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니네 아빠는 엄마 안 울려.
—아내, 억돌이에게
억돌이는 아침부터 심상치 않았습니다. 서재에서 일하고 있는데 거실에서 자꾸만 소리를 지르고 웁니다. 안 그래도 오늘 번역이 잘 안 풀려서 스트레스받는데 그 소리까지 듣고 있자니 속에서 뭐가 욱 치고 올라와 몇 번이나 소리를 지르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습니다.
마음을 추스르고 거실에 나가니 오전 내내 억돌이를 보느라 고생한 아내가 울기 직전입니다. 마침 곧 점심시간이어서 점심거리 살 겸 제가 억돌이를 데리고 나갔습니다. 아빠가 아기띠를 매니까 아직 자기를 안기 전인데도 좋아서 헤벌쭉하더니 아기띠에 들어다 앉히니까 아주 캉캉춤을 추듯 발길질을 해댑니다.
운전 시간까지 포함해 1시간쯤 돌아다녔더니 돌아오는 길에 카시트에서 입을 헤 벌리고 곯아떨어집니다. 지금 자지 말고 집에 가서 자라고 몇 번이나 외쳐봤지만 아직 돌도 안 된 애한테 통할 리가 없죠.
집에 와서는 또 쌩쌩해요. 차에서 꼴랑 5분 자놓고서요. 하, 미치겠네.
점심을 먹고 저는 일하고 아내가 또 억돌이를 봅니다. 1시간쯤 지나서 억돌이가 졸린 기색을 보였는지 아내가 침대에 눕히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리고 이후로 30분 정도 아내의 한탄이 이어졌습니다.
“그만 좀 일어나고 좀 자!”
자라고 눕히면 벌떡 일어나 앉고 또 눕히면 앉는 거예요. 졸리면서도 안 자겠다고 시위하는 거죠. 지가 그렇게 벌떡벌떡 일어나 놓고는 졸리다고 짜증이란 짜증은 다 내요.
억돌이 방에 들어가니까 아내가 또 울기 직전이라 제가 아내를 내보내고 억돌이 침대 옆 바닥에 누웠습니다. 그리고 억돌이가 앉든 말든 울든 말든 가만히 누워서 책을 읽었어요. 아내와 씨름하느라 기운이 다 빠졌던지 억돌이는 이내 잠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끝난 게 아니었어요. 잠깐 자고 일어나서는 또 아내와 지지고 볶습니다. 제가 중재하러 갔을 땐 이미 아내의 울음이 터진 후였어요. 종일 시달리다가 결국엔 둑이 무너진 거죠.
오늘 억돌이는 유독 심하게 보채고 짜증을 냈어요. 장염 때문에 똥을 많이 싸느라 똥꼬가 헐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똥은 자꾸 나오는데 똥꼬가 아프면 네, 신경질이 날 만하지요.
근데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참는 것도 한계가 있잖아요. 안 그래도 아내는 요즘 장모님이 오셔도 억돌이가 내내 엄마를 찾는 통에 잘 쉬지 못해서 기진맥진한 상태였는데 오늘 결국엔 한계에 다다른 거죠. 그래서 결국엔 아이 앞에서 눈물을 보였습니다. 억돌이야 아직 그게 무슨 일인지 모르니까 그런 엄마를 보면서 아까부터 내던 짜증이나 마저 냈고요.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세 식구가 같이 외출했습니다. 저는 원래 연재 글 쓰러 카페에 갈 예정이었는데 도저히 둘만 놔두고 갈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러고서 3시간을 밖에서 여기 갔다 저기 갔다 돌아다녔어요. 중간에 억돌이가 싼 똥이 기저귀 밖으로 새서 카시트에 묻고, 그 똥 싼 놈을 안고 다닌다고 제 팔에 똥냄새가 배긴 얘기는 안 할게요. 푸드코트에서 저녁 먹는데 내내 소리를 질러댄 얘기도 안 하고요.
다행히 억돌이는 긴 외출이 만족스러웠던지 집에 와서 금방 잠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우리 부부는 그야말로 영혼이 탈탈 털려 있었습니다. 몸도 뻐근한 게 꼭 체육대회 마치고 온 것 같았어요.
우리가 애를 종일 집에만 두는 것도 아니고 누가 됐든 매일 1시간 이상은 데리고 나가는데 왜 이렇게 집에 있으면 짜증을 내는지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또 식당 같은 데 들어가서 앉혀 놓으면 소리를 질러대니까 계속 어디든 걸어 다녀야 해요.
좁은 동네에서 갈 곳도 별로 없는데 정말 환장하겠습니다.
억돌이를 낳았을 때 육아 선배인 친구가 이제 지옥문이 열렸다고 했는데 무슨 뜻인지 날마다 절감합니다. 근데 그때 친구가 이렇게 덧붙였어요.
“이제 겨우 1센치 열렸을 뿐이야.”
주말이면 장모님 댁 가니까 내일만 잘 버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