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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이라이트 Mar 14. 2023

오다 주웠는데 니 하든가

"엄마, 아빠 또 장난쳐!"


첫째가 종종 엄마에게 일러바치는 말이다. 애한테 괜히 시답잖은 말장난이나 치면 '어휴, 또야?'라는 투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 장난이란 예를 들자면…


아니 막상 적으려니 생각이 안 나는데 여하튼 나는 별 시답잖은 장난으로 골탕 먹이는 걸 좋아한다. 딱 상대가 기분 나빠지기 직전까지만. 평생 눈치를 보고 살아서 절대 선을 넘는 법은 없다.


오늘만 해도 화이트데이라서 오후에 아내가 둘째와 낮잠을 잘 때 얼른 나가서 꽃 한 다발을 사 왔다. 마침 동네에 리어카로 꽃 파는 할아버지가 와서 한 다발에 5000원으로 싸게 샀다. 꽃 이름도 모르고 그냥 권해주는 거 아무거나 들고 왔다.


꽃다발을 식탁에 올려두고 그 옆에 아내를 향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정성 다해 손글씨로 고백하는 카드를 올려뒀다면 100점이었겠지만 나는 아내가 마냥 좋아하는 꼴을 못 본다. 그래서 메모지에다 "오다 주웠다"라고 큼지막하게 적어놓았다.


잠에서 깬 아내는 꽃을 보고 한껏 높아진 목소리로 "어머! 뭐야!"라고 감탄한 후 메모를 보고는 "뭐야?"라며 피식 웃었다. 평소에도 "그 옷 예쁘네"라고 말하고 "정말?"이라고 물으면 "저는 지금 AI 모드입니다"라고 대답하는 남편에 워낙 익숙하니까 그러려니 할 수밖에.


감히 나한테 뭐라 할 처지가 아니지. 밸런타인에 아무것도 안 주고 넘어갔으니까. 나 정도면 대인배 남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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