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글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부자가 되는 것을 죄악시하는 사람이었다. 그 가치관에 급격한 균열이 생긴 것은 병마와 싸우면서, 라고 하기엔 너무 거창하고 그냥 조금 아파서 입원했을 때였다.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한 달쯤 지난 일요일, 이른 새벽부터 명치께가 아프던 게 아침이 되도록 통증이 가시지 않아서 택시를 타고 응급실로 향했다. 처음 느끼는 통증은 아니었다. 결혼 전부터 종종 밤이면 누가 펜치로 명치를 잡고 비트는 것 같은 통증을 느껴 두어 시간씩 잠을 못 이뤘다. 이상하게 아침이 되면 씻은 듯이 나았고 동네 병원에서도 별 이상은 없다고 했다. 신혼여행지인 이탈리아에서도 한 날은 똑같은 통증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 그냥 뭘 잘못 먹어서 그러는 줄 알았다.
응급실에서는 몇 가지 검사를 하더니 담석이 있다며 바로 담낭, 그러니까 쓸개를 떼야하니까 입원하라고 했다. 아니, 그걸 떼도 살 수 있나요?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입원 후 수술을 기다리며 며칠이 지났고 그 사이에 담관에서 이상이 발견됐는데, 하필 그 병원에는 담관을 전문으로 보는 의사가 없어서 다른 병원을 소개받았다. 병원을 옮겨 담관부터 해결하고 며칠 후 담낭을 제거했다.
그렇게 쓸개 빠진 인간이 되기 위해 보름쯤 병원 신세를 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부자가 되어야겠다고. 치료비가 많이 나왔던 것은 아니다. 처음 입원한 병원이 문제였을 뿐이다. 워낙 오래된 시설이라 고개를 돌리면 침대 난간에 덕지덕지 껴서 웬만한 청소로는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때가 자꾸만 눈에 들어와 내 몸까지 더럽혀지는 것 같았다. 냉장고 문을 열면 그간 수많은 가정의 김치가 들락거린 역사를 냄새가 증명했다. 나이가 들어서 병에 걸리면 최고급 병원의 특실에 입원하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큰 병에 걸렸는데 돈이 없으면 서러울 것 같았다. 그래서 부자가 되고 싶었다. 단순하지만 내게는 가치관의 대격변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그런데 번역가가 부유해질 방법이 있을까? 일단 이전 글에서 말한 대로 몸을 갈아 넣으며 열심히 일하는 것과 인세로 계약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전자는 지속성에 한계가 있고 후자는 실제 수입이 늘어난다는 보장이 없다.
그 밖에 또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 결혼이다. 혼자 벌면 재산을 불리기가 어렵지만 둘이 벌면 한결 낫다. 특히 꼬박꼬박 월급을 받는 배우자를 만나면 좋다. 프리랜서라는 업종의 특성상 소득 안정성이 떨어지는 번역가는 기왕이면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는 사람과 결혼하는 편이 심리적으로 보나 경제적으로 보나 장기간 관계를 유지하기에 유리하다. 배우자가 밖에서 돈을 버는 동안 번역가는 틈틈이 집안일을 할 수 있으므로 역할 분담도 잘 된다. 특히 아이를 낳으면 번역가가 일을 줄이고 육아에 많은 시간을 쓸 수 있기 때문에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를 일이 없다.
현재 우리 부부가 그렇다. 아내가 직장에 다니고 내가 집에서 일하면서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식사를 준비하는 한편으로 하원/하교한 아이들을 챙긴다. 혹시 아이가 아파서 조퇴하거나 결석하더라도 아내가 휴가를 쓸 필요 없이 내가 병원에 다녀오고 집에서 수발을 든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교육비가 많이 들지 않기 때문에 아내의 수입으로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고, 그래서 나는 프리랜서의 본질적 불안정성에서 느끼는 압박감이 비교적 덜하다. 주변에 보면 이런 식으로 직장인 배우자를 둔 번역가가 적지 않다. 번역가로서 롱런하기에 좋은 조합이다.
물론 이런 조합을 만들기가 쉽진 않다. 결혼이란 전략적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계산이나 계획이 통하지 않을 만큼 운명적 요소가 강하기 때문이다. 내 경우에는 순전히 운이 좋았다. 교제를 시작할 때만 해도 아내는 직업이 불안정하고 수입이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몇 번 이직을 거치며 소득이 증가하더니 결혼 후에는 안정적인 직장에 정규직으로 입사했다. 그렇게 생활이 안정되고 수입이 늘어나니 조금씩 자산을 늘릴 여력이 생겼다. 아내가 안정적으로 좋은 소득을 올리는 사람이 되는 과정에 내 노력이나 계획이 끼어들 틈은 별로 없었다. 요컨대 결혼을 통한 자산 증식은 효과적이긴 하나 내가 원한다고 해서 쉽게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다음으로 부자가 되기 위해 고려할 방법은 재테크다. 내가 쓸개 없이 퇴원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돈 공부였다. 당시 나는 그쪽으로 워낙 무지해서 주식 계좌는커녕 그 흔한 실비보험조차 없었다. 일단 보험 공부부터 했다. 어렵지 않았다. 시중에 보험 관련 도서가 여러 종 나와 있었고 두 권 정도 읽었더니 얼추 감이 잡혔다. 몇 명의 설계사와 전화로 상담한 후 그중 한 명을 만나 실비보험에(그리고 암 진단비가 보장되는 종합보험도 함께) 가입했다.
