1단계 드림카는 BMW 미니였어요. 원래 저는 관심 없던 브랜드였는데 아내가 연애 시절부터 미니만 지나가면 그렇게 자기도 몰아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우리는 둘 다 장롱면허에 BMW(버스, 메트로, 워크) 이용자였고 당장 그런 차를 살 여건도 되지 않았어요.


그러다 아내가 아직 여자 친구이던 시절에 대전으로 직장을 옮기고 저도 1년 후 대전으로 따라내려갑니다. 서울에 살 때는 대중교통이 워낙 잘 갖춰져 있어 BMW(역시 버스, 메트로, 워크)로도 큰 불편을 못 느꼈는데 대전은 일단 지하철이 극히 일부 지역에만 다니고 제가 집을 변두리에 얻어서 그런지 차로는 15분이면 갈 거리를 버스로는 환승까지 해 가며 1시간을 가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없는 돈에 중고차 한 대 뽑았습니다.


2005년식 SM3. 그때가 2014년이었으니까 이미 9년 된 차였죠. 그래도 잘 타고 다녔어요. 무려 작년, 그러니까 2018년까지요.


그 차는 이런 말 하면 차에게 미안하지만 한마디로 똥차였습니다. 아니, SM3 전체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제가 타던 차가요. 초보다 보니 남의 차에는 안 박아도 기둥에 박고 쓰레기통에 박고 쇠파이프에 박고 해서 여기저기 찌그러졌고, 또 어떤 개새…… 나쁜 사람이 왼쪽 문 두 짝을 시원하게 찌그러뜨려 놓고 연락도 없이 튀었는데 범인을 못 잡았어요. 맨날 끌고 다니는 게 아니다 보니 언제 그렇게 됐는지 알 수가 없어서요.


그걸 또 안 고치고 그냥 탔습니다. 돈 아까워서요. 전후좌우 어디 하나 성한 데가 없었죠. 그러니 누가 봐도 똥차였어요.


오죽하면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밤 10시쯤에 회식에 간 아내를 데리러 갔어요. 회식 장소 근처 골목길에 들어서서 천천히 가고 있는데 누가 창문을 똑똑하는 겁니다. 창문을 열어보니 아내 직장 동료들이에요. 한밤에 어두운 골목길에서도 대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독보적인 똥차였던 거지요.


아내가 임신하고도 그 차를 계속 끌고 다녔는데요, 이제 출산이 임박해지니까 이 차로는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옛날 차라 요즘 차들만큼 안전하지 않은 게 걸렸어요. 그래서 이 차 저 차 알아보다 QM6를 계약했습니다.


근데 계약하고 나서도 기쁘지가 않은 거예요. 차가 나쁜 게 아니라 우리가 원하던 차가 아닌데 적당히 가격 맞춰서 선택한 차였거든요. 그래서 둘이서 조금은 시무룩하게 길을 걷고 있는데 바로 앞에 미니 컨트리맨이 나타난 겁니다. 아, 얼마나 아름답던지요! 그 무렵에는 저도 아내에게 세뇌가 됐던지 미니, 그중에서도 컨트리맨이 드림카였거든요.


그래서 기왕에 차 알아보기로 한 것 비싸서 못 사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시승하고 가격이라도 알아보자 했습니다. 이튿날 당장 시승 예약을 하고 내친김에 또 다른 드림카였던 볼보 XC40도 시승 예약을 했죠.


대망의 시승일. 사실 미니는 승차감이 형편없다는 평이 많은데요, 타보니까 그렇지도 않았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타던 SM3는 과속방지턱을 넘으면 뒷좌석에 앉은 사람들이 “이 차는 쇼바가 없나?”라고 감탄(?)할 정도로 승차감이 안 좋았거든요. 예, 쇼바가 없었어요. 센터에서 쇼바 찢어졌다고 갈겠냐는 걸 어차피 뒤에 사람 잘 안 태우고 다닌다고 그냥 놔뒀거든요.


그런 차를 타고 다녔으니 어느 차를 탄들 승차감이 좋으면 좋았지 나쁠 수가 없었죠. 시승 결과 컨트리맨은 브레이크가 좀 민감해서 차가 다소 급하게 멈추는 감이 있는 것 빼고는 딱히 단점이 없었습니다.


