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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이라이트 Jun 29. 2023

선생님 제 인생이 꼬였는데요



이상한 상담사다. 아침마다 바지를 깜빡하고 팬티바람으로 출근한다는 사람에게 그러면 팬티를 예쁘게 입으라니. 엉뚱한 처방만 내리는 게 아니라 자기 앞가림도 못 한다. 한눈에 반한 사람과 제대로 연애도 못 하고, 엄마와 싸우지 않는 법을 가르치고는 잠시 후에 엄마한테 빽 소리를 지른다. 이런 나사 빠진 상담사의 이야기를 그린 만화책이 팬들의 열화와 같은 펀딩으로 10년 만에 복간된 이유는 무엇일까?


마지막에 실린 작가의 후일담을 보니 알겠다. 그는 이 작품을 지난날의 자신과 함께해준 고마운 존재라고 말한다. 그 시절에 이 만화를 그리며 혼란스러운 감정을 쏟아내고 관찰했다. 그래서 이 책은 뭐 하나 뚜렷이 해결되지 않고 어수선하다. 이리저리 꼬여 풀릴 것 같다가도 풀리지 않는 인생의 현실을 적당히 코믹하게 보여준다. 그게 인생이니까.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으로 펼쳐지는 존재의 복잡한 궤적.


뒤늦게 <나의 해방일지>를 보고 있다. 이 드라마도 비슷한 현실을 보여준다. 답답하게 꼬인 인생에서 해방되기 위한 몸부림. 그러고 보니 떠오르는 장면 하나. 얼마전에 둘째가 생후 16개월 만에 처음으로 수영장에 들어갔다. 긴장해서 표정 없는 얼굴로 튜브에 몸을 맡긴 채 누가 밀어주는 대로 둥둥 떠다니기만 했다. 그런데 장난으로 다리를 잡아당기려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보았다. 파닥파닥 느리지만 열심히 발길질하고 있는 조그만 두 다리를.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려 애쓰고 있었다.


우리는 다 그렇게 버둥거리고 파닥거리며 산다. 아무리 살아도 익숙해지지 않는 인생의 물길 속에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 채로. 삶을 헤쳐나갈 방법을 알려주는 책도 좋지만 절대 술술 풀릴 리 없는 인생의 한 시절을 따스한 시선으로 보여주는 책을 읽는 것도 몸부림에 지친 마음을 회복하는 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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