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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이라이트 Aug 15. 2017

번역가에게 필요한 것, 배짱과 비빌 언덕

프리랜서 번역가에게는 배짱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남에게 꼬장을 피우라는 말은 아니다. 출판사에다 "어디 그 가격으로 나한테 일을 맡기려고 해!"라거나 "내 번역 원고 단 한 글자라도 맘대로 고치면 알아서 해!"라고 일갈하라는 소리가 아니다. 그런 건 출판사에서 제발 일 좀 맡아 달라고 졸라댈 정도의 대번역가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그런 경지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꼬장꼬장함이 '장인정신'이라 불릴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같이 일이 몰리긴커녕 끊기지만 않아도 감지덕지인 번역가가 그런 똥배짱을 부렸다가는 밥줄 뚝 끊기기 십상이다. 잔인한 말이지만 A급 번역가는 공급이 달려도 B급은 공급이 넘쳐나는 게 이 바닥 현실이다. 나를 대체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내가 말하는 배짱이란 그런 상황에서도 "뭐, 어떻게든 먹고는 살겠지! 정 안 되면 부모님(혹은 배우자, 형제자매, 친구 등등)한테 손 좀 벌리지!" 하는, 기개라면 기개고 빈대 정신이라면 빈대 정신이라 할 수 있는 의연함이다.


이런 마음가짐이 왜 필요한가 하면 번역가, 더 넓게 보아서 프리랜서는 언제 일이 끊길지 모르는 파리 목숨이기 때문이다. 편집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A급 번역가가 아닌 이상 우리는 일감이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주 이상 끊길 때가 종종 있다.


일 없는 날이 오는 것은 애초에 직업의 안정성을 기대할 수 없는 프리랜서의 숙명이다. 나만 해도 9년째 번역을 하고 있지만 지금도 가끔 며칠씩 일감이 없을 때가 있다. 그래도 이 정도는 약과다. 초기에는 거의 내리 한 달을 쉰 적도 있다.


한 6년 차쯤 되었을 때였다. 일감이 끊기더니 며칠, 몇 주가 지나도 의뢰가 들어오지 않았다. 샘플 번역이라고 보내는 것도 죄다 떨어졌다(참고로 샘플 번역이란 출판사에서 번역가에게 작업을 맡기기 전에 번역가의 실력을 가늠하기 위해 A4 몇 장 분량의 번역을 요청하는 것을 말한다). 내가 생초짜도 아닌데 그 지경이 되니 정말 답답했다. 그래서인지 주차 중에 멀쩡한 벽을 들이받아서 뒷범퍼가 깨지는가 하면 언놈이 멀쩡히 세워둔 차를 앞문에서부터 뒷문까지 다 긁고 도망갔는데 끝내 범인을 잡지 못하는 지경이 됐다. 그게 번역 일감이 없는 것과 무슨 상관이냐 하면 할 말이 없지만 하여튼 그렇게 지지리 운도 없는 시기가 있었다.


그런 시기를 버텨내는 힘이 바로 배짱이다. 어차피 불안해한다고 없던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의기소침해서 아무것도 못 하느니, 차라리 "에라, 될 대로 돼라" 하는 마음으로 하고 싶은 것 하면서 빈둥대는 게 더 낫다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나는 일이 끊기면 그냥 영화 보고 책 보고 게임하고 사진 찍고 늘어지게 잔다. 한마디로 놀고 자빠지는 것이다. 번역도 예술이라면 예술이니까 이렇게 딴짓을 하면서 창조력을 되살려야 한다고 합리화하면서.


다만 내가 이렇게 배짱을 부릴 수 있는 것은 비빌 언덕이 있기 때문이다. 결혼 전에는 간혹 어머니께 손을 벌렸다. 당장 생활비가 다 떨어져 가는데 굶어 죽는 것보다는 그게 더 효도하는 길이지 않겠나. 결혼한 지금은 바깥양반(=아내)이 돈을 벌어 오니까 든든하다. 그리고 나는 에이전시에 소속되어 있어서 지금 당장 나한테 들어오는 일은 없어도 에이전시에는 꾸준히 일감이 들어오니까 기다리다 보면 그중에 뭐라도 나한테 떨어지겠지 기대할 수 있다.


그러니까 정 안 되면 누군가의 등골이라도 빼먹고 살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비상용 등골(이라고 하면 표현이 너무 끔찍하지만)이 확보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프리랜서의 삶이 무척 척박할 수 있다. 외벌이 가장에게 번역 일을 권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등골 타령을 한다고 내가 정말 등골을 빼먹을 작정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와 비슷한 상황에 몰리더라도 번역가로서 자존감을 다 잃지는 않을 정도의 자부심은 있다. 어머니에게 비록 용돈은 드리지 못하더라도 친구들에게 아들이 번역한 책이라고 자랑할 만한 책을 내는 것으로 효도를 하고 있고, 가계에 큰 보탬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파트타임 주부로서 열심히 '내조'하고 있다는, 그런 자부심.


예전에 내가 아는 연극 연출가 한 분에게 들은 말이 있다. 그분은 뜻이 맞는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마을의 일원이었는데, 그 마을에는 주민이라면 누구나 와서 먹을 수 있는 공동 식당이 있었다. 그분은 자신이 비록 한 달에 몇십 만 원 밖에 못 벌기도 해서 그 식당에서 공짜 밥을 먹더라도 남에게 신세 진다는 생각은 안 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자신은 연극으로 사회에 공헌을 하고 있으니까 그 밥을 먹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절대 "내가 이렇게 위대한 일을 하는데 니들이 밥상 정도는 차려 와야지!" 하는 오만함이 아니었고,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의 발로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누군가가 유익하게 혹은 재미있게 읽을 책을 만드는 것으로 사회에 공헌을 한다고. 그래서 비록 벌이는 시원찮을지언정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기왕이면 벌이가 좋아서 일하고 싶을 때만 일하겠다고 똥배짱 부릴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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