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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이라이트 Jun 20. 2021

노력할수록 벌이가 줄어드는 직업

본질적으로 술래일 수밖에 없는 번역가 혹은 프리랜서의 삶

숨바꼭질도 도가 지나치면 피를 부른다. 숨는 것에도 정도가 있지, 종일 동네를 다 뒤져도 안 잡히는 놈이 있을 때 술래는 그놈을 잡아다 꼬챙이에 꿰서 동네 어귀에 진열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다른 놈들은 이놈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적당히 하라는 경고로.


설마 하니 아이들의 놀이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단어를 찾는 번역가의 심정이 그렇다는 것이다. 번역가가 술래가 되는 이 숨바꼭질은 필연적으로 금전적 손실을 부른다. 번역은 결과물의 분량으로 보수가 책정되기 때문에 작업에 투입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손해다. 그리고 손실 회피 편향을 발견한 대니얼 카너먼과 아머스 트버스키에 따르면 원래 사람은 돈을 얻는 기쁨보다 돈을 잃는 슬픔을 더 크게 느낀다. 그래서 번역가는 가끔 어떤 단어에 살의를 느낀다. 예를 들면



piquant



이 빌어먹을 단어의 뜻은 ⟪콜린스 코빌드 어드밴스드 러너스 딕셔너리⟫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1. Food that is piquant has a pleasantly spicy taste.
2. Something that is piquant is interesting and exciting.


매콤하거나 새콤한 음식이나 흥미롭고 짜릿한 것에 쓰는 말이라는데 아마도 생소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사전에서 찾았을 때 별이 하나도 안 달린, 즉 평소에 잘 사용되지 않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이런 놈일수록 악질일 확률이 높다. 특히 마감을 코앞에 두고 이런 놈한테 걸리면 좆되기 십상이다. 가령


Cooney’s piquant quotation about old age and bad luck is from the manuscript of No Country for Old Women, provided to me by the author. 


문장 자체는 어렵지 않다. 앞에서 인용한 문장의 출처를 설명하는 간단한 구조다. 문제는 물론 ‘piquant’다. 여기서 사용된 뜻은 위의 정의 중 2번으로 문맥상 ‘재치 있다’에 가깝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까울’ 뿐이지, ‘재치 있다’를 잡아다 놓으면 자기는 억울하다고 항변할 것이다. 말했듯이 ‘piquant’는 실생활에서 좀처럼 만날 수 없고 주로 사전 안에 숨어 사는 은둔형인데 반해 ‘재치 있다’는 우리의 말과 글에 뻔질나게 들락거리는 동분서주형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어감이 다르다.


저자가 굳이 저런 말을 색출해서 썼으면 번역자도 같은 놈으로 대령하는 게 좋다. 적어도 저자가 문장 하나하나를 고심해서 쓰는 스타일이라면 그런 노력의 결과물을 되도록 우리말로 살려주는 것이 번역가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piquant’에 대응하는 우리말을 찾기 시작했다. 우선은 자리에 앉아서 이래저래 머리를 굴려봤지만 마땅한 놈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럴 때는 직접 손으로 뛰는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1. 먼저 (주)낱말 유의어 사전에서 ‘말’로 검색했다. ‘재치 있는 말’을 뜻하면서 평소에 사람들이 잘 안 쓰는 표현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비슷한 말은 36개, 하위어는 452개가 떴다. 그 면면을 모조리 살폈지만 이놈이다 할 놈이 보이지 않는다. ➡︎ 실패

2.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재미있는 말’로 검색한 후 뜻풀이 탭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하면 뜻풀이에 ‘재미있는 말’과 유사한 구절이 들어간 단어들이 빠짐없이 나열된다. 좋은 수사 기법이다. 하지만 125개 항목을 다 살펴봤지만 허탕이었다. ➡︎ 실패

3. 국어사전에서 ‘멋진 말’로 검색해서 역시 뜻풀이 탭을 수색했다. ➡︎ 실패

4. 국어사전에서 ‘*語’로 검색했다. 이렇게 하면 글자 수에 상관없이 끝 글자가  말씀 어(語)인 말이 모두 나온다. ➡︎ 실패

5. 국어사전에서 ‘*言’으로 검색했다. ➡︎ 실패

6. 국어사전에서 ‘재치’로 검색한 후 뜻풀이 탭을 봤다. ➡︎ 실패

7. 국어사전에서 ‘재미있다’로 검색한 후 뜻풀이 탭을 봤다. ➡︎ 실패

8. 국어사전에서 ‘흥미롭다’로 검색한 후 뜻풀이 탭을 봤다. ➡︎ 실패

9. 국어사전에서 ‘*談’로 검색했다. ➡︎ 실패


이처럼 지능적인 첨단 수사 기법을 동원했지만 놈은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갔다. 이제는 시간이 없었다. 단어 하나 잡자고 30분씩, 1시간씩 소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는 수 없이 ‘재치 있다’를 대신 데려다 놨다. 진범이 아닌 것은 알지만 내가 살자면 단어 하나쯤 희생시켜도…….


