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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이라이트 May 07. 2018

번역가 지망생에게 주는 조언

한 달쯤 전에 번역가 지망생 한 분을 상담해 줬다. 그분의 마지막 질문이 인상적이었다. “끝으로 혹시 제게 조언해주실 말씀이 있나요?”


잠깐 고민했다.


나는 원래 조언 같은 것 잘 안 한다. 내가 뭐라고 남의 인생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나, 내 인생 하나 잘 챙기면 됐지, 주의다. 하지만 번역에 대해서라면 나도 이 바닥에서 10년을 굴러먹었으니 적어도 지망생에게 조언 한 마디 정도는 할 짬이 되는 것 같다.


그분에게 나는 처음 번역을 배웠을 때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을 그대로 전했다. 그게 뭔가 하면…….


김 빠지게 바로 공개하지 말고 내가 번역가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로 돌아가 볼까. 난 고등학교 때부터 번역가가 꿈이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1순위는 게임) 영어도 곧잘 하니까 무엇을 하면 내가 티를 안 내도 사람들이 우러러볼까 하는 유치한 과시욕에서 나온 장래희망이 번역가였다.


그래서 대학도 영문과가 있는 인문학부에 들어가 1학년을 마치고 순조롭게 영문과에 진학했다. 그런데 나는 뭘 몰라서 영문과에 들어간 것이지 번역가가 되기 위해 굳이 어문학과를 나올 필요는 없다. 요즘 어문학과만 나와서는 취업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인 것처럼 번역계에서도 일감을 구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멋모르고 한 소리였습니다. 죄송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번역가들은 무엇을 전공했을까> 참고).


사실 나도 바로 그 취업 문제 때문에 영문과에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경영학을 복수 전공으로 선택했다. 번역가가 꿈이면서 취업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번역가가 되는지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는 믿을 만한 정보가 없었고 그렇다고 주변에 이쪽으로 줄이 닿아 있어 업계의 현실을 말해줄 사람도 없었다. 그러니 별수 없이 회사에 들어가는 쪽으로 진로를 계획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대학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취업 준비를 할 겸 휴학을 했다. 마침 그때 어느 외국계 IT 기업에서 번역 직군 인턴을 구한다는 공고가 떠서 바로 응시했다. 회사에서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공식 사이트의 게시물 하나를 번역해서 지원서와 같이 제출한 게 먹혀서 면접까진 갔다. 최종적으로 불합격하긴 했지만 30분 앉아서 묻는 말에 대답만 한 게 다인데 면접비로 3만 원이나 받았으니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다.


낙방의 충격이 가셨을 즈음(사실 그런 것은 받은 적도 없지만) 우연한 기회에 번역가 OO열 선생님의 블로그를 알게 됐고 거기서 지금 내가 속한 OO번역에서 번역가 지망생을 위한 아카데미를 개설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어차피 휴학한 차에 인턴도 떨어져 남는 게 시간이었으니 고민 없이 바로 등록했다.


기초반과 심화반 중 기초반에 들어가 수업을 듣고 과제로 일부분이나마 책을 번역해보니 재미있었다. 그전에도 인터넷 기사 같은 것을 취미 삼아 번역해본 적 있었지만 도서 번역은 그것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재미있었다. 이게 내 일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기초반을 가르치는 김OO 선생님도 내 과제물을 보고는 당장 일을 맡아서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고 높이 평가해주셨다. 그리고 기초반 과정을 마치는 날,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OO씨, 솔직히 이 일이 남자에게는 권할 만한 게 못 돼. 돈도 명예도 안 따르는 일이야. 나중에 결혼 못 할지도 몰라.”


그리고 이게 바로 내가 얼마 전 번역가를 지망하는 분에게 해준 조언이기도 하다. 그분은 여자였지만 어쨌든 돈도 명예도 따르지 않는 일인 것은 똑같으니까 이 일이 정말로 자신이 좋아서 할 수 있는 일인지 잘 따져보라고 했다.


그런데 나로 말하자면 그 말을 들었을 때 이미 취업할 생각은 접고 번역가가 되기로 결심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런 비관적인 전망을 듣고도 결심이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게는 다른 꿍꿍이랄까, 비빌 언덕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된 일인가 하면…… 그즈음에 일면식도 없던 교수님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내가 관여하고 있던 작은 모임과 관련된 일이었는데 알고 보니 그분이 우리 학교 번역대학원 소속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번역대학원이란 게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우연한 기회에 그런 분과 인연이 닿았으니 그야말로 이쪽으로 나가라는 하늘의 계시였다, 계시.


그래서 김OO 선생님의 다소 비관적인 조언을 들었을 때 나는 졸업 후 대학원에 들어가서 유학을 다녀온 후 번역도 하고 연구도 하는 교수가 되겠다는 계획이 서 있었다. 교수가 되면 돈과 명예가 따르는 것은 당연지사라고, 속 편하게 생각했다.


