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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이라이트 Jun 03. 2018

번역가들은 무엇을 전공했을까

먼저 심심한 사과의 말씀:


지난번 <번역가 지망생에게 주는 조언>에서 "요즘 어문학과만 나와서는 취업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인 것처럼 번역계에서도 일감을 구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제가 근거도 없이 어디서 주워들은 말만 갖고 깝친 것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지난 글을 쓰고 누가 뭐라고 한 건 아니지만 나 스스로 켕겨서 번역가들의 전공을 조사해봤다. 간단히 조사 방법을 소개하자면, 5월 12일을 기준으로 온라인 서점 <알라딘>의 베스트셀러와 새로 나온 책 목록에 오른 책 중에서 영어권 번역서(혹은 그런 것으로 추정되는 책)를 추린 후 각 도서의 상세 설명 화면에 게재된 번역가 약력을 토대로 번역가 72명의 전공을 확인했다.


그 결과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참고로 합계가 80명인 이유는 두 개 이상의 학문을 전공한 사람이 7명 있기 때문이다.


공학·기술(3명): 건축(1), 과학기술학(1), 컴퓨터공학(1)

과학(12명): 물리학(3), 생물학(3), 식물학(1), 천문기상학(1), 해양학(1), 화학(3)

교육(4명): 사범(1), 생물교육(1), 영어교육(1), 유아교육(1)

상경(9명): 경영(4), 경제(3), 마케팅(1), 비영리조직(1)

신문방송(2명)

영어·영문(22명)

기타 언어·어문(3명): 국문(1), 중문(1), 언어학(1)

예술(4명): 미디어아트(1), 미학(1), 영화영상(1), 창작(1)

인문(11명): 사학(2), 사회과학(1), 서양사학(1), 심리학(1), 인류학(1), 철학(5)

정치외교(4명): 정치외교(2), 국제관계학(1), 아시아학(1)

전공 미상(6명)


이것을 보기 쉽게 그래프로 만들어봤다.

[표 1] 번역가들의 학부 전공 (단위: 퍼센트)

영문과가 압도적으로 많고 그 다음이 과학, 인문 순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어떤 전공이 번역을 하기에 유리하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표본에는 대표성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임의로 추출한 72명의 전공이 전체 번역가의 전공 분포를 보여줄 수는 없다. 그것은 정교한 조사법을 이용할 때나 가능한 일이다.


다만 영문과를 나온 번역가들이 가장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는 만큼 영문학을 전공한 게 번역 일을 구하는 데 특별히 불리하게 작용하지는 않는 것 같다는 짐작 정도는 해볼 수 있겠다. 참고로 영문학 전공자 22명 중에 다른 학문을 같이 전공한 사람은 3명이고 각각 경영, 신문방송, 창작을 전공했다.


조사한 게 아까워서 몇 가지를 더 정리해봤다.


흥미롭게도 72명의 번역가 중에서 대학원을 나온 사람이 42명으로 약 58퍼센트를 차지했다. 그 분포를 보자면 다음과 같다. 합계가 45명인 이유는 역시 복수의 학문을 전공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학원 과정에서는 심층적으로 학문을 탐구하는 만큼 학부 전공과 달리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분리했다.

[표 2] 번역가들의 대학원 전공 (단위: 명)

보다시피 통번역대학원을 나온 사람이 가장 많다. 이들의 학부 전공을 보자면 영문학 5명, 과학 3명, 상경계 2명, 사범대 1명, 전공 미상이 2명이고, 이중에는 학부 전공이 영문학과 경영학으로 2개인 사람이 1명 포함되어 있다.


재미있는 부분은 통번역대학원을 나온 번역가 12명의 출신 대학원이다.


이화여대 6명

한국외대 4명

서울외대 1명

영국 버밍엄대 1명


보다시피 이화여대와 한국외대 출신이 대부분이다. 국내에 통번역 혹은 번역대학원이 몇 군데 있지만 이 자료에서 이렇게 이화여대와 한국외대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두 학교가 이 분야의 투톱이기 때문이다. 선발 과정도, 교육 방식도, 학생들에 대한 투자도 '끕'이 다르다. 나도 번역대학원을 나왔지만 이 두 학교가 쌍두마차라면 우리 학교는 달구지 수준이었다. 학생들 사이에서 학교가 돈벌이하려고 번역대학원을 운영한다는 자조적인 말이 심심찮게 나올 정도로 커리큘럼도, 학생들에 대한 지원도 열악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또 하나 눈에 띈 것은 내가 조사한 72명의 번역가 중에서 현재 번역 에이전시나 네트워크에 소속된 사람이 12명이라는 점이었다. 이들이 소속된 단체는 다음과 같다.


엔터스코리아 7명 (통번역대학원 출신 2명 포함)

바른번역 2명

베네트랜스 1명

사이에 1명 (통번역대학원 출신)

하니브릿지 1명


나도 이 중 한 에이전시에 속해 있지만 다른 에이전시의 사정은 잘 모르기 때문에 엔터스코리아 소속이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만큼 일감이 많이 들어간다는 것일 수도 있겠다. 통번역대학원 출신 중 4분의 1이 에이전시에 소속되어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그래서 결론은? 이딴 주먹구구식, 수박 겉핥기식, 그것도 수박 한 통도 아니고 한 조각의 반의 반의 반의 반의 반이나 핥을까 말까 하는 조사 자료 갖고 결론은 무슨 결론이야. 그냥 재미로 보는 거지. 그래도 어차피 내 인생 아니니까 함부로 조언하자면…… 저 정도 학벌이면 기업이나 연구원에서 훨씬 좋은 대접받을 수 있으니 잘 생각해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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