가격을 알아보니 마침 2019년식이 나와서 얼마 안 남은 2018년식 재고를 500만 원쯤 할인해주더라고요. 저희가 계약했던 QM6와 몇 백 밖에 차이 안 났습니다. 그 자리에서 일단 계약했죠. 계약이야 언제든 취소하고 계약금 돌려받을 수 있으니까요.


미니 매장을 나와서 볼보에 갔는데요, 시승차가 없대요. 분명히 예약했는데 없대요. 그리고 딜러의 태도가 “사려면 사시든가”였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볼보 신형 XC 시리즈가 계약하고 차를 받기까지 몇 달을 기다려야 할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었거든요. 그러니 시승 예약을 받고도 시승차 없이 손님을 맞지요. 할인이야 당연히 없고요.


볼보는 딜러의 대응도 기분 나쁘고 할인 없이는 가격이 부담스러워 탈락시켰습니다.


미니와 QM6 중에서 저울질을 했어요. 과연 우리가 수입차를 사는 게 분수에 맞는가 하는 게 가장 큰 쟁점이었는데요, 우리가 간신히 턱걸이할 분수는 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남들은 차 2대씩 끄는데 우리는 제가 집에서 일하니까 1대로 충분했어요. 그러니까 남들 2대 살 돈을 1대에 투입할 수 있었죠. 그리고 제가 벌이가 시원찮지만 아내는 저보다 괜찮거든요. 또 아내가 워낙 짠순이라 그간 모아놓은 돈도 좀 있었고요.


그래서 미니 컨트리맨으로 결정했는데, 차 사보신 분들은 다 걸려보셨죠? ‘기왕에’병. 기왕에 사는 거 몇 백 더 보태서 한 등급 위로 올라갈까, 하다 보면 처음 생각했던 차와 몇 광년 떨어진 차까지 올라가게 되는 병이요.


저희가 미니를 선택한 것도 기왕에병 때문이었는데 거기서 끝나면 병이라고 할 수도 없죠. 2018년식은 가격이 싼 대신에 저희 마음에 쏙 드는 색상이 남아 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기왕에 사는 것 돈 더 주고 2019년식 원하는 색깔로 갈까, 고민했죠. 결과적으로 기왕에병의 승리였습니다.


2018년식 취소하고 2019년식으로 선택했어요. 대신 딜러와 줄다리기 한 끝에 처음에 제시받았던 2019년식의 할인가에서 더 할인을 받았습니다. 딜러가 이제 막 일을 시작해 컨트리맨은 팔아본 적이 없었던 터라 가격 협상에 적극적이었던 게 도움이 됐어요.


그리하여 우리의 1호 드림카였던 미니 컨트리맨이 우리 차가 됐습니다. 요즘 웬만한 차에 다 들어가는 반자율주행기능은 없지만 장거리 달릴 때는 번갈아 가며 운전하면 되니까 괜찮아요. 그리고 최하위 트림이라 운전자 바뀔 때마다 수동으로 시트 위치 조절해야 하고 트렁크 문도 수동으로 여닫아야 하지만 팔 튼튼하니까 괜찮아요. 차선 변경할 때 바로 옆에 차가 붙어 있으면 알려주는 사각지대 경보장치가 없지만 둘 다 기본적으로 숄더 체크하는 습관이 붙어 있으니까 괜찮아요. 그 밖에 같은 가격대의 국산차와 비교하면 크기도 작고 없는 것도 많지만 다 괜찮아요. 드림카니까요.


보통 신차를 사면 차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신차 효과가 한 달쯤 간다고 하죠? 저희는 이 차 구입한 지 8개월쯤 됐어요. 그래서 이젠 차 타도 무덤덤하냐고요?



예, 아직도 탈 때마다 짜릿합니다. 제가 초심을 잘 잃는 사람인데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초심이 유지돼요. 너무 좋아요.


사기 전에 고민 참 많이 했지만 저도 아내도 후회 안 해요. 대만족입니다. 아니, 후회해요. 이 좋은 걸 왜 이제 샀냐고.


오늘은 참 구구절절 떠들었네요. 사실 차 사고 자랑하고 싶은데 대전에서 또 아내 따라 전혀 연고 없는 곳으로 이사 와서 친구들은 1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하고 그 외에 차 자랑할 만큼 친한 사람이 주변에 없어서 몇 달 동안 입이 근질근질했거든요. 아, 오늘 소원 성취했네요.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도

이 차 팔 때까지 늘 새롭고 짜릿한 느낌이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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