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아무 번역서나 펼쳐서 역자 약력을 보면 아마 90% 확률로 소위 말하는 명문대 출신일 것이다. 번역가 고시라도 있어서 그런 학교 나온 사람들 위주로 뽑는 걸까? 전혀.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번역가가 되기 위한 시험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출판번역계는 그렇다.
그러면 이런 학벌 쏠림 현상은 왜 생길까? 번역이라는 게 애초에 그렇게 생긴 일이기 때문이다. 번역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종일 책상 앞에서 읽고 쓰는 사람이다. 풀타임으로 일한다면 매일 8시간씩 그 짓을 해야 한다. 읽고 쓰기에는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틀어 놓을 수 없고 나처럼 청각이 예민한 사람은 연주곡조차 틀지 못한다. 다른 사람과 대화를 못 하는 것은 당연하다. 대부분 조용한 공간에서 홀로 일한다. 종일 혼자 앉아서 묵묵히 글만 파는 것. 체질에 맞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 체질인 사람은 당연히 학교 공부를 잘했을 것이다. 학교 공부란 게 기본적으로 앉아서 읽고 쓰는 일 아닌가?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성적이 좋았을 테고 그러니까 이름난 대학교에 들어갔을 것이다. 말하자면 학벌이 좋아서 번역가가 된 게 아니라 번역가가 됐으니까 학벌이 좋은 것이다. 번역계에서 출신 학교는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실력, 그리고 인지도로 승부를 보는 곳이 이 바닥이다.
나도 그런 체질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릴 적부터 번역가가 될 재목이었다. 내가 유년기를 보낸 1980~90년대는 지금처럼 밤낮없이 아무때나 원하는 프로를 볼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TV 채널이라고 해봐야 다섯 개 정도가 전부고 그나마도 낮 시간에는 방송을 안 했다. 그럴 때 애들이 할 수 있는 것이란 밖에 나가서 뛰어놀거나 집에서 빈둥대는 것뿐이었다.
그 시절에 나는 밖에 나가기는 싫고 집에 있기는 심심하면 하는 수 없이 책을 읽었다. 열 살 때쯤 이모가 서점을 연 후로는 보름에 한 번씩 가서 책을 빌려왔다. 그러고는 표지 접은 자국조차 생기지 않게 조심스레 보고는 새 책 같은 상태로 다시 가져다 놓는 것이었다. 운동장에서 노는 것보다 책 읽는 게 좋아서 쉬는 시간에도 읽어 버릇했더니 나도 모르는 새에 도서관에 있는 책을 다 읽은 아이가 되어 있기도 했다(물론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 와중에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PC통신(인터넷 이전의 온라인 커뮤니티) 하이텔의 게임 게시판에 매일같이 글을 써서 올렸다. 나와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나이를 따지지 않고 글로 소통하는 게 재미있었다. 더욱이 매달 우수이용자를 선정해 게임까지 주니까 더욱 열심히 썼다.
그러니까 공부를 잘했다. 공부가 재미있지는 않았어도 다른 애들보다 잘 버텼다. 나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야간자율학습’이란 명목으로 의지와 상관없이 밤 10시(고3 때는 12시)까지 학교에 붙들려 있었다. 당연히 괴로웠지만 그래도 엉덩이 딱 붙이고 앉아서 그 시간을 적당히 알차게 보냈다. 심지어 대학교에 가서는 공부가 재미있었다. 내가 듣고 싶은 강의를 골라서 듣고 단순 암기가 아니라 텍스트를 읽고 나의 해석을 조리 있게 표현하는 게 중시되니 읽고 쓰기를 좋아하는 내게 잘 맞았다.
애초에 그런 체질이니까 고등학교 때부터 장래희망이 번역가였고 결국엔 대학교 졸업식을 한 달 앞두고 첫 책을 맡으며 번역가의 길에 접어들 었다. 일을 시작한 지 1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번역이 재미있다. 내가 많은 번역가를 알고 지내는 것은 아니지만 직접 대화를 나누거나 책이나 온라인에 쓴 글을 봤을 때 아마 많은 번역가가 나와 비슷한 성향일 것이다. 이 일은 애초에 이렇게 생긴 사람이 아니면 버티기가 어렵다. 일 자체에 재미를 못 느낀다면 벌이가 좋길 하나, 안정적이길 하나, 메리트가 별로 없다.
학력 이야기가 나왔으니 번역가들은 무엇을 전공했을까? 아무래도 언어를 다루는 일이다 보니 어문학 전공자가 많긴 하지만 절대다수는 아니다. 번역가로 사는 데 어문학 전공자가 더 유리하다고만 볼 수 없다. 비어문학 전공자는 확실한 전문 분야가 있다는 강점이 존재한다. 이것은 특히 경력 초반에 중요하게 작용한다. 출판사에서 번역을 의뢰할 때 해당 분야의 역서나 경력이 있는지 따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내 경우에도 첫 역서가 경제경영서였는데 대학에서 영어영문학과 동시에 경영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역자로 선정될 수 있었다.
