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진라면

by 김콤마

인간은 잔인해서 내가 가진 것을 남이 가지지 못했다는 것을 알 때 비로소 그 가치를 체감한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누군가가 간절히 바란 내일”이라는 유명한 말은 내일을 간절히 바랐던 이에게 얼마나 가혹한 말인가. 나도 한번 무자비해져 보자면 지금 내가 애들을 키우느라 힘들다고 징징대는 이 삶도 누군가가 열망하던 인생이었다. 그가 누구인지 똑똑히 안다.


스무 살의 겨울이었다. 숫기가 없던 나는 남들처럼 카페나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면접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아 지하철 택배원으로 일했다. 말 그대로 지하철로 물건을 나르는 일이다. 주로 서류나 꽃처럼 휴대가 쉬운 물건을 몇 시간 내에 배송하고 지하철 이용료와 통화료는 배달원이 부담했다. 지하철을 무료로 탈 수 있는 노인이 아니라면 남는 게 없는 일임을 나중에 임금을 받고 나서야 알았다.


그 시절에 대치동이었던가 강남의 어느 동네에 배송을 갔는데 지하철 역사에서 나오자 곧 하얀 철제 울타리에 꽃이 풍성히 핀 대단지 아파트가 나왔다. 주변에 상가가 많고 낮 시간인데도 다니는 사람이 많아 활기찬 분위기였다. 고향에서는 조용한 주택가의 오래된 주택에 살았고 서울에 올라와서는 언덕 위에 다닥다닥 늘어선 다세대주택의 방 한 칸을 얻어 하숙을 하던 내게는 그 풍경이 마치 처음 본 외국 어딘가의 사진처럼 낯설어 뇌리에 강렬히 남았다. 그때부터 나는 그렇게 번화한 동네의 아파트 단지에 사는 삶을 동경했다.


시간이 흘러 20대 후반의 나는 산책을 즐겼다. 날이 좋으면 정처 없이 한강변이나 공원을 두세 시간씩 걸었다. 주말이면 언제나 풀밭에 돗자리를 깔고 망아지 같은(하지만 키워 보니 ‘망나니 같다’가 더 어울리는) 아이들을 풀어 놓고 간식을 먹는 가족 단위 행락객이 곳곳에 보였다. 그때 청춘의 절정이라 할 20대 동안 변변한 연애 한 번 못 한 내게는 그 풍경 역시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내 인생의 걸음이 아무리 반복돼도 그들이 있는 곳엔 다다르지 못할 것만 같았다.


세월의 태엽을 빠르게 돌려 오늘에 이르면 나는 상가가 즐비한 신도시의 대단지 아파트에 살고 있고 단지를 두른 철제 울타리는 늦봄이면 장미 울타리로 변한다. 어제는 아이들을 데리고 지역 축제에 가서 한 시간쯤 걸으며 달고나와 꽈배기와 호떡으로 주전부리를 하고 도중에 망나니처럼 소리를 지르려고 하는 첫째의 입을 막으며 돌아왔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10~20년 전의 내가 그토록 부러워했던 삶을 살고 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삶이 그렇지 않은 삶보다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 내게 아이들이 없다면…… 그런 삶은 생각할 수 없다. 김치와 라면을 먹다가 김치 없는 라면을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아이들이 없을 때 내 삶은 사리곰탕면이었고 첫째만 있었을 때는 지금 생각해 보니 진라면 순한맛이었다. 그리고 둘째까지 난리를 치는 지금은 진라면 매운맛이다. 여기서 하나라도 더 태어나면 불닭볶음면이 될 것 같아 조만간 정관을 묶어버릴 생각이지만 다시 사리곰탕면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다. 순한 라면은 어쩌다 한 번씩 별미로 좋지만 라면은 역시 적당히 매워야 제맛이다.


하지만 아무리 맛있는 라면도 매일 먹으면 물린다. 인생도 그렇다. 아무리 내가 동경했던 삶이라지만 쉼 없이 반복되면 행복한 줄 모른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찰리 채플린은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문득 삶에서 멀어져 관객의 시선으로 볼 때야 낙관적 시선으로 삶을 조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저녁에 모처럼 남은 집안일 없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아이들과 나란히 소파에 기대 TV를 보는데 어쩐 일인지 둘 다 한참 집중해서 보느라 온 집안이 고요할 때 아이들을 돌아보면 마치 유체이탈을 한 듯 멀찍이서 그 한가한 현장을 보게 된다. 애들은 무탈하고 당장 걱정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문득 행복해진다.


또 어느 날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첫째가 굳이 비누방울 놀이를 하고 싶대서 애들을 데리고 인근의 종합운동장으로 갔다. 그늘 밑에서 비누방울 장난감을 쥐어주자 첫째는 비누방울을 불고 둘째는 그 방울을 쫓아다니며 깔깔댔다. 아이들의 놀이에 개입할 필요가 없어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자니 문득 행복해졌다.


그러나 이 행복의 순간은 이내 깨지고 만다. TV를 보던 아이가 재미없다고 이 프로, 저 프로를 틀며 짜증을 내는 순간, 잘 놀던 애들이 갑자기 첫째가 비누방울 도구를 들고 도망가고 둘째가 소리 지르며 쫓아가는 순간, 고요와 멍함이 깨지고 멀리서 보던 나도 다시 삶의 현장으로 들어오고 만다. 그럴 때 인생은 비극이라고까진 못 해도…… 빡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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