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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이라이트 Mar 07. 2021

브런치북 대상 타려면 브런치 메인 가지 마세요

팔리는 글쓰기의 기본

미리 말할게요. 저 브런치북 공모전 당선된 적 없어요. 그런 주제에 무슨 비법을 알고 있는 것 같은 제목 달아놔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10년 넘게 번역가로 출판밥을 먹고 브런치를 통해 저서를 출간해본 경험이 있으니까 지금부터 하는 말이 순엉터리는 아닐 겁니다.


자, 까놓고 얘기합시다. 우리가 브런치를 하는 이유가 뭐죠? 진정성 있는 글로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 라고 대답했다면 이 글은 그만 읽으셔도 좋습니다. 그런 분을 위한 글은 아니에요.


이 글은 어디까지나 자기 이름이 박힌 책 한번 내보려고 브런치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위해 썼습니다. 브런치로 책 내려면 브런치북 공모전 당선이 제일 확실한 길이지만 여기서는 거기에 한정하지 않고 출판계에서 먹히는 글을 쓰기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을 말하려고 합니다.


브런치에 어떤 글을 써야 출판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요? 브런치 메인 가는 글이요? (브런치 웹사이트의 첫 화면에 걸리거나 브런치 앱의 홈 화면에 ‘에디터스 픽’, ‘브런치가 추천하는 글’로 게시되는 글 말입니다.)


아니요. 브런치 메인 가는 글, 출판 시장에서 잘 안 먹힙니다.


브런치 메인에는 어떤 글이 걸릴까요? 두 단어로 정리할 수 있어요. ‘진정성’ 있고 ‘공감’ 가는 글이요. 예를 들면 이런 글이죠.


진정성 있게 육아는 힘들지만 행복하다고 말한다.

진정성 있게 회사 생활은 힘든데 행복하지도 않다고 말한다.

진정성 있게 오늘 먹은 음식에는 무슨무슨 사연이 있다고 말한다.

진정성 있게 어느 나라를 가봤더니 어떻더라고 말한다.

진정성 있게 내가 만난 OOO은 꼰대라고 말한다.

진정성 있게 나이가 드니까 엄마가 이해된다고 말한다.

진정성 있게 남편이 아니라 남의 편, 웬수라고 깐다.


모든 글이 그렇진 않아도 제가 몇년간 본 바로는 분명히 위와 같은 글이 주를 이뤄요.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행복과 애환을 이야기하며 공감을 부르는 ‘일상 에세이’죠.


그런데 바로 그런 점이 문제입니다(시장성의 측면에서 보자면요). 그런 글은 따지고 보면 ‘나도 쓰겠다’ 싶은 글이거든요. 그렇지 않나요? 비록 구체적인 경험은 다르다고 해도 비슷한 글 쓸 수 있을 것 같지 않으세요? 더 잘 쓰고 못 쓰고를 말하는 게 아니라 쓰는 게 가능은 하다는 것이죠.


‘나도 쓸 수 있는’ 글은 안 팔립니다. 아무리 ‘진정성’ 있고 ‘공감’이 가도 소용 없습니다. 시장에서 먹히는 것은 진정성과 공감이 아니라 ‘이름빨’과 ‘차별성’이거든요.


근데 우리가 이름빨은 없잖아요? 브런치에 유명한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다 유명해지려는 무명용사들 뿐이지.


그러니까 우리의 무기는 ‘차별성’밖에 없습니다. ‘나도 쓰겠다’는 글이 아니라 ‘와 나는 못 쓰겠다’는 글을 써야 한다는 말이죠. 그런 글이 뭐냐고요?


지난 8회 브런치북 공모전 당선작을 보시죠.



이 중에서 나도 쓰겠다 싶은 작품이 몇 편이나 있으세요? 저는 <우리 세계의 모든 말> 정도는 써볼 수 있겠다 싶지만(더 잘 쓸 수 있다는 말이 아니고 ‘가능’은 하다는 말입니다) 다른 건 못 써요. 경험도 없고 지식도 없거든요.


여러분도 그렇지 않으세요? 이 중에 자신 있게 나도 쓸 수 있겠다고 말할 수 있는 작품 별로 없을걸요?


이게 바로 팔리는 글입니다. 보면 모두 어떤 주제나 분야에 대해 전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전문성이 차별성을 만들죠.