실비보험은 이후 아주 요긴하게 쓰였다. 번역가는 종일 한 자세로 앉아서 글을 쓰다 보니 목, 어깨, 허리에 무리가 간다. 운동과 스트레칭을 소홀히 하면 금방 해당 부위에 통증이 생기고 그게 두통으로까지 이어진다. 일단 심한 통증이 생기면 단번에 가시진 않는다. 이럴 때는 병원에 가서 도수치료를 받으면 빠른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런데 도수치료는 1회에 비용이 10~15만 원 정도 들고 보통은 한 번으로 통증이 다 낫지 않아서 금전적 부담이 크다. 하지만 실비보험이 있으면 그중에서 상당 부분을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가볍게 병원을 찾을 수 있다. 나는 거의 매년 도수치료로 톡톡히 덕을 봤다.
보험 문제를 해결한 후 관심이 향한 것은 주식 투자였다. 보험과 마찬가지로 책으로 공부했고 틈틈이 관련 팟캐스트를 들었다. 당시 가장 인상적이었던 책은 《주식시장을 이기는 작은 책》(조엘 그린블라트 저, 안진환 역, 다산북스, 2025)이었다. 미리 정해진 공식에 따라 종목을 선정하고 기계적으로 매매하는 투자법, 이른바 퀀트 투자를 소개하는 책이었는데 이후 관련 도서를 몇 권 더 읽고 퀀트 투자에 입문한 후 지금도 포트폴리오 중 일부는 퀀트 투자의 자리다.
이쪽으로도 나는 꽤 운이 좋았다. 아내가 안정적인 직장에서 괜찮을 소득을 올렸기 때문에 주식에 투자할 여력이 있었다. 나 혼자 소득으로는 어려웠을 것이다. 시장에 진입하는 타이밍도 운이 좋았다고 할 것이 2015년에 소액으로 주식 투자를 시작해 조금씩 감을 익히다가 2017년에 비트코인 폭등장에서 재미를 봤다. 원금이 적어 절대적 금액으로 치면 수익이 많지 않았지만 수익률 자체는 투자 수익에 대한 내 패러다임을 바꿀 만한 수준이었다. 이어서 2019년에는 적기에 미국 주식을 매수해 코로나 급등장에서 괜찮은 수익을 냈다. 물론 매년 이득만 본 것은 아니다. 2024년에는 비트코인 반감기를 전후해 알트코인이 급등하리란 생각으로 투자했다가 손실을 입었다. 다행히 올해 한국 주식이 급등하면서 손실분을 모두 만회했다. 이렇게 이익과 손실이 반복된 것을 종합해 보면 다행히 지금까지 투자 손익은 플러스다.
짧다면 짧은 10년 투자 인생에서 가장 도움이 된 책은 《어느 주식투자자의 회상》이었다. 국내에 여러 판본으로 출간됐고 나도 번역했으나 출판사 사정으로 출간이 미뤄지고 있는 이 책은 20세기 초에 활약한 전설의 투자자(혹은 투기자) 제시 리버모어(Jesse Livermore)의 이야기다. 이미 100년 전 책이라 구체적 기법을 배울 수는 없으나 책에 상세히 묘사된 그의 투자 행위는 때로는 본보기로, 때로는 타산지석으로 투자에 임하는 태도에 대한 교훈을 준다. 특히 ‘손절은 빠르게, 익절은 느리게’ 하라는, 많은 사람의 투자 경향과 정반대되는 리버모어의 원칙은 투자에 대한 내 패러다임을 바꿨다. 손실이 생기면 신속히 매도하고 수익이 생기면 한참 더 오르도록 놔두는 매매 원칙 덕분에 나는 단기적으로는 잃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따는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이렇게 투자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는 이유는 내 인생에서 투자가 그만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아직 주식 투자로 부자가 될 만큼 큰돈을 벌진 못했지만 차를 사고 집을 살 때 요행히 수익이 나서 보탬이 됐다. 앞으로도 그런 요행을 기대하고, 더 나아가 투자 수익으로 벌이에 대한 부담을 덜고 마침내 돈을 벌기 위한 노동에서 해방되기를 기대한다. 그런 기대감은 언제나 나를 들뜨게 한다. 그리고 매일 수치로 표시되는 주가의 등락률은 종일 책상 앞에서 읽고 쓰며 단조롭게 보내는 내 삶에 적당한 자극이 된다.
