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히 나는 잘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내가 번역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이후로 17년 넘게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다 낙관 편향 덕분이었다. 아직 번역가 지망생이던 시절에 이전 글에서 언급한 B선생님이 번역은 돈도 명예도 안 따르는 일이니 다른 일을 알아보라고 했을 때 속으로 나는 다를 거라고, 나는 돈과 명예를 다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한 귀로 흘려들었다. 그 시절에 역시 앞서 언급한 적 있는 A선생님은 번역 일을 시작하고 5년 정도는 일이 잘 안 들어와서 힘들 것이라고 했다. 나는 5년까지 갈 것 없이 한 3년 하면 역서 중에 베스트셀러가 나오고 출판사들의 의뢰가 쇄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낙관 편향의 문제는 ‘편향’이라는 것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착각이다. 그러니까 내가 선생님들의 말을 듣고 했던 생각은 모두 틀렸다. 나는 5년이 지나도록 자리를 못 잡고 빌빌 거렸고 17년이 지나도록 돈과 명예 둘 중 하나조차 못 잡았다. 그런데도 여지껏 정신을 못 차렸다. 아직도 나는 결국 잘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품고 산다.
소설가 김영하의 에세이 《단 한 번의 삶》에 그가 대학에서 소설가 지망생들을 가르친 이야기가 나온다. 그때 그를 찾아와 자신이 소설가가 될 수 있겠냐고 묻는 학생들이 있었는데 이후에 그 중에서는 소설가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끝내 소설가가 된 것은 그런 것을 묻지 않고 묵묵히 쓰던 학생들이었다.
나도 그들과 비슷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번역가가 꿈이었다. 대학교 때 잠시 그 꿈이 흔들리긴 했다. 번역가가 될 길을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그때는 지금처럼 온라인에 번역가에 대한 정보가 많은 것도 아니고 번역가가 쓴 책조차 드물었다. 일단 취업부터 하고 길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다 졸업을 한 학기 남기고 순전히 취업 준비를 위해 휴학했을 때 마침 바른번역아카데미가 설립됐다. 고민없이 수강했고 얼마 후 고민 없이 취업할 생각을 버렸다. 내 미래는 오직 번역에 있다고 생각했다.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라던데 하필 그때 번역아카데미가 생긴 것으로 모자라 내가 얼떨결에 대표가 되어버린 과내 소모임에서 회원 모집 공고를 했더니 어느 교수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떤 분이신가 봤더니 잠깐, 우리 학교에 이런 데가 있었어? 번역대학원이라고? 그렇게 나는 번역대학원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됐다. 마치 하늘의 계시를 받은 것 같았다. 그때 하늘은 왜 나를 이런 고행의 길로……
우리 같이 한 점만 보고 가는 사람을 좋게 말하면 뚝심이 있다고 하고 나쁘게 말하면 정신머리, 현실 감각이 없다고 한다. 그 점에 닿을 확률을 따져보면 처참한데도 나는 그게 하고 싶으니까 해야 한다고, 그래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런 비합리적인 생각으로 외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다. 그 끝에 낭떠러지가 있어도 어쩔 수 없다며. 어쩌면 내가 그럴 수 있었던 건 아직 젊어서 내게 딸린 식구도 책임도 없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원래 하고 싶은 것을 해야 살 수 있는 팔자라서 그런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내 사주를 보면 한량 팔자라고 한다. 속된 말로 ‘꼴리는 대로’ 사는 인생이라는 것이다. 10~20대에 내가 가장 꼴리는 건 번역이었다. 그러니까 번역가가 돼야 했다. 천만다행으로 한량은 한량인데 책임감은 또 있는 사주라고 한다. 그러니까 남들이 보기에는 한량이 뭐야, 엄청나게 성실하다. 해야 할 건 꼭 한다. 그래서 번역 마감은 기가 막히게 지키고 번역 품질에 관해서도 초창기 역서 몇 권을 빼면 출판사의 불만을 들어본 적이 없다. 불만이 있는데 말은 안 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낙관 편향이 심하니까 그런 건 없었다고 친다.