아니야, 이건 아니지. 수사관으로서 자존심이 있지. 2차 검거 작전 개시.


10. 네이버 영어사전에서 ‘piquant’로 검색한 후 예문 탭으로 들어갔다. ‘piquant’가 들어간 예문과 그 해석이 나열된다. 해석 중에 ‘톡 쏘다’라는 말이 눈에 띈다.

11. 국어사전에서 ‘쏘다’로 검색한 후 뜻풀이 탭을 봤다. ‘신랄하다’라는 항목이 보인다. 맛이 맵고 비평이 날카롭다는 뜻이다.

12. 국어사전에서 ‘맵다’로 검색한 후 뜻풀이 탭을 봤다. 건질 게 없다.

13. 국어사전에서 ‘날카롭다’로 검색한 후 뜻풀이 탭을 봤다. 건질 게 없다.


에라, 씨발, 김 형사, 저 새끼 대충 피의자로 꾸며서 넘겨! 진짜를 못 잡으면 대충 비슷한 놈이라도 데려다 놔야지, 별 수 있어?


말인즉 결국엔 ‘piquant’를 ‘재치 있다’로 번역하고 말았다. 졸라 재치 있는 번역이다. 분명 ‘piquant’에 대응하는 한국어가 있을 것 같아서 30분이 넘게 추적했지만, 단순히 사전의 표제어만 보는 게 아니라 그 뜻풀이를 보며 뭔가 연상되는 것이 없는지 계속 고민했음에도 끝내 못 찾고 패배를 인정했다.


그럴 거면 처음부터 ‘재치 있다’로 쉽게 가지, 굳이 왜 저 난리를 피웠을까. 그 단어가 책의 숨통을 쥐고 있는 거물이라서? 땡. 본문도 아니고 미주에서 참고 자료를 소개하는 문장에 들어간,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해버려도 상관없는 잔챙이였다.


아, 그러면 그런 단어에 수사력을 낭비할 만큼 시간이 썩어났구나? 땡. 마감을 코앞에 두고 새벽과 밤에도 촌각을 다투며 번역을 했고 막판에는 장모님 찬스를 써야 할 만큼 일정에 쪼들리던 상태였다.


그런데 왜? 아, 저러면 번역료를 더 많이 받는구나? 땡. 말했다시피 번역료는 철저히 번역 원고의 분량을 기준으로 계산된다. 투입한 시간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따라서 한 단어를 30초 만에 번역하는 것이 굳이 30분씩 물고 늘어지는 것보다 훨씬 이득이다.


그럼에도 구태여 저 고생을 하는 건…… 순전히 자기만족 때문이다. 욕심이다. 그냥 번역을 잘하고 싶은 거다. 더 좋은 문장, 더 원문에 가까우면서 우리말다운 문장을 만들고 싶은 거다. 어쩌면 헛수고에 그칠지 모를 저 숨바꼭질을 즐기는 거다. 그게 전부다.




그 욕심 때문에(그게 유일한 이유는 아니지만) 내 연간 소득은 번역을 처음 시작했던 13년 전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 그간 내가 받는 번역료는 원고지 한 장당 3,500원에서 4,500원으로 약 30퍼센트 증가했다. 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내가 받는 가격 이상의 결과물을 만들자는 주의이고, 그러다 보니 경력이 쌓여도 번역 속도가 크게 향상되지 않는다. 어차피 단어와 문장에 들이는 정성의 분량은 예전과 비슷하거나 때로는 더 많기 때문이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벌 요량이라면 사전을 멀리하며 적당히 머리에 떠오르는 단어를 쓰면 될 일이다. 덧붙여 지금처럼 굳이 번역문을 전부 원문과 대조하는 수고로운 작업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최소 30퍼센트는 더 벌 자신이 있다.


아니, 이렇게 쓰면 내가 마치 벌이를 포기하고 모든 단어와 문장을 고심해서 번역하는 헝그리 번역 장인처럼 읽힐 수 있는데, 그 정도는 아니다. 나도 적당히 타협하며 번역한다. 다만 소득과 품질을 저울에 달았을 때 품질 쪽으로 저울이 조금이라도 더 기울어지는 것을 지향한다는 뜻이다.


거꾸로 말하면 출판 번역은 공을 들일수록 벌이가 줄어드는 일이다. 오로지 분량만으로 노력의 값이 매겨지는 업의 한계라면 한계다. 하지만 그런 직업이 어디 번역뿐일까. 더욱이 그런 현실을 탓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번역가가 출판사에 출근해서 작업하는 것이 아닌 이상 번역에 들인 시간으로 번역료를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프리랜서의 작업 시간을 모니터링해주는 앱들도 있다고 하지만 출판사에서 굳이 그런 기술을 도입할 이유가 없다. 그래 봤자 번역가에게 나가는 돈만 늘어날 뿐이니까.


그러니까 출판 번역으로 먹고살려면 이 정성과 벌이의 반비례 관계를 알고 감내해야 한다. 그리고 그 관계 내에서 나름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품질을 높이기 위해 얼마만큼 소득을 포기할 수 있는지 선을 그어야 한다.