거기에 더해 번역가로 일하면서 수입이 적어 박탈감이나 자괴감을 느낄 때 내 노력과 판단으로 번 투자 수익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런 부정적 감정이 약해지는 효과도 있다. 번역은 정신노동이라서 마음의 상태가 결과물의 품질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런 일종의 ‘안정제'가 존재하면 도움이 된다. 물론 손실이 난다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간의 경험으로 일시적 손실은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이익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심하게 흔들리진 않는다. 그리고 투자 경험은 번역의 영역을 넓히는 데도 도움이 된다. 내가 제시 리버모어의 이야기를 번역할 수 있었던 것은 어느 정도 투자 지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주로 번역하는 분야가 경제경영이다 보니 특히 더 투자 경험이 유익하게 작용한다.
결혼과 재테크 외에 또 자산을 증식할 방법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창작, 즉 내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다. 나는 2017년부터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고 2023년부터 브런치스토리에, 이후에는 인스타그램에 만화를 그려서 올리고 있다. 아직은 창작으로 큰 수익을 내진 못했다. 브런치스토리에 쓴 글이 계기가 되어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해보고 싶습니다》(좋은습관연구소, 2020)라는 에세이를 출간하고 지난 5년간 인세로 몇백만 원을 받은 게 전부다. 그러나 무형의 이익까지 생각해보자면 그 책이 나온 후 나를 찾는 출판사가 늘어났고 당시 장당 4,500원 수준이었던 번역료가 마침내 장당 5,000원으로 올랐다.
앞으로도 계속 쓰고 그리면 이런 식으로 유무형의 이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것은 또 다른 책을 출간하는 형태가 될 수도 있고 인스타그램에서 광고 의뢰를 받는 형태가 될 수도 있다. 지금은 그런 기회를 부르기 위해 내 콘텐츠와 실력을 쌓아가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본래 창작은 당장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매일 수익률이 눈에 보이는 주식과 달리 내 시간과 노력을 아무리 투자해도 가시적인 성과가 잘 안 보인다. 설령 책을 낸다고 해도 큰돈을 벌긴 어렵다. 내 저서는 다행히 1쇄는 모두 소진했으나 이후로는 출판사에서 보내는 정산 메일을 보기가 민망할 만큼 판매량이 뚝 떨어졌다. 생각만큼 책이 안 팔리는 것은 나만 아니라 많은 저자가 경험하는 현상이랄까 고민이다. 《글쓰기로 독립하는 법》(정지우, 유유, 2025)에서는 우리나라에 사실상 전업작가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만큼 글 쓰는 것만으로는 먹고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내게 글을 쓰고 만화를 그리는 것은 번역 외의 또 다른 (잠재적) 수입원이 된다. 즉, N잡의 일부분이다. 이렇게 돈이 나올 만한 구멍을 늘리는 것은 곧 장기적으로 자산 증식의 가능성을 키우는 것이다. 그리고 번역과 창작은 서로 교집합이 있는 행위기 때문에 책을 쓴 후 번역가로서 인지도가 올라간 것처럼 어떤 식으로든 또다시 시너지 효과를 내리란 막연한 기대도 있다.
창작은 재충전 효과 때문에라도 삶에 이익이 되는 활동이다. 2024년에 나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지원으로 10회에 걸쳐 무료 심리상담을 받았다. 상담사 선생님은 내게 무기력증이 있다며 당시에 피곤하다는 핑계로 한동안 그리지 않았던 만화를 다시 그려보라고 했다. 역시 전문가였다. 다시 만화를 그리기 시작하자 조금씩 활력이 되살아났다. 만화를 그리는 것으로 마음속에 복잡하게 엉켜 있던 생각이 풀리고 한 편씩 완성할 때마다 세상에 없는 나만의 것을 생산했다는 고양감을 느꼈다. 일과를 마치고 밤늦게 피곤한 몸으로 만화를 그리고 나면 오히려 개운해졌다. 내가 정체되지 않고 계속 한 걸음씩 나아간다는 믿음이 생겼다.
만화만 아니라 모든 창작 활동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번역가들은 기본적으로 글발이 있으니까 꾸준히 글을 쓰는 게 재충전을 위해서나, 새로운 활로 개척을 위해서나 좋다고 생각한다. 당장은 구체적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사이토 뎃초 저, 이소담 역, 북하우스, 2024)라는 책 제목이 실현될 때까지 계속해보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뭐든’ 해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AI 시대에 망할 직업 1위로 꼽히는 우리는 이제부터 번역이 망할 때를 대비해야 한다.
길게 썼지만 나는 아직 부자가 아니다. 가야 할 길이 멀다. 그러나 지금 내가 그 길을 걷는 방법이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우직하게 지속하면 결실을 보리라 믿는다. 지금 당장 빛나지 않아도 꾸준히 걸어가는 것, 그건 내가 정말 잘하는 일이다. “돈도 명예도 따르지 않는” 번역 일(지난 글 참고)을 만으로 17년 넘게 하고 있다는 게 그 증거다. 결국 나는 ‘뭐가 되긴’ 할 것이다. 부디 그것이 부자+알파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