저도 그랬어요. 제가 브런치에서 평소에는 이 <막썰어글>이라는 매거진에 오만 잡글을 다 쓰지만, 원래 처음 만든 매거진은 <배운 게 번역질인데>예요. 거기에 번역에 대한 이야기를 썼죠.


당연한 말이지만 번역 이야기는 아무나 못 씁니다. 번역가로서 제 전문 분야란 말이죠. 그래서 제 글들이 출판사의 레이더에 걸렸고, 출판사의 기획에 따라 새롭게 쓴 글로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해보고 싶습니다: 어느 젊은 번역가의 생존 습관>이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전문 분야가 있어야 합니다. 그게 꼭 직업과 관련이 있을 필요는 없어요.


예를 들어 저 위에서 브런치 메인에 걸리는 글의 유형 중 하나로 ‘진정성 있게 내가 만난 OOO은 꼰대라고 말한다’라는 글을 꼽았는데요, 이런 것도 충분히 내 전문 분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냥 누구누구는 꼰대라고 까는 글 한 편 쓰고 끝나면 남들 다 쓸 수 있는 글 한 편 썼을 뿐입니다. 하지만 ‘유형별 꼰대 공략법 12가지’라는 남다른 콘셉트를 잡고 연속적으로 글을 쓰면 내 전문 분야가 되죠.


다른 말로 하자면 내가 남다르게 쓸 수 있는 주제나 분야를 찾아서 쭉 파고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판 데 또 파고 또 파다 보면 점점 깊은 구덩이가 생기겠죠? 그러면 거기에 빠지는 출판사가 생깁니다. 그러면 출판 계약 하는 거예요.


그게 아니라 일상 에세이라는 명목으로 여기 조금 파고 저기 조금 파는 것만 반복하면? 그냥 땅바닥에 얕은 삽 자국만 날 뿐이에요. 더군다나 ‘일상’이라는 길은 나 외에도 수많은 작가가 걸어가는 길이라서 그 자국마저도 금방 사라져버립니다.


일상 에세이로 승산이 없다는 건 저만 말하는 게 아닙니다. 8회 브런치북 공모전에 참여했던 출판사들의 소감 읽어보셨나요? 솔직히 말해서 다른 출판사들 소감은, 이런 말 해서 미안하지만, 명절 덕담 수준에 지나지 않아요. “수고했어요”를 고상하게 늘여서 쓴 것일 뿐이죠.


하지만 웅진지식하우스의 이 말은 눈여겨봐야 합니다.


이번 공모전은 일상과 여행의 소소한 기쁨과 슬픔을 이야기하던 작은 목소리들을 확실히 넘어섰다는 느낌이 든다. 더욱 다양해진 주제를 자신 있게 펼쳐낸 작가들의 용기와 고생에 응원을 보낸다.


보세요. 일상 에세이 안 팔려, 대상 먹으려면 그런 거 쓰지 말고 니가 잘하는 거, 니가 잘 아는 거, 니가 좋아하는 거에 대해 써, 그게 니가 살 길이다, 욕봐라, 라고 말하고 있어요. 제가 지금까지 한 말이잖아요?


참, 오해하실까 봐 하는 말인데, 제가 지금 일상적인 글 쓰지 말아라, 일기는 일기장에 써라, 라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기왕 일기를 쓸 거면 일기장 말고 온라인에 쓰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렇게 기록을 남기다 보면 그게 어떤 기회를 불러올지 모른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만 해도 <막썰어글>에 오만 막 글 다 쓰고 있잖아요.


다만 출간 작가가 되기 위해서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면 그런 차원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혹시 지금 ‘어떻게 하면 브런치 메인 갈 수 있을까?’ 내지는 ‘왜 내 글은 브런치 메인에 안 걸릴까?’라고 고민 중이라면 생각을 바꿔보세요. 내가 뭘 잘 알고 잘하는지, 남들은 못 쓰는데 나는 쓸 수 있는 게 뭔지 이제부터는 그걸 생각해보세요.


솔직히 지금 저도 그런 걸 찾고 있어요. 첫 책은 번역을 주제로 냈지만 이젠 번역으로는 또 책을 쓸 만한 게 제 안에서 안 보이거든요. 다른 책 쓰려면 번역 외의 뭔가를 찾아야 하는데 아직 못 찾았어요.


아, 제 걱정은 마세요. 이렇게 계속 뭐라도 쓰다 보면 뭐라도 찾겠죠.


여러분도 찾으시길. 그럼 욕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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