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돌이, 백화점 가서 옷 한 벌 사줘라.
—우리 엄마
엄마가 그랬어요. 억돌이 태어나고 좋은 일 많으니까 복덩이한테 좋은 옷 한 벌 사주라고.
지금까지 억돌이가 입은 옷 거의 다 물려받거나 중고로 산 거고 새 건 선물 받은 것과 만 원 안 넘는 옷 몇 벌이 다였어요.
아내가 워낙 짠순이여서 새 옷 좀 사주라 해도 안 사줘요. 제일 최근에 산 게 제가 억돌이랑 둘이 행사장 가서 사 온 8,000원짜리 짱구 잠옷이었습니다. 아내가 없었으니까 샀지, 같이 갔으면 분명히 비싸다고 못 사게 했을 거예요.
아내는 자기 옷도 저렴한 보세나 초특가 할인하는 브랜드 옷만 사요. 그나마도 요즘은 회사 안 다닌다고 옷 자체를 안 삽니다. 저도 같이 살다 보니 물들어서 옷 잘 안 사고 사도 주로 마트나 아웃렛에서 할인하는 옷 위주로 사요.
그런데 짠순이 아내가 어제와 오늘 이틀 연속으로 억돌이에게 새 옷을 사줬습니다! 추석이라 어른들 뵙는데 억돌이가 멋 낼 옷이 없어서요. 한복은 동네 벼룩시장에서 5,000원 주고 산 게 있는데 일상복은 차려입었다 싶은 가을 옷이 없어서요.
어제 위아래 세트로 29,000원, 오늘은 역시 세트로 59,000원, 이틀간 무려 88,000원을 억돌이에게 썼습니다. 억돌이 9개월 인생에서 최고로 비싼 옷들이에요.
전 지금 너무 뿌듯합니다. 옷은 억돌이가 입는데 제가 한이 다 풀린 기분입니다. 명절 분위기에 편승해 아내가 지갑을 열도록 슬쩍 옆구리를 찌른 제 자신이 너무 대견스럽습니다.
억돌이 옷 산다고 큰돈 썼으니까 저는 명절에 그냥 있는 옷 입고 가야겠네요. 그래도 괜찮아요. 빛나는 건 억돌이 하나면 충분하거든요.
억돌이가 뭘 걸쳐도 광채가 나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