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번역이 천직이라 생각했는데

by 김콤마

오늘의 말씀

비슷한 사회적 지위와 비슷한 월급을 두고 9명은 생계수단으로 보았고, 7명은 커리어, 8명은 소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중략) 소명으로 보는 사람들이 일과 삶에 대한 만족도가 나머지 그룹보다 높았어요. 직업 자체보다는 자기 직업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개인의 관점과 의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장영학, 어서 와, 리더는 처음이지?



묵상

번역을 공부할 때, 그리고 실제로 번역가가 됐을 때만 해도 저는 이게 천직이라 생각했습니다. 이 일을 평생 할 수 있다면 평생 할 것 같았어요. 일하는 게 힘들어도 즐거웠죠. 제 역서가 하나하나 늘어나는 것도 큰 기쁨이었고요.


근데 번역을 시작한 지 11년이 지난 지금은 솔직히 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 하나 싶습니다. 번역이 싫은 건 아니에요. 여전히 재미있을 때가 많고 책 한 권을 끝낼 때마다 성취감을 느껴요. 새 책 작업 들어갈 때는 설레기도 하고요.


하지만 갈수록 답답해요. 제가 생산하는 원고는 어디까지나 남의 글을 우리말로 다시 쓰는 거에 불과하잖아요. 그러니까 자꾸만 눈치를 보는 느낌이에요. 글 속에 담긴 저자의 의중을 파악해서 그걸 최대한 저자의 문장과 닮은 문장으로 옮겨야 하니까 저자의 눈치를 보게 되고요, 또 그렇게 나온 글이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읽혀야 하니까 독자의 눈치를 보는 거죠.


저자와 독자 사이에서 번역가가 움직일 수 있는 폭은 그리 넓지 않아요. 조금만 엇나가도 오역이 되거나 발번역이 되거든요. 그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유지하는 게 번역의 묘미이긴 하지만 그만큼 심리적으로 부담스럽고 피곤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힘든 만큼 벌이라도 좋으면 좋을 텐데 번역가 10명을 붙잡고 물어보면 아마 10명 다 소득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할 거예요. 좋은 번역문을 만들려고 애쓰는 것에 비해 번역료가 짜다는 거지요. 최근 들어 감사하게도 제 번역료가 오르긴 했지만 솔직히 아직도 충분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앞으로 오른다고 해도 선배 번역가들의 글을 읽어보면 상한선이 어디일지 빤히 보이고요.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제 소명으로 여겼던 번역이 이제는 단순한 생계수단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 것 같아요.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 그저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 쪽으로 기울고 있단 거죠.


이 문제의 해법은 잘 모르겠습니다. 저만 아니라 많은 노동자가 고민하는 문제이기도 하겠죠. 그리고 마땅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아 하던 일을 억지로 계속 하거나 아예 다 때려치우거나 하는 것이겠고요.


제가 번역을 때려치우면 뭘로 먹고살 수 있을까요? 아직 제 글로 먹고살기에는 콘텐츠도 역량도 부족해요. 근데 할 줄 아는 건 글 쓰는 게 다예요.


그러면 별수 없군요. 꾸준히 쓰면서 내가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콘텐츠를 발굴하고 그것을 맛깔나게 전달할 수 있도록 글쓰기 역량을 키우는 수밖에.


번역 공부를 할 때 선생님이 번역가는 결국에 가서 자기 글을 쓰고 싶어 진다고 하셨을 때 나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어요. 창작의 고통이 싫어서 번역을 택했거든요. 근데 이제는 선생님 말씀이 이해가 가네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1년간 매일 쓰겠다고 다짐하길 잘했어요. 객관적 근거는 없지만 왠지 이 시기를 잘 견뎌내면 작가의 삶이 날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요.



기도

아, 솔직히 작가고 나발이고 다 떠나서 그냥 일 안 해도 먹고살 만큼 돈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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