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오빠, 오빠! 빨리 와봐!
나: 왜애! (왜 또 호들갑이야!)
서재에서 일하고 있는데 억돌이 방에서 아내가 다급하게 저를 부릅니다. “왜 또 호들갑이야!”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오려는 것을 꾹 참습니다. 어제 글에 쓴 것처럼 “호들갑 좀 떨지 마!”라고 했다가 괜한 호들갑이 아니었던 것으로 밝혀져서 민망해지지 않으려고요. 대신 ‘왜 또 호들갑이야!’라는 마음을 담아 “왜애!”라고 대답하며 억돌이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억돌이 혼자 일어나서 앉았어!”
네, 그랬습니다. 억돌이가 몇 주 전부터 바닥에 앉혀주면 잘 앉아있었지만 엎드린 상태에서 혼자 일어나 앉지는 못했는데 드디어 오늘 그걸 해낸 겁니다.
“오빠도 봐야 했는데 나만 봤어.”
네, 아쉽습니다. 아이의 첫 경험은 뭐든 자기 눈으로 보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이니까요.
그런데 잠깐? 억돌이 방에는 베이비캠이 설치되어 있어요. 억돌이가 아직 고개를 마음대로 못 가눴을 적에 혹시라도 자다가 침대에 코 박고 호흡곤란이 올 경우에 즉시 조처할 수 있도록 설치해 놓은 거예요. 촬영 범위 내에서 움직임이나 소리가 감지되면 바로 폰으로 알려주거든요. 다행히 그렇게 위험한 상황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기특하게도 알아서 살 길 잘 찾더라고요.
요즘은 이 베이비캠을 억돌이 방 염탐하는 용도로 써요. 주로 애가 자다 깨서 으응, 으응, 하고 기척을 낼 때 잠이 완전히 깼는지, 아니면 다시 잠들 여지가 있는지 확인할 때 씁니다. 바로 방에 들어가면 백퍼 깨서 안고 나와야 하니까요. 또 이 녀석이 이제 깰 때가 됐는데 뭐하나 하고 볼 때도 씁니다. 그럴 때 가끔은 진작 깨 놓고 아무 소리도 없이 침대에서 뒹굴뒹굴할 때가 있어요. 아직 돌도 안 된 녀석이 천장 보면서 멍 때리고 있으면 쟤가 무슨 생각을 하나 싶습니다.
이 캠이 말했다시피 움직임이나 소리가 감지되면 폰으로 알려주기도 하지만 그 시점의 영상을 SD카드에도 저장해줘요. 그래서 혹시 억돌이가 혼자 일어나 앉는 장면이 저장됐을까 해서 찾아보니까 과연 있습니다! 억돌이가 두 팔과 무릎을 바닥에 대고 궁둥이를 앞뒤로 몇 번 흔들더니 벌떡 일어나는 장면이 생생히 찍혔어요. 바로 폰에 저장했죠. 이런 건 기념 영상으로 갖고 있어야 하니까요. 나중에 가서 별로 의미 없다고 지우더라도 말이죠.
베이비캠은 이렇게 아이의 사생활에서 못 보고 놓친 순간을 복원하는 용도도 있습니다.
억돌이가 할 줄 아는 게 많아지니까 점점 더 체력이 딸려요. 어서 아킬레스건염이 나아서 다시 운동하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