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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이라이트 Jan 03. 2019

번역가는 영어와 한국어 중 무엇을 잘해야 할까

다 잘해야지, 뭔 소리야

간혹 번역가는 영어보다 한국어를 더 잘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그럴까? 물론 둘 다 잘해야 하는 게 맞다. 그렇지 않으면 엄밀히 말해 번역가로서 실격이다. 하지만 굳이 하나를 선택한다면 한국어를 더 잘하는 편이 시장에서 살아남기에 유리할 것이다.


뜬금없는 가정을 한번 해보자. 한국 화가 2명이 여배우 나자닌 보니아디(Nazanin Boniadi)의 초상화를 그린다. 대관절 그게 누구냐고? 미드 <홈랜드>에 조연으로 나오는 이란계 여배우다. 아마 <홈랜드>를 본 사람도 이름만 듣고는 누구인지 감이 잡히지 않을 것이다. 그 정도로 국내에는 생소한 배우다.


자, 다시 우리의 가정으로 돌아가서 A화가는 시력이 2.0이고 그림 실력은 100점 만점 중 50점이다. B화가는 시력이 0.5이고 그림 실력은 85점이다.


A화가는 보니아디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림을 잘 못 그리니까 그 미모를 화폭에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그래서 초상화 속 여인은 보니아디를 닮았지만 아무리 잘 봐줘도 여배우라고 할 정도는 안 된다.


B화가는 눈이 안 좋아서 보니아디가 흐릿하게 보인다. 그래서 대충 윤곽만 잡고 나머지 부분은 상상력으로 채운다. 그런데 워낙 실력이 출중하다 보니 절세미인의 초상화가 완성된다. 다만 그림 속 인물이 보니아디와 동떨어져 있을 뿐.


그렇다면 한국 시장에서 누가 더 훌륭한 화가로 평가받고 그림이 비싸게 팔릴까? B다. 왜냐하면 한국 사람들은 보니아디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니 그림을 얼마나 아름답게 그렸느냐가 평가의 기준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니아디를 아는 사람이 보면 B의 그림은 엉터리라고 할 것이다. 물론 그런 사람은 한국에 몇 안 되겠지만.


좀 극단적인 비유긴 하지만 여기서 A는 영어를 잘하지만 한국어 문장력은 부족한 번역가, B는 영어 독해력은 떨어지지만 한국어로 매끈한 글을 쓸 줄 아는 번역가다. 그리고 후자가 시장에서 생존율이 더 높다.


A 같은 번역가는 시장에서 설 자리가 별로 없다. 아무리 원문을 잘 이해했어도 번역문을 읽을 맛이 떨어지게 쓰면 출판사에서 찾지 않는다. 단, 영어 독해력이 탄탄하므로 한국어 구사력만 키우면 다시 기회가 찾아올 수는 있다. 다행히 영어보다는 모국어인 한국어 실력을 키우는 게 훨씬 쉬운 일이기도 하다.


B는 글이 술술 읽히니까 계속 번역 의뢰가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번역가로 장수할 것이다. 그 운이란 오역 논쟁에 휘말리지 않는 것이다. 사실 출판계에서는 영화 쪽만큼 오역 논쟁이 크게 일어나지 않는다. 영화야 한 작품에 수백만 명의 관객이 몰리지만 책은 잘 팔려봤자 몇만 부 수준이고 몇천 권 팔리는 책이 수두룩하다. 그러니 한 권에 집중되는 독자의 관심이 영화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작다. 그리고 원문이 바로 귀에 꽂히는 영화와 달리 수고롭게 원문을 구해서 읽어야만 오역 여부를 가릴 수 있다. 당연히 웬만큼 잘 팔리고 세간의 관심이 몰리는 극소수의 책이 아니면 오역으로 떠들썩해지는 일이 드물다.


그리고 누가 오역을 지적하더라도 모른 척 입 꾹 닫고 넘어가면 크게 타격을 입지도 않는다. 출판계에서 오역 논란은 <스티브 잡스> 같은 블록버스터급 도서를 둘러싼 것이라면 모를까, 평범한 책과 관련해서는 찻잔 속 태풍에 불과해 금방 사그라든다. 그런 현상이 옳다는 게 아니라 현실이 그렇다는 말이다.


그래서 B번역가는 잘나갈 것이다. 물론 꼼수는 언제든 들통나 망신을 살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유의해야 하긴 할 것이다.


그래서 B번역가가 누구냐고? 나도 모른다. 굳이 다른 번역가의 글을 원문과 대조해 가며 읽을 만큼 부지런한 사람은 아니라서.


그저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문득 생각나서 적어봤을 뿐이다.


그러면 나는 어디에 속하냐고? 글쎄, 번역을 하면 할수록 우리말 구사력이 아쉽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더 자연스럽고 더 맛깔난 표현이 분명히 있을 것 같은데 머릿속 저편에서 어렴풋이 보이기만 할 뿐 확 잡히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그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까?


언젠가 사주 아주머니가 그랬다. "쯧쯧, 이 머리로 노력했으면 서울대 가고도 남았어!"


하지만 어쩌나 난 노력 유전자가 없는 사람인 걸. 그리고 어차피 평생 글만 쓴 작가도 끝까지 자기 글에 부족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노력하나 안 하나 어딘가 미진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씀. 그러니 노력을 해서 무엇 하나. 그저 읽고 싶은 글 읽고 쓰고 싶은 글 쓰면서 글발이 늘면 좋고 안 늘면 마는 거지.


이래서 여태 A급 번역가가 못 됐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꼼수는 쓰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출판사에서 번역료를 아까워하지 않을 정도의 품질은 낸다는 것에 만족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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