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막썰어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하이라이트 Aug 15. 2023

브런치가 우리의 최종 목표는 아니잖아요

스토리 크리에이터 선정에 따른 작가 급 나누기에 부쳐

브런치 성토대회가 한창이다. 응원(현금 후원) 기능을 도입하며 작가들을 스토리 크리에이터(이하 스크)와 일반 작가로 구별한 탓이다. 응원 기능에 대한 찬반을 떠나서 브런치팀의 작가들 급 나누기에 따른 박탈감과 분노를 표출하는 글과 댓글이 많이 보인다. 브런치팀은 스크 선정 기준으로 전문성, 영향력, 활동성, 공신력의 4가지를 제시했지만 그중에서 "분명한 주제로 전달력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있나요?"라고 명시된 전문성의 척도는 너무 모호해서 사실상 "심사자 마음대로!"로 해석된다. 이 자의성이 많은 작가가 불쾌해하는 이유라 생각한다.


이런 반발 여론을 마주하니 내가 출판 번역을 시작하고 아직 자리 잡기 전인 10년의 세월이 떠오른다. 출판사들은 무명 번역가에게 샘플 번역을 요구한다. 책의 일부분을 번역한 원고를 보고 의뢰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다. 그때 나는 여러 차례 샘플 번역 단계에서 낙방했고 언젠가는 연달아 몇 번을 탈락하고 꼬박 한 달을 일 없이 쉰 적도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샘플 번역의 당락이 반드시 실력으로만 결정되진 않는다는 선배 번역가의 조언 덕분이었다. 그는 편집자의 취향도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했다. 편집자마다 선호하는 번역 스타일이 있어서 거기 부합하는 번역가가 선정될 확률이 높으니 무조건 자신의 실력을 탓하며 낙담하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그 말은 스크 선발에도 대입할 수 있다. 심사자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아마 그(들)의 취향 내지는 편향이 개입했을 것이다. 만일 알고리즘을 이용했다고 할지라도 알고리즘 역시 인간의 산물인 까닭에 편향과 허점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스크에 선정되지 않았다고 무조건 자신의 글이 수준 미달이라거나 무가치하다고, 자신의 한계는 여기까지라고 자책할 일은 아니다. 모든 형태의 예술이 그렇듯이 글도 객관적 평가가 불가능하다. 글은 수학 풀이가 아니다. 같은 글을 보고도 어떤 사람은 훌륭하다고, 어떤 사람은 틀려먹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니 박한 평가가 꼭 옳은 평가라고 믿을 필요는 없다.




너는 스크에 선발됐으니 속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그 말이 맞다. 나도 스크로 선정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박탈감 내지는 당혹감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금세 그 감정의 올가미를 풀고 다시 글을 썼을 것이다.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는 목적은 브런치팀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길고 진지한 글을 쓰고 그 글을 읽어줄 독자와 동료 작가를 만날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 브런치를 좋아하지만 브런치팀의 운영 방식과 협소한 시야에는 이전부터 비판적이었다(<브런치북 대상 타려면 브런치 메인 가지 마세요> <브런치가 싫어서 브런치 더 열심히 하려고요> <브런치에는 있고 인스타에는 없는 것>). 그래도 여전히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이유는 책을 내고 나라는 사람을 알리기 위해서다.


브런치 작가 중에서 출간과 퍼스널 브랜딩이 목적인 사람이 나 혼자는 아닐 것이다. 다년간의 브런치 경험으로 감히 말하건대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나와 같은 목적을 추구할 확률이 95퍼센트다. 그렇다면 (아직) 브런치팀의 선택을 못 받았다고 낙담할 일이 아니다. 당신의 목적을 추구하기 위한 플랫폼으로서 브런치의 이용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니 계속 쓰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이다. 나는 샘플 번역이 연달아 불합격해도 기회가 생길 때마다 샘플 번역을 보냈다. 그 외에는 달리 도리가 없으니까. 그래서 번역을 시작한 지 15년이 넘은 지금은 출판사에서 샘플 번역을 요청하지 않고 오히려 최대한 일정을 맞춰줄 테니 같이 작업하자고 요청하는 번역가가 됐다. 떨어져도, 탈락해도 계속하는 게 해법이다. 요즘 읽고 있는 『웹툰을 그리면서 배운 101가지』에서 웹툰 작가 이종범은 같은 말을 이렇게 표현했다.


재능을 탓하기보다는 재능을 탓해야만 하는 순간까지 연습하는 게 낫다.


지금은 재능을 탓하고 멈춰야 할 순간이 아니다. 그러나 굳이 재능을 탓하고 싶다면 내가 최근에 깨달은 글쓰기의 원칙을 근거로 감히 조언을 보태고 싶다.




나는 지난봄부터 <못 그려도 GO>라는 제목으로 매일 그림일기를 올리고 있다(8월은 번역 마감 일정 때문에 쉬는 중). 처음에 의도하진 않았지만 요즘 내 삶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활동이 육아다 보니 사실상 육아 일기가 됐다. 보면 알겠지만 내 그림 실력은 프로라면 발로 그릴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런데도 그림일기를 올린 지 반년도 안 돼서 출간 제의를 받았다(<이 그림도 출간이 될까요>). 결과적으로 내가 고사했지만 출판사에서는 무엇 때문에 내 그림일기에서 시장성을 봤을까?


누군가의 문제를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2022년 최대 베스트셀러 『역행자』에서 30대 초반에 경제적 자유를 이룬 저자 자청은 "'남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 이게 사업의 본질이고 수익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즉, 시장성은 문제 해결 여부로 결정된다. 그러면 내 그림일기는 어떤 문제를 해결해주는가? [비속어 주의] '나만 이렇게 육아가 좆같은가?'라는 고민이다. 처음에 의도하진 않았지만 내 일기에는 "나도 그래요"라는 답이 담겨 있다. 나는 그게 내 일기의 잠재력과 시장성이라 보고 내용을 추가하고 정리해서 올해 브런치북 공모전에 <육아아아아악>이라는 제목으로 출품할 계획이다.


몇 마디 더 덧붙이자면 내 일기는 내 이야기를 진솔하게 전달한다.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겪은 구체적 사건을 소재로 육아 때문에 미칠 것 같은 기분(외 여러 감정)을 때로는 상스러운 말까지 동원해 솔직히 표출한다. 그것 역시 내 그림일기의 매력이라 생각한다.




정리하자면 누군가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글 내지는 팔릴 만한 글을 쓰고 싶다면 다음의 세 가지를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1) 다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주는가?
2) 내 경험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는가?
3) 내 생각과 감정을 지나치게 꾸미거나 숨기진 않았는가?


2, 3번은 에세이에만 해당하는 원칙일지 몰라도 1번은 혼자 읽을 글을 쓰는 게 아니라면 매번 고민해야 할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지금 이 글은 1~3번을 모두 충족했다. 그래서 라이킷 최소 200을 전망한다.


만일 이 글이 라이킷 200은커녕 20도 못 받는다면? 혹은 <육아아아아악>이 끝내 출간되지 못하거나 출간된 후 시장에서 철저히 외면당한다면? 실망하거나 부끄럽거나 둘 다거나 둘 다 아니거나, 그때 가봐야 알겠지. 하지만 실망감과 창피함을 느끼더라도 그것은 잠시 스치는 감정일 뿐이고 나는 금세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또 글을 쓸 것이다. 그 외에는 달리 도리가 없으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