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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이라이트 Apr 04. 2020

파스타 한 접시에 판 양심

신부님, 저는 8계명을 어겼습니다. 피자집에서 리뷰 이벤트로 치즈오븐파스타를 서비스로 받아먹고 맛없는 피자에 별 5개를 줬습니다.


2주 만에 먹은 피자다. 최소한 1주일에 1판은 먹어야 하는 독실한 피자교인이 2주나 피자와 사회적 거리두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건 장모님이 집에 오셔서 매일 집밥을 해주시기 때문이었다. 어젯밤에 아내한테 제발 피자 좀 먹게 해 달라고 간구해서 오늘 점심에 피자를 영접했다. 치느님? 꺼져. 피자가 최고야.


평소 먹는 집이 있다. 그 집은 매일 12시에 문을 연다. 오늘은 너무 절박해서 12시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배달앱에서 다른 집들을 보다가 오픈 기념으로 5,000원 할인 쿠폰을 뿌리는 피자집을 선택했다. 리뷰는 10개 정도밖에 달리지 않았는데 모두 칭찬 일색이었다.


요즘 배달앱에 오른 집이 거의 다 그렇듯이 이 집도 리뷰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리뷰를 쓰는 조건으로 사이드 메뉴 하나를 무료로 제공한댔다. 피자에는 무조건 치즈오븐파스타다. 토마토소스가 칼칼하니 느끼한 맛도 잡아주고 좋다.


주문 전에 고민했다. 리뷰 이벤트를 하는 집이니까 만점짜리 리뷰를 다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리뷰 이벤트로 서비스를 받았는데 맛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도 있었다. 아무래도 사람 마음이 뭐라도 하나 얹어주면 싫은 소리를 잘 못하게 되어 있다.


40분 만에 온 피자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열었다. 그 순간, 직감했다. 이 피자는 하급이라는 걸.


냄새만 맡아도 안다. 포테이토 피자에서 진한 머스터드 냄새가 풍기면 그 피자는 맛이 없다. 그건 맛있는 소스를 만들 줄 몰라서 시판 머스터드를 대충 뿌렸다는 뜻이다. 진짜 맛있는 피자는 머스터드를 뿌려도 머스터드 냄새가 안 난다. 소스의 배합이 절묘하기 때문이다.


생긴 것도 하급의 냄새를 풀풀 풍겼다. 딱 봐도 도우의 두께가 종잇장 수준이었다. 그런데 끄트머리의 바이트 부분은 둘레가 엄지손가락 만했다. 기묘한 비율이었다. 게다가 토핑은 양이 적은 건 둘째치고 분배가 엉망이었다. 어딘 많고 어딘 적었다.


거기에 절단도 제대로 안 되어 있어서 손으로 주욱 뜯어서 먹어야 했다. 더 웃긴 건 페페로니 반 포테이토 반 피자인데, 몇 조각은 정말로 페페로니 반 포테이토 반이었단 거다. 잘라도 어떻게 그렇게 자를 수가 있지.


그래도 혹시, 라는 기대가 없진 않았다. 냄새도, 생긴 것도, 잘림새도 별로지만 맛은 있을 수 있으니까…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우리 같은 피자교인들은 혀끝만 닿아도 안다. 이게 같은 교인이 만든 건지, 아니면 이교도가 그냥 돈 벌려고 만든 건지.


도우가 달고 뻣뻣했다. 단 건 취향의 문제라 쳐도 뻣뻣한 건 그냥 피자를 못 만든 거다. 반죽을 못 했거나 이상하게 구웠거나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다. 제대로 된 도우는 쫄깃하거나 바삭하다. 도미노피자 씬 도우는 쫄깃하면서 바삭하다. 정말 씬 도우는 국내 프랜차이즈 중에서 도미노가 최강이다.


이 집은 도우가 도미노 씬보다도 얇았다. 볼 때부터 원감 절감이 심하네, 싶었다. 그래도 쫄깃하든가 바삭하든가 둘 중에 하나라도 했으면 식감을 위해 얇게 만들었다고 납득할 수 있었을 거다. 근데 말했다시피 그냥 뻣뻣했다. 재료값 아끼려고 밀가루 조금 넣고 만든 것 같았다. 밀가루 그거 얼마나 한다고. 불경한지고. 토핑도 부실한 걸 보면 아무래도 원가 절감 의지가 대단한 집인 것 같다.


토핑으로 말하자면 페퍼로니에서 누린내가 났다. 나는 피자 중에서도 페페로니피자를 제일 좋아하는데 이런 페페로니는 정말 싫다. 페페로니도 햄이니까 햄 특유의 비린 맛이 있을 수는 있다. 그걸 짭짤함으로 잡아주는 게 좋은 페페로니의 조건이다. 근데 이 집은 생돼지 다리를 씹으면 이런 냄새가 날까 싶은 누린내가 났다. 가끔 이런 집이 있다. 어디서 구해 오는지 오래된 삼겹살 같은 냄새 나는 페페로니를 쓰는 집이.


페페로니는 그렇고 나머지 절반이었던 포테이토 부분은, 역시 예상대로 머스터드가 깽판을 쳤다. 이러면 안 되지. 포테이토에는 마요네즈야, 마요네즈. 머스터드는 단맛과 시큼한 맛이 너무 강해서 다른 맛을 모두 제압해버린다고. 포테이토는 모든 프랜차이즈가 도미노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도미노는 마요네즈를 기막히게, 절묘하게 뿌려서 감칠맛을 낸다.


