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하이라이트 Mar 25. 2023

지까짓 게 예뻐봤자지

예쁜 여자를 봤다.


둘째가 고열로 수액을 맞는 동안 아내가 먼저 점심을 먹고 돌아온 후 내가 병원을 나섰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밖으로 나가는데 몇 걸음 앞에 검은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나와 같은 방향을 보며 서 있었다.


뒷모습이 "나 미인이야"라고 말하고 있었다. 마침 내가 지나가는데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예쁜 얼굴이었다.


'예쁘네.'라고 생각했다.


그게 다다. 무덤덤하게.


20대 시절이었다면 괜히 설렜을 것이다. 그땐 일말의 가능성이란 게 있으니까. 생판 모르는 여자라도 우연의 연속으로 나와 연인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상상은 해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내겐 그럴 여지가 전혀 없다. 유부남에겐 그런 상상조차 금지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꿈에서 아이유와 키 큰 가로수들 사이로 밝은 조명이 내리는 밤길을 다정하게 걸었던 기억이 난다. 데이트를 마치고 집에 데려다주는 길이었다. 아이유의 집은 얕은 오르막 위에 있었다. 이제 한 모퉁이만 돌면 아이유의 집인데……


거기 아내가 아이를 안고 서 있었다!


꿈에서조차 다른 여자를 만나는 건 용납되지 않는다. 그것이 유부의 길.

매거진의 이전글 내 삶의 안식처, 넷플릭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