학부 전공은 그렇다고 치고 혹시 통번역대학원을 나오면 번역가로 사는 데 유리할까? 대학원 학위가 딱히 강점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나와 같이 번역대학원을 다닌 동문 중에 번역에 뜻이 있지만 길이 보이지 않아 고민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통번역대학원을 나왔다고 출판사에서 특별한 대접을 해주지는 않는다. 통번역대학원은 번역가가 되기 위한 도약대나 관문이 아니라 그저 실력을 키우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나는 2년 반 동안 대학원을 다니면서 혼자서 번역만 했으면 이 정도로 빨리 성장할 수 있었을까 싶을 만큼 실력이 많이 향상됐다. 이론 연구와 실무 수련을 병행하고 무엇보다 교수님한테 깨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내가 번역대학원에 들어간 것은 양다리를 걸치기 위해서였다. 교수가 되면 번역가라는 직업의 불안정성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원 첫 학기 때 그런 생각을 아는 교수님이 이렇게 조언했다. “석사 마치고 한국에 남지 말고 외국 가서 박사 학위 따 와. 너는 남자고 젊으니까 교수 될 수 있을 거야.” 지금은 모르겠지만 당시는 아직 학계에서 남자가 우대받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교수가 되겠다던 목표는 첫 학기를 마친 후 완전히 폐기됐다. 나는 공부만 체질이지, 연구는 체질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다른 분야는 모르겠지만 번역학은 내가 느끼기에 다른 사람의 이론이나 연구 결과를 분석하는 게 주가 되는 학문이었다. 그 이론이란 게 물론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는 해도 어차피 번역학이라는, 그때나 지금이나 아주 좁은 분야에서만 유통된다는 한계가 있었다. 나는 좀 더 실용적인 것, 내 삶에 실제로 적용할 수 있고 세계를 경험하는 데 도움이 되는 지식을 원하지, 그렇게 협소한 지식에는 별로 흥미를 못 느꼈다(그 연구의 넓이와 깊이를 경험하지 못한 문외한이 감히 쓰는 글이니 관련 분야의 연구자들은 양해해주시길). 더군다나 그 이론이라는 게 십중팔구 논문의 형태로 존재하는데 그 정교하지만 몰개성하고 따분한 글을 앞으로 수십 년은 커녕 단 1년이라도 읽으며 살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교수가 되겠다던 꿈은 연구의 바다에 발목조차 담그기 전에 몸서리치며 내던졌다.
나중에 이 이야기를 듣고 아내가 처음으로 보인 반응은 도대체 이해가 안 간다는 것이었다. 교수가 될 수 있다는 확신도 없이 교수가 되고 싶어서 갖은 고생 끝에 박사 과정까지 마친 아내로서는 교수님이 그렇게 교수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데도 그저 재미가 없다고 돌아서버린 내가 신기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체질의 문제다. 나는 내가 연구자감이 아닌 걸 확실히 알았다. 그러니까 과감히 연구자의 길을 포기할 수 있었다(물론 내가 계속 그 길을 걸었다면 당연히 교수가 됐을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나와 달리 아내는 연구가 체질이다. 교수는 아니지만 연구소에 다니며 매일 연구한다. 퇴근 후에는 힘들다고 끙끙대면서도 밤늦게까지 논문을 읽는다. 모두 적성의 문제다.
말했듯이 번역도 적성에 맞아야 하는 것이다. 적성에 맞으니까 힘들어도 참고 한다. 종일 아무 간섭도 안 받고 혼자 조용히 일하는데, 게다가 몸 쓰는 일도 아닌데 뭐가 그리 힘드냐 싶겠지만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매개로 그 사람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그 안에 깊이 박힌 생각의 줄기를 끄집어내는 것은 제법 고된 노동이다. 차라리 마주보며 대화 중이라면 그때그때 궁금한 것을 물어볼 수라도 있지, 글은 본질적으로 일방적인 매체다. 이해가 안 되면 이해가 될 때까지 혼자서 몇 번이고 곱씹으며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이해한 것을 또 우리말로 자연스럽게, 그러나 내가 아닌 저자의 스타일을 살려서 다시 표현해야 한다. 몸은 가만히 있지만 정신은 끊임없이 해체와 조립을 반복한다. 정중동이다.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야 하는 사람은 못 하는 일이고 끊임없이 정신을 움직이는 것을 힘들어하는 사람은 못 하는 일이다. 우리같은 사람이나 하는 것이다.
어느 쪽이 더 낫고 못하다는 말이 아니라 그냥 체질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체질은 공부에 유리하다. 그러니까 번역가들은 대체로 유명한 학교 출신이다. 그저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