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 감정을 해소하는 한마디의 마법
*다소 과격한 표현이 포함되어 있으니 낙선자 여러분은 마음껏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에라 씨발.
아니, 이건 단순한 욕이 아니라 차차 설명하겠지만 마음의 응어리를 푸는 효율적 심리 기법이에요.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낙선한 제 소감은 네, 위의 저 네 글자가 전부입니다. 저는 항상 마음속에 씨발을 고이 간직하고 살다가 수틀리면 (사람 없는 곳에서) 막 발사해요. 그러니까 낙선에 씨발은 자연스러운 반응이죠.
그런데 이 씨발은 자연스러움을 넘어 매우 경제적인 반응이기도 합니다. 이 한마디에 다양한 감정이 응축돼 있거든요. 이를테면 이런 거죠.
아쉬움: 이번엔 될 줄 알았는데 떨어지다니!
부끄러움: 당선 시 활동 계획까지 공표했는데 아 쪽팔려.
부정: 내가 50위 안에도 못 들었다고? 다 짜고 치는 거 아니야?
분노: 이 출판사 놈(오타임) 님들아! (부들부들)
나라 걱정: 우리 지식 문화의 등불인 출판인들이 명문을 알아보는 눈이 이토록 어둡다니 이 나라의 미래가 심히 걱정스럽도다.
이 모든 감정이 씨발에 담겨 있어요. 그래서 부정적 상황에서 씨발씨발거리는 건 무척 효율적인 감정 해소법입니다. 제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책에 나오는 얘기예요. 《씨발: 궁극의 영성수행법(F**k It: The Ultimate Spiritual Way)》이란 책의 요지가 그거거든요. (참고로 이 책은 제가 번역했지만 출판사에서 쌍욕을 그대로 실을지 변형할지 고민이라는 말만 남기고 끝내 출간을 포기한 비운의 책이라 한국어판은 제 컴퓨터에만 존재합니다.)
여하튼 《씨발》에 따르면 우리는 화나고, 답답하고, 슬프고, 부끄러운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씨발이라는 한마디를 토해냄으로써 부정적 감정을 거세게 분출해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 깊이 응어리가 지지 않아요. 긍정적인 생각도 일단 씨발거린 후에야 가능한 거죠.
자, 이제 저는 이렇게 씨발로 만감을 토했으니 비로소 이렇게 긍정적인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당선자 여러분의 수상을 축하하며 모쪼록 출간까지 순조롭게 이어져 베스트셀—
아 씨발 못해먹겠네 진짜.
아직 제 마음이 다 풀리지 않은 것 같으니 수상자들을 위한 축언은 뒤로 미루고 다시 제 마음을 들여다보자면……
가장 두드러지는 감정은 아쉬움이에요. 응모작인 <레벨업! 페르소나 SNS 글쓰기>를 쓰는 데 쏟은 시간이 아깝진 않아요. 비록 일과 육아를 모두 마무리하고 밤이 깊어야만 주어지는 짧은 자유 시간을 쪼개가며 쓴 글이 당선되진 못했어도 ‘만만한 글쓰기’를 권하는 그 글을 통해 누군가는 글쓰기에 취미를 붙이거나 다시 글 쓰는 재미를 찾았을 테니까요.
다만 내용의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는 거죠. 그 글에서 저는 글쓰기와 자기계발과 SNS 운영에 대한 팁을 다 담으려 했어요. 글을 쓸 때만 해도 세 분야를 조합하다니 기발한 발상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까 뭐 하나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죽도 밥도 안 됐어요.
아내는 그 글의 주제를 듣더니 너무 "스페시픽(specific)"하다며 좀 더 대중적이었으면 좋았을 거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제 견해는 다른데요, 일단 글쓰기는 요즘 독서인들에게 대중적 관심사예요. 글쓰기에 대한 책이 부쩍 많이 나오고 있잖아요? 더욱이 저는 오히려 더 스페시픽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콘텐츠 성공법을 말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제는 대중이 아니라 특정한, 좁은 고객층을 공략해야 살아남는 시대라고들 하거든요.
저는 그 글을 쓸 때 "글로 자기계발을 하고 싶은 사람"을 목표 독자로 설정했지만 돌이켜보니까 너무 광범위해요. 너무 뭉툭해. 더 뾰족하게 독자를 정했어야 하는데 말이죠. 예를 들면 "글을 쓰고 싶지만 쓰기 싫은 사람들"처럼. 그래서 그들의 가려운 부분, 혹은 건드리면 아프면서도 묘하게 짜릿한 부분을 마구 찔러서 “더 더 더 찔러주세요”라고 아주 그냥 애원을 하게 만들었어야 했어요.
이렇게 내용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말했듯이 그 글에 쏟은 시간이 아깝진 않습니다. 그 글이 밑거름이 되어서 다음에 더 좋은 글이 나올 거거든요. 아닌 게 아니라 <레벨업! 페르소나 SNS 글쓰기>도 이전에 《월간 콕》이라는 독립 잡지에 연재했던 <만만한 글쓰기>를 모태로 한 글이에요.
제 노력이 미진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저는 내 몫인 삼할을 다했어요.
운칠기삼.
제 좌우명입니다. 어떤 결과든 내 기여도는 삼할에 불과하고 나머지 칠할은 운의 몫이라 믿어요. 그러면 성공했다고 건방떨지도 않고 실패했다고 낙담하지도 않죠.
이번에 저는 부족한 시간을 아껴가며 글을 쓰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어요. 단지 애초에 글을 잘못 기획했든, 그 글의 가능성을 봐줄 사람을 못 만났든 간에 어떤 식으로든 운이 따르지 않았을 뿐이죠. 운이 좋았다면 더 좋은 기획으로 시작했거나 내 글을 살려줄 귀인을 만났겠죠?
하지만 운은 내가 어쩔 수 없으니 다만 다음에 더 좋은 운이 들어오길 기대하며 또 쓸 따름입니다.
자 이렇게 마음을 정리했으니 다시 한번 말해보겠습니다.
당선자 여러분의 수상을 축하하며 모쪼록 출간까지 순조롭게 이어져—
에이씨 내가 망했는데 무슨 남의 성공을 기원해. 솔직한 심정으로 브런치 서버가 토마호크 미사일 맞고 가루가 돼서 그 속의 콘텐츠도 다 날아가고, 그래서 당선작들 죄다 출간이 불가능해지면 좋겠어!
하지만 다 백업본이 있을 테니까 소용없겠지.
좋아요, 그건 뭐 괜찮아요.
하지만……
제가 여러분한테 뭐 하나만 물어볼게요.
이게 어제 아침에 브런치가 당선작 발표한 직후에 저한테 보낸 알림입니다. 보세요 여러분. 이게 무슨 의미라고 생각하세요?
이거 지금 나 멕이는 거죠? 네?
내가 진짜 이런 수모까지 겪은 마당에 여기서 포기하고 자빠질 순 없지. 더럽고 치사해서 계속 씁니다. 나중에 브런치고 출판사 놈, 아니 자꾸만 오타가 나네, 분들이고 간에 “작가님, 부스러기라도 좋으니 제발 글 한 줌만이라도 떨어뜨려 주시옵소서” 하고 엎드려서 빌 때까지 씁니다.
다 죽었어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