아니, 그전에 이것부터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과연 단어를 찾는 숨바꼭질을 즐기는 사람인가? 이 숨바꼭질이 즐겁다면 노력하는 만큼 벌지 못하는 현실을 참아낼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금방 나가떨어지거나 소득을 위해 품질을 희생하다가 퇴출당할 공산이 크다.


물론 노력할수록 무조건 손해라는 말은 아니다. 애쓰는 만큼 당장의 벌이는 줄어도 장기적으로는 벌이가 늘어나서 형편이 나아질 수 있다. 내가 장당 4,500원이라는 (내가 알기로는) 업계에서 그럭저럭 괜찮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이유는 그동안 내가 번역에 들인 수고 때문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나는 3,500원을 받으면서도 4,000원짜리 번역을 한다는 각오로 문장을 옮겼다. 지금도 나는 내 번역이 5,000원을 줘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국엔 5,000원 고지를 넘어설 것이라 기대한다.


내가 번역을 시작했을 때와 비교해서 연간 소득에 큰 차이가 없다고 했지만, 이렇게 몸값이 높아진 덕분에 같은 돈을 벌어도 일하는 시간은 줄었다. 예전에는 매일 8시간씩 일해야 벌었던 돈을 요즘은 4~5시간씩 일해도 벌 수 있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책 1권을 보통 2~3달 동안 작업했지만 요즘은 3~4달로 일정을 넉넉하게 잡고 여유 있게 일한다. 남는 시간은 아이를 보고 집안일을 하는 데 쓴다. 만일 육아와 가사 노동에도 금전적 보상이 따른다면 번역으로 생기는 소득은 예전과 큰 차이가 없어도 전체 소득은 늘어났을 것이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노력도 배신한다. 쉬운 예를 들자면 우리는 생전에 죽어라 고생만 하다가 사후에야 비로소 진가를 인정받은 예술가를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 그나마 그들은 죽어서 이름이라도 남겼지, 세상에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이름조차 기억되지 않는 사람이 수두룩 할 것이다.


나는 노력도 노력이지만 운이 좋았기 때문에 지금처럼 업계에서 그럭저럭 인정받는 위치에 서게 됐다. 인생은 운칠기삼이다.


나는 노력의 신용성이 아니라 숨바꼭질에 대해 말하고 싶다. 우선은 범위를 좁게 잡자면 번역가 지망생들에게 자신이 단어를 찾는 숨바꼭질을 즐기는 사람인지 생각해보기를 권한다. 번역은 이 숨바꼭질의 연속이다. 한 문장을 쓰기 위해 사전을 얼마나 많이 뒤져야 하는지, 또 인터넷을, 관련 서적을 얼마나 뒤져야 하는지 모른다. 나는 요즘 흑인 문화와 힙합에 관련된 책을 번역하고 있는데 어떤 날은 문장을 쓰는 시간보다 단어를 찾고 자료를 조사하는 시간이 더 많다. 이 끊임없는 숨바꼭질을 견디지 못한다면 번역은 고문이 될 것이다.


범위를 더 넓히자면 번역가를 포함해서 해가 간다고 또박또박 벌이와 대우가 좋아진다는 보장이 없는 불안정한 프리랜서라는 업을 택하려 하는 사람들에게 또 숨바꼭질을 버틸 각오가 되어 있는지 생각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여기서 말하는 숨바꼭질은 노력의 결실을 찾는 숨바꼭질이다. 노력이 그 결실을 어디에 숨겨 놨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것을 찾기까지 몇 년이 걸리면 정말 운이 좋은 것이고 어쩌면 십수 년 혹은 그 이상이 지나도록 결실의 코빼기도 찾지 못할 수 있다. 그래도 견딜 자신이 있는지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경제적인 차원의 문제이기도 하고 심리적인 차원의 문제이기도 하다. 과연 내 벌이가 늘어나긴커녕 제자리걸음만 해도 다행이라고 할지라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을지, 내가 십 년이 넘게 굴러먹었는데도 업계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해도 정신이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을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물론 겪어보지 않고는 확실히 알 수 없는 것이지만 미리 생각하고 각오를 다질 필요는 있다.


나로 말하자면 두 종류의 숨바꼭질을 잘 버텨내고 있다. 단어를 찾는 숨바꼭질은 (간혹 쌍욕을 해가면서) 즐기고 있고, 노력의 결실을 찾는 숨바꼭질은, 일단 현재 성과가 나쁘지 않기도 하거니와 몇 년 안에 소설로 대박 터트려서 떼돈 벌겠다는 (막연하지만 진지한) 목표를 항상 마음에 품고 살기 때문에 번역으로 망해도 살 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한 글자도 안 썼지만 인생은 운칠기삼이니까 때 되면 쓰고 운 되면 성공할 것이다.


혹시 당신도 기왕 이 술래의 인생을 택했다면 운이 들어올 때까지 잘 버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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