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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이라이트 Mar 01. 2021

넷플릭스는 왜 브런치 글을 날로 먹으려 했을까

시장이 브런치 작가들을 보는 시선


브런치가 작가들에게 한 방 먹었다.


작년 12월의 일이다. 브런치에서 넷플릭스와 함께 야심차게 준비했을 <넷플릭스 스토리텔러>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3개월간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를 보고 리뷰를 써줄 작가 50인을 선정하는 기획이었다. 그런데 당선자들에 대한 보상이 작가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최우수 작가 1명에게만 아이패드를 제공하고 나머지 49인에게는 3개월 치 넷플릭스 프리미엄 이용권과 굿즈만 지급한다고 안내되어 있었다. 


댓글창에 넷플릭스가 작가들의 소중한 글을 날로 먹으려 한다며 ’열정 페이’를 비판하는 댓글이 여럿 달렸다.


한번 따져보자. 넷플릭스 프리미엄 이용권은 월 14,500원이다. 50인에게 3개월 치를 제공한다면 총 2,175,000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정말? 아니다. 비용은 0원이다.


지난 2월 25일 넷플릭스에서 한국의 유료 구독 가구가 380만 가구 이상이라고 발표했다. 구독 ‘가구’ 수니까 실제 구독 인구는 적어도 그 2배는 될 것이다. 그러니까 넷플릭스는 이미 700만 명 이상을 감당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는 말이다.


거기에 50명을 추가한다고 넷플릭스에 비용이 발생할까? 글쎄. 대서양 만한 목욕탕에 손님 50명 더 받는다고 목욕탕 측의 물값이나 관리비 부담이 늘어날 리는 없다.


아마도 브런치 작가들의 마음은 이렇지 않았을까.


이 새끼들이 누구를 호구로 아나. 나 브런치 고시 합격자야. 글 좀 쓰는 사람이라고. 아직 내가 출간을 못 해서 그렇지, 나도 엄연한 ‘작가’야. 곧 프로가 될 사람을 아마추어 취급하다니. 그깟 이용권 몇 장 받고 홍보 글 써줄 사람은 저쪽 네이버 블로그 가서 찾아봐. 아니, 이 새끼들아, 거기도 협찬 글 써주면 원고료를 주던가 실물 상품을 주던가 하더라. 글로벌 대기업이란 놈들이 어디서 나쁜 것만 배워갖고는!


다소 과장이 섞인 표현이다. 네이버 블로그를 폄하하는 것처럼 읽힐 수도 있겠다. 부인하진 않겠다. 모든 이용자가 그렇진 않지만 네이버 블로그는 이미 광고판으로 전락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니까.


그동안 브런치의 행보에 대체로 호의적이었던 작가들이 예상외로 반발하는 조짐이 보이자 브런치는 10일 만에 계획을 수정해 모든 당선자에게 아이패드를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넷플릭스와 협의했다고 하지만 그 돈이 과연 넷플릭스에서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이미지 추락을 걱정한 브런치가 부담하는 것인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면 넷플릭스는 왜 브런치 작가들의 글을 날로 먹으려 했을까? 간단하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만일 브런치를 글쓰기의 ‘프로’들이 모인 플랫폼이라고 생각했다면 넷플릭스도 당연히 지출을 감수했을 것이다. 프로는 돈을 받고 움직이는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넷플릭스는 브런치를 아마추어 집단으로 판단한 것 같다. 돈을 쥐어주지 않아도 글로벌 대기업의 홍보 대사가 됐다는 ‘자부심’만으로, 혹은 글쓰기에 대한 ‘열정’만으로 좋은 글을 써줄 사람을 찾을 수 있는 곳으로 말이다.




브런치 작가들을 아마추어로 보는 시선을 느낄 수 있는 브런치 프로젝트가 또 하나 있었다. 브런치가 EBS 라디오와 기획한 <나도 작가다> 공모전이다.  3차에 걸쳐 총 60편의 글을 선정해 라디오 방송으로 송출하고 책으로 엮어서 출간하는 프로젝트로, 그 결과물은 팟빵 다시 듣기와 종이책 ⟪너의 목소리를 그릴 수 있다면⟫으로 듣고 볼 수 있다.


(참고로 나는 그 공모전에 응모했다가 떨어졌다. 나는 찌질한 인간이라 아래의 내용은 다분히 편파적일 수 있다.)


제목이 인상적이다. ‘나도’ 작가라니. 몇 년 전에 MBC에서 대히트를 친 가요 경연 프로그램의 제목을 다들 기억할 것이다. <나는 가수다>. ‘나는’과 ‘나도’는 어감이 전혀 다르다.


<나는 가수다>에서는 당당함이 느껴진다. 나는 누가 뭐래도 가수라는 뜻이다. <나도 작가다>에서는 절실함이 느껴진다. ‘야, 너네 왜 날 인정 안 해줘, 나도 작가야, 엄연한 작가!’라고 말하는 것 같다. 전자는 프로다움이 느껴지고, 후자는 프로로 인정받지 못한 자의 외침 같다.


당선자들에게 지급된 보상은 어떨까? 당선된 작가님에게 직접 들으니 출판물 인세까지 합쳐서 총 10만 원이 입금됐다고 한다.


