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복이 작가의 <만화 그리는 법>(유유, 2021)을 읽고 그림일기를 그린 지 11일째다. 저자는 만화가가 되고 싶으면 매일 이렇게 그림일기를 그리고 어딘가 올리라고 한다. 그러면 일종의 리추얼이 되어서 꾸준히 그리게 된다며.
그렇잖아도 인스타 게시물로 소소하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얼마 안 돼 적절한 시기에 이 책을 만났다. 이 책이 내게 꼭 맞았던 이유는 (저자에게는 실례가 되는 말일 수 있지만) 그림을 썩 잘 그리는 것 같진 않았기 때문이다. 어딘가 비율도 안 맞고 동작도 엉성하고 선도 매끈하진 않다. 하지만 만화는 단순히 예쁘게 그리는 게 전부가 아니고 스토리 혹은 메시지 전달력이 좋아야 한다는 걸, 그런 그림으로 연재도 하고 이미 단행본도 여러 종 낸 저자의 이력이 증명한다.
대단한 기술을 가르쳐주진 않는다. 어찌 보면 죽이 되는 밥이 되든 매일 그러라, 매일 한 편씩 완성해라, 그러면 언젠가 만화가가 되어 있을 거다, 라는 메시지가 이 책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더 좋았다. 그 비결이라는 게 너무나 단순해사 바로 실천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아직 잘 그리진 못해도 매일 그림일기를 써서 브런치와 인스타에 부끄러운 줄 모르고 올린다. 인스타는 아예 새로운 계정을 팠다. 사람들 반응 신경 쓰지 않고 꾸준히 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매일 그리기가 쉽지 않다. 소재가 번뜩 떠오르지 않는 날도 있고 매번 어떻게 그려야 할지 막막하다. 글을 쓸 때는 그런 막막함을 안 느낀다. 이미 오래 단련돼서 소재만 있으면 어떻게든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림은 이제 입문했다. 그러니 막막한 게 당연하다. 아직은 그 막막함조차도 재미있다. 아이패드에 긋고 지우고 칠하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떻게든 그림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다 그려놓고 보면 비록 유려하진 않을지언정 개성 있고 (내가 보기엔) 메시지 전달도 잘 돼서 흐뭇하다. 어차피 아마추어이고 초심자니까 못 그렸다고 자책하진 않는다. 완성한 것만으로 대견하다.
매일 그림일기에 적잖은 시간을 쓰느라 책을 읽거나 TV를 볼 시간이 부족하다. 하지만 그리기가 재미있으니까 괜찮다.
만화가가 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미 수년 전, 아니, 20대부터니까 20년 전부터 그림을 잘 그리면 내 글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비록 잠시였지만 도트를 찍어서 그림을 그리고 네이버 블로그에 올리기도 했다.
그렇게 20년 전부터 머뭇거렸던 그림쟁이의 길을 다시 걷고 있다.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 모르나 그곳은 분명히 좋은 곳일 거다.
나는 지금 좋은 곳으로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