서비스로 준 치즈오븐파스타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고 싶은데, 오븐이 아니라 전자레인지에 돌렸는지 구운 치즈 특유의 꾸덕꾸덕함이 부족했다. 그리고 치즈 자체가 많지 않아서 두어 번 먹으니까 면발 밖에 안 남았다. 정말 면발 밖에 안 남았다. 애초에 다른 내용물은 거의 없었다. 그냥 면 위에 소스 붓고 치즈 살짝 뿌리고 오븐에 살짝 돌려서 나온, 공짜라서이렇게살짝살짝만든거니파스타였다.


근래에 시킨 피자집 중에서 제일 실망스러웠다. 도우도, 토핑도, 소스도, 서비스 파스타도 뭐 하나 예쁜 구석이 없었다.


그런데 피자를 받았을 때 서비스 파스타 봉인 스티커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맛있게 드시고 별점 다섯 개 부탁드려요.”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 하라는 대로 했지, 뭐. 아니, 어떡해, 이미 받아먹은 게 있는데. 별점 다섯 개 줘야지.


안다, 비양심인 거. 또 누군가는 내가 준 별점을 보고 나처럼 속아서 주문할 거고, 그 사람도 서비스로 받아먹은 게 있어서 나처럼 고민하다 별 다섯 개 줄 거고, 그런 악순환 속에서 이 집은 별점 다섯 개짜리 집이 될 거다. 피자신이여, 우리 동네를 구원하소서.


별점에서 양심을 전부 팔아먹은 나지만 리뷰에서는 반만 팔아먹었다. 차마 피자가 맛있다고 쓰진 못하고 그냥 딴말만 썼다. 부디 읽는 사람이 행간에 숨은 의미를 알아차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 입맛이 까다로운 거 아니냐고? 아니다. 아내도 그렇고 장모님도 지난번에 먹었던 집(나의 단골집)보다 맛이 못 하다고 했다. 서비스로 주는 치즈오븐파스타도 그 집 건 올 때마다 아내가 바로 뺏어 가서 나는 먹을 틈도 안 주고 혼자 후루룩 흡입해버릴 정도였는데, 이 집 건 몇 번 떠먹더니 아주 자애롭게 내 몫을 잔뜩 남겨주셨다.


아내가 맨날 나한테 그런다. 왜 맛있는 집 찾으면 계속 그 집 안 시키고 자꾸 새로운 집에다 시키냐고. 왜 그러면서 자꾸 후회하냐고.


몰라. 이렇게 생겨먹은 걸 어떡해. 근데 오늘은 딴 집에 시키려고 시킨 게 아니라 원래 먹던 집이 문을 늦게 열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신부님, 그러고 보니 6계명도 어긴 것 같습니다. 간음하지 말라고 했는데 저는 오늘 딴 피자집에 한눈을 파는 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쯤 되면 요즘 내가 먹는 집이 어딘지 궁금할 거다. 공개한다. 잠깐, 공개해도 되나? 아니, 뭐 어때, 이게 신문이나 잡지도 아니고 그냥 나 혼자 골방에서 쓰는 내 브런친데.


요즘 내가 믿음생활하는 곳은 유로코피자 동진주점이다.


나는 원래 도미노파였는데 유로코를 알고부터는 쭉 여기만 시키고 있다. 이 집 다른 메뉴는 모르겠는데 바질레드페페로니피자는 진짜 최강이다. 페페로니가 매콤하고 거기에 바질향까지 입혀져서 느끼함은 잡고 입맛을 돋운다. 거기다 도우의 맨살을 절대 보여줄 수 없다는 듯이 페페로니를 아끼지 않고 아주 도우 위에 끼얹어버린다. 진짜 내가 먹어본 페페로니피자 중에서 졸라 베스트다.


아, 곱다, 고와! 유로코피자 바질레드페페로니피자.


이 집은 리뷰 이벤트로 주는 치즈오븐파스타도 웬만한 저가 파스타집은 싸대기를 날릴 정도다. 치즈를 듬뿍 뿌리고 안에 면발 외에도 채소가 많이 들어가는 데다 굽는 것도 아주 치즈가 바삭바삭해지기 직전까지 구워서 씹는 맛이 있다. 오죽하면 아내가 나는 주지도 않고 자기가 다 먹어버릴까. 덕분에 배 불러서 피자 많이 못 먹으니까 남은 거 내가 다 먹을 수 있어서 윈윈이지.


프랜차이즈니까 집 근처에 있으면 한번 드셔 보시길. 물론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고 지점마다 맛이 다를 수 있으니까 맛없다고 뭐라 하셔도 제가 보상은 못 해드립니다. 나 믿고 시켰는데 맛없다, 그러면 여기 댓글에 “김고명 개새끼야 이게 맛있으면 일주일 내내 삼시 세끼 피자만 처먹어라”라고 적으세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요즘 나의 피자집 순위.


1위: 유로코피자

2위: 도미노피자

3위: 피자알볼로


참고로 저는 이 글을 적는 대가로 유로코피자에서 협찬 같은 거 받은 바 없습니다. 평소에 리뷰 이벤트로 공짜 파스타는 먹지만 그건 별 다섯 개짜리 리뷰로 갚는 거니까 이 글과는 상관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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