그렇게 기초반을 마치고 가을이 되어 심화반에 들어갔다. 심화반 선생님은 앞에서 이 아카데미의 존재를 알려준 블로그의 OO열 선생님이었다. 그리고 나는 거기서 번역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왜냐하면 우리가 수업을 듣는 석 달 남짓한 기간에 선생님의 역서 ⟪OO릿⟫이 그야말로 초대박이 났기 때문이다. 온 나라가 ⟪OO릿⟫ 열풍으로 들썩일 정도였다. 비록 선생님은 인세로 계약을 한 게 아니라 떼돈을 벌진 못했지만 출판사에서 얼마간의 사례금을 줬다고 들었다. 그렇게 내 옆에서 실제로 대박을 친 번역가를 보니까 나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별 고민 없이 번역가의 길에 성큼 들어섰다.


그리고 10년째 대박은커녕 중박도 못 친 번역가로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김OO 선생님의 조언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이 일은 돈도 명예도 잘 안 따른다. 물론 업계에서 손에 꼽히는 번역가가 된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그건 운도 따라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몇 년이면 된다는 보장이 없다. 그전까지는 시원찮은 벌이로 연명하고 서점에 내 이름 박힌 책이 있다는 것 빼고는 딱히 내세울 것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다고 직업 안정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일이 끊기면 쫄쫄 굶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번역가가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이 일이 정말 다른 것을 다 떠나서 순전히 자기가 좋아서 할 만한 일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이 일을 내가 좋아할지 안 할지 어떻게 아냐고? 직접 번역을 해보면 된다. 지금부터라도 책 한 권을 택해서 A4 용지 두 장 정도 분량으로 번역을 해보고 또 다른 장르의 책을 택해서 그 정도 분량으로 번역을 해보자. 그렇게 몇 권을 번역하면서 재미를 느낀다면 이 일이 체질에 맞는 것이다.


가장 좋기는 번역 수업을 들으면서 번역물을 과제로 제출하고 전문가에게 평가를 받는 것이다. 사실 그게 내가 볼 때는 출판계에 아무런 연줄도 없는 사람이 번역가가 되기에 가장 쉬운 길이기도 하다.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쉽다는 것이어서 그것조차도 절대 만만한 일이 아니긴 하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번역이란 게 일 자체에서 느끼는 재미를 빼면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십 년이 넘도록 그 밖의 보상은 기대할 만한 직종이 못 되기 때문에 시작하기 전에 잘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고 있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나는 여전히 OO열 선생님의 대박 사례가 언젠가는 내게도 일어날 일이라고 믿는다. 그런 믿음이 있으니까 10년이 넘도록 버틸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당장 내일에 대한 걱정은 많아도 몇 달, 몇 년 후에 대해서는 대책 없이 낙관적인 성격이다.


참고로 교수되기 프로젝트는 대학원 1학기를 마치고 완전히 접었다. 대학원에 들어와서 공부를 해보니 내가 학문을 할 재목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원래 인문학 연구라는 게 남의 글을 읽고 비평하는 게 주를 이루는데 대학원에 들어와서 슐라이마허니 발터 벤야민이니 이름도 발음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쓴 골치 아픈 글을 읽고 있자니 고역이 따로 없었다. 평생 그렇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대학원에 들어오고 얼마 안 됐을 때 교수님에게 "아직 우리나라에 번역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 별로 없고 더군다나 외국에서 박사를 하고 온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석사 마치고 국내에 남지 말고 유학 가서 박사 학위를 따 오면 너는 젊은 남자니까 교수 자리를 구하기가 쉬울 거야"라는 말씀을 들었다. 하지만 한 학기를 지내고 보니 교수고 나발이고 더는 공부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역자 약력에 넣을 수 있도록 석사 학위만 따고 관두기로 마음을 먹었다.


분야는 다르지만 온갖 고생을 악착같이 이겨내고 끝끝내 박사 학위를 따낸 아내는 교수님이 그렇게 권할 정도로 유리한 조건을 갖고도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교수의 길을 포기할 수 있냐고 묻곤 한다(물론 그 길을 갔다고 내가 교수가 됐으리란 보장은 없지만 대책 없이 낙관적인 나는 교수가 됐을 것이라 믿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느냐 하면 나는 애초에 도전 정신, 불굴의 의지 같은 것이 결여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냥 한평생 편하게 살다 가면 그것으로 족하다, 주의다. 그래서 누누이 말하지만 돈 많은 백수가 되는 게 여전히 장래희망이다. 이렇게 철딱서니가 없는 것도 여태 번역계에서 버티는 데 분명히 적지 않은 힘이 됐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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