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 으…
—억돌이, 잠에 겨워서
요즘 억돌이(8개월)를 재우는 건 아내의 몫입니다. 억돌이가 저녁 6시 반부터는 엄마만 찾거든요. 그전까지는 아빠랑 잘 있다가도 그 시간이 되면 엄마한테 붙어서 안 떨어지려고 해요. 엄마가 안고 있다가 아빠에게 넘겨주려고 하면 고개를 홱 돌리고 엄마에게 팔을 뻗어 매달리려 합니다. 섭섭하냐고요? 네, 무척 섭섭하죠…… 는 무슨! 엄마만 찾으면 아빠는 애 안 봐도 되고 좋죠!
아이 잠도 아내가 재워요. 아내가 억돌이 침대에 같이 누워서 억돌이가 잠들 때까지 기다립니다. 잠든 줄 알고 나오려고 하면 고개를 번쩍 들고 엄마를 찾아서 다시 누울 때도 많아요. 7시 반에 눕히고 8시 반이 되어야 나오기도 합니다. 아내가 힘들다고 하소연을 몇 번 했어요.
“그럼 내가 재울게. 나 쿨가인 거 알지? 애 울어도 그냥 두고 나오는 거.”
네, 저는 정말 그럽니다. 애가 좀 울어도 그냥 울라고 놔둬요. 아내는 애가 울면 가슴이 아프다는데 저는 쿨가이라 그런 거 없습니다. 전에는 그래도 아내가 저한테 애 재우는 걸 맡겼는데 언제부턴가 아이에게 애착이 강해졌는지 제가 애를 울리면서 재우는 방식을 못 미더워하더라고요. 그러니 어쩌나요. 자기가 재워야죠.
근데 요즘 들어 애 재우는 거 때문에 아내의 잔소리가 심해져서 오늘은 제가 재우기로 했습니다. 일단 준비물부터 챙겨야죠. 미니 선풍기, 휴대용 전등, 책. 선풍기는 제 거예요. 억돌이는 자기 거 큰 거 있거든요. 그리고 전등과 책은 억돌이가 어느 정도 잠들 때까지는 제가 방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필요했습니다.
자, 준비물 다 챙겨서 억돌이 안고 방에 들어갔어요. 일단은 안은 채로 노래를 부릅니다. 제 레퍼토리는 섬집 아기, 과수원 길, 언덕 위의 집, 스와니 강, 옛날의 금잔디, 오솔레미오예요. 일부러 가요를 배제하는 건 아니고 제가 가사를 제대로 외운 노래가 없어서 못 불러요. 저 노래들은 다 학창 시절 음악 시간에 배운 거고요.
노래는 아빠가 부르지만 억돌이는 닫힌 방문을 보며 엄마를 찾습니다. 울어요. 하지만 아빠는 쿨가이라 너는 울어라 나는 부른다 모드입니다. 결국 억돌이가 잠에 취해 아빠의 어깨 위로 고개를 떨굽니다. 그러고도 아이가 몇 번이나 고개를 들었다가 떨구기를 반복한 후 완전히 어깨에 기대면 그제야 침대에 내려놓습니다.
그렇다고 순순히 잘 억돌이가 아니죠. 침대에 등이 닿는 순간 오만상을 쓰며 울어요. 그래도 저는 그냥 놔둡니다. 계속 노래를 부르다가 울음이 좀 잦아들었을 때 바닥에 앉아 책을 펼쳤어요. 그리고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참고로 오늘 읽은 책은 은유의 ⟪출판하는 마음⟫입니다. 좋은 책이에요. 출판에 한 다리라도 걸친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책을 좀 읽다 보니까 어느새 억돌이의 울음이 그쳤어요. 뭐 하나 보니까 침대에서 어떻게든 잠을 이기려고 이리저리 뒹굴다가 엎드린 상태에서 두 팔로 바닥을 짚고 상체를 번쩍 듭니다. 그러다 저와 눈이 마주치니까 배시시 웃어요. 저도 같이 웃어주고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그러고 또 소리 내서 읽는데 문득 어릴 때 기억이 났어요.
언제인진 모르겠어요. 초등학생 때였는데 제가 아팠던 것도 같고 아니었던 것도 같고, 시간은 아마 저녁 7시쯤이었을 거예요. 거실 바닥에서 깜빡 잠이 들었던가 봐요. 눈을 뜨니까 집 안이 어둑어둑해요. 그리고 그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아버지의 등이 보입니다. 아버지가 나를 등지고 앉아 있었는데 그 등이 너무나 크고 듬직해 보였어요. 어두운데도 무섭지 않았어요. 아빠가 나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요.
그 장면이 2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에 박혀 있습니다. 그때 느꼈던 안도감이 아직도 생생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금 제일 그리운 것도 그 크고 듬직한 등입니다. 힘들 때 언제든 방어막이 되어줄 것 같은 그 등이요. 물론 어머니에게 기대도 되지만 다 큰 사내 자식이 어머니에게 기대는 건 왠지 못나게 느껴져요. 어쩌면 아버지는 그렇게 듬직했던 시절에 돌아가셔서 영원히 제게 듬직한 사람으로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억돌이가 어둠 속에서 잠과 씨름하는 동안 책을 읽고 있으니 그때 그 아버지의 등이 떠올랐어요. 그리고 내가 지금 아버지와 똑같은 등을 억돌이에게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둠 속에서 빛나는 등(책 읽으려고 켜놓은 전등 때문이지만).
그 느낌이 좋았습니다. 듬직한 아버지가 된 기분이었어요.
책을 좀 더 읽고 있으니 옆에서 억돌이가 부스럭거리던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돌아보니까 잘 자네요.
그래서 등을 끄고 일어서는 순간, 아이가 또 고개를 번쩍 들어요. 제가 나가려는 것을 눈치채고 울상이 됩니다. 히이잉히이잉 울어요.
하지만 저는 쿨가이. 우는 아이에게 “잠 못 자겠으면 불러. 그러면 다시 올게”(억돌이는 아직 말을 못 합니다만)라고 말하고 쿨하게 방문을 닫고 나옵니다. 억돌이는 5분 정도 울다가 잠이 들었어요. 아빠는 자기가 혼신의 힘을 다해 울지 않는 이상은 다시 들어오지 않을 거란 걸 아는 것 같아요. 그렇게 힘 빼느니 그냥 자자, 하고 포기했을 거예요, 아마.
아이가 저녁이면 엄마 찾는 게 당연해요. 자기를 따뜻하게 품어줄 가슴이 있으니까요. 저는 없습니다. 다만 어둠 속에서 빛나는 등짝이 있을 뿐.
제가 억돌이가 손주 볼 때까지 살 계획인데 그러려면 건강 관리를 잘해야 하잖아요? 근데 요즘 게을러져서 운동도 잘 안 하고 다시 야식에 손을 댔어요. 정신 차리게 해 주세요. 그렇다고 무슨 시련 같은 거 주시진 말고요. 좋은 게 좋은 거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