한국방송작가협회의 방송원고료 기준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EBS 라디오의 일반원고에 대한 원고료는 10분 분량을 기준으로 기본 42,180원이다. 당선작들의 녹음본이 대부분 10분 이내이므로 원고료와 녹음료까지 5만 원을 받았다고 치면 출판물 저작권료로 나머지 5만 원을 받은 셈이다.


총 60명에게 5만 원이면 300만 원이 저작권료로 지급됐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만일 인세율 10%로 계약했다고 가정하면 출간된 책의 정가가 14,500원이므로 약 2,068권(3,000,000 % (14,500 * 0.01))을 판매했을 때 지급해야 하는 금액이다. 실제 계약은 인세 계약이 아니고 일시불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재 온라인 서점의 판매지수를 보면 이 책이 2,000권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기는 어려울 것 같으니 5만 원 일시 지급이 작가들에게 손해는 아닐 것이다.


이렇게 보면 EBS 측은 작가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지급한 것 같다. 하지만 그게 작가들을 프로로 예우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너의 목소리를 그릴 수 있다면⟫의 서문에 이렇게 적혀 있다.


프로 작가의 숙련되고 전문적인 글보다 우리 주변의 풋풋하고 산뜻한 이야기가 더 와닿을 때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품은 이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면 어떨까, 그 이야기가 라디오에 흐르면 어떨까, 책으로 엮이면 어떨까 상상했습니다. <나도 작가다>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중략) 작가라는 꿈을 가진 분들께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용기를 드린 것 같아 보람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러니까 애초에 이 프로젝트는 아마추어 작가들을 응원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넷플릭스와 EBS의 경우만으로 단정하긴 어렵지만, 나는 조심스레 시장에서 브런치를 보는 시각이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글 좀 쓰는 아마추어 집단.




그러면 아마추어가 아니라 프로 작가에 대한 대우는 어떨까? 모든(혹은 대부분의) 브런치 작가가 목표로 하는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를 보면 알 수 있다.


최근인 8회의 경우, 대상 10인에게는 500만 원, 탈잉 특별상 3인에게는 100만 원의 상금이 지급됐다. 프로와 아마추어를 구별하는 기준은 간단하다. 프로는 무조건 돈으로 보상을 받고 아마추어는 기회로 받거나 못 받는다.


그러면 출판사들은 브런치를 프로 집단으로 보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아마 이번 브런치북 수상작을 보고 일종의 배신감이랄까, 허탈감을 느낀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왜? 다음 표를 보자. (브런치에서 표 그리기 기능을 제공하지 않아 스프레드시트 캡쳐본으로 대신한다.)



보다시피 당선자 중 글쓰기가 직업이거나, 이미 출간 경력이 있거나, 어떤 식으로든 콘텐츠를 기획/판매해본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미 프로 혹은 준(準)프로라는 것이다. 출판사들은 그런 사람들만 쏙쏙 골라잡았다. 자신이 비록 출간 경력은 없지만 글로 승부를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던 응모자들에게는 당혹스러운 결과일 수 있다.


출판사도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기업이니 프로들을 선정한 게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이 결과를 보면 출판사가 브런치 작가 중 소수일 것이 분명한 출간(혹은 그에 준하는 경험을 가진) 작가와 대다수의 미출간 작가를 보는 눈이 다르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3월에는 총 20명의 작가를 선정해 전자책 출간 기회를 주는 <밀리X브런치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내가 조심스레 예측하자면 그 결과는 위에서 본 <8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미 출간 경력이 있거나 콘텐츠 제작 경력이 있는 작가들이 대거 당선될 것이라 본다.




정리하자면 시장에서 보는 브런치의 위상은 글 좀 쓰는 아마추어들이 모인 플랫폼이다. 브런치팀의 시선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넷플릭스 프로젝트에 대한 논란을 보도한 기사에 브런치팀의 해명이 실렸다.


공모전은 작가님들께 더 큰 동기 부여가 될 것이라는 마음에서 준비했고 카카오가 이익을 얻는 것은 없다.


그러니까 작가들에게 (사실상 무급으로) 넷플릭스의 홍보 대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브런치팀 역시 작가들을 아마추어로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물론 아마추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프로가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브런치 작가들은 대부분 프로 작가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특히 요 몇 년 사이에 브런치를 통해 출간되는 책들이 늘어나면서 출간을 염두에 두고 브런치에 유입된 작가들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프로가 되려는 사람에게는 자신을 아마추어로 간주하는 시장의 시선이 넘어야 할 장벽이다. 그것은 단순히 브런치 입성에 성공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작가’라는 칭호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 브런치에 들어온 것은 출간 작가가 되기 위한 토너먼트에서 이제 겨우 예선을 통과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 더욱 치열한 경쟁이 남아 있다.


그 경쟁에서 이기는 법은? 글쎄, 그걸 알았다면 내가 지금 어느 출판사와 출간 계약을 맺고 글 쓰느라 바쁘지, 이렇게 돈도 안 되는 글을 쓰고 있을 리가 없겠지. 다만 그 기본은 안다.


바로 프로의 글쓰기를 하는 것이다.


돈도 안 되는 글을 너무 길게 썼다. 이쯤에서 끊고 다음에 계속… (<브런치북 대상 타려면 브런치 메인 가지 마세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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