언젠가 온라인에서 번역서들의 품질을 성토하며 돈도 별로 안 되는 출판번역계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다른 데로 탈출할 능력이 안 되는 무능력자들이니까 애초에 품질을 기대하면 안 된다는 글을 읽었다. 번역가로서 매우 모욕적인 말이지만 수긍할 부분도 있었다. 다른 데로 탈출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아무리 낙관 편향에 젖은 나라도 탈출을 생각한 적이 있었다. 7년 차쯤 됐을 때였다. 한동안 일이 안 들어와서 놀고 있던 중에 차를 끌고 나갔다가 후진을 잘못해서 기둥을 박고 범퍼와 트렁크가 망가졌다. 안 그래도 일 때문에, 아니, 일의 부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중에 차까지 찌그러지자 자괴감이 몰려오며 다 때려치우고 싶어졌다. 몇 년을 해도 자리를 못 잡았으니 이제 포기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번역 안 하면 뭘 하지? 대학을 나와서 한 일이 번역뿐이고 나이도 서른을 훌쩍 넘었으니 어디 기업에 들어가긴 글렀다 싶고 무슨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니 전직을 하려 해도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꼼짝없이 번역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다른 일을 못 해서 계속 번역을 한다는 말은 적어도 나에게는 부합하는 설명이었다.
별수 없이 일단 10년까지는 버텨보기로 했다. 그래도 길이 안 보이면 그때 가서 또 생각해 보자고 생각했다. 일단 그렇게 마음먹자 다시 낙관 편향이 작동해서 괴로움은 사라졌다. 다행히 얼마 후 다시 의뢰가 들어왔고 마침내 10년을 채우자 신기하게도 장당 3,800원의 벽을 못 뚫던 번역료가 장당 4,000원으로 올라섰다.
이후 13년 차에 저서가 나오자 번역 강의를 해보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고민 없이 거절했다. 남의 인생을 조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나야 이렇게 살고 있지만 내가 겪어 보니 번역은 남에게 권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다른 일 생각해 보라던 B선생님의 충고가 옳았다. 그러니 어떻게 지망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겠는가. (현재 번역 강의를 하는 분들을 부도덕하다고 비판하는 말은 아니다.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고 나는 내 관점에 비춰 강의를 거절했을 뿐이다.)
그 외에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강연 제안도 받았는데 같은 이유로 거절했다. 하지만 나중에 만년필 수리 전문가 김덕래, 일명 펜닥터D의 진주문고 강연을 보고서 학생들 대상 강연은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펜닥터D도 자신의 일을 좋아하지만 남에게 추천하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런 그가 문구를 좋아하는 학생들을 만나 그 중 한 명이 자신과 같은 일을 해보겠다고 말했을 때 건넨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정말 하고 싶으면 하는데 웬만하면 다른 일, 더 크게 꿈을 펼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세요.” 그래, 나도 강연은 하고 그렇게 말해주면 좋았을 것 같다.
간혹 번역가 지망생이라며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말한다. 그리 좋은 일은 아니니까 웬만하면 하던 일 계속하라고, 혹은 다른 진로를 생각해 보라고. 하지만 안다. 어차피 번역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사람이라면 귓등으로도 안 들을 것을. 과거의 내가 그랬들이. 지팔지꼰(지 팔자 지가 꼰다)이지 뭐. 나는 분명히 하지 말라고 했어요. 나중에 가서 이럴 줄 몰랐다 원망하지 마세요.
그런데 만약에 내가 B선생님의 말을 듣고 다른 일을 했으면 팔자가 폈을까? 다른 대학 동기들처럼 회사에 들어갔다면 아마 지금보다 벌이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비교도 안 되게 스트레스를 받고 탈출하고 싶어 발버둥을 쳤을 것이다. 혹은 이제 40대 중반이니 언제 잘릴지 몰라서 전전긍긍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MBTI 16가지 성격 유형 중에서 조직 생활이 가장 안 맞는 유형이 INFP라는데 내가 바로 INFP다. 나는 내가 조직 생활 체질이 아닌 것을 애저녁에 알았다. 졸업 전에 과감히 취업을 포기한 게 그 때문이기도 했다.
어차피 팔자는 꼬인다. 팔자의 팔(八)이 8 아닌가? 원래 꼬이게 되어 있는 거다. 그래서 나는 안 그래도 꼬인 팔자를 더 꼴 짓을 하고 있다. 번역가로 모자라 소설가가 되겠다는 것이다. 소설가는 내 오랜 꿈이었다. 번역가를 꿈꾼 것은 글을 쓰는 게 좋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너무 힘들어서였다. 하지만 여태껏 소설가가 되겠다는 마음을 한 번도 접은 적 없었다. 이제 40대 중반의 나이에 다시 어린 시절의 꿈으로 돌아가고 있다. 문학계의 현실을 취재한 장강명의 《당선, 합격, 계급》과 AI가 바둑계에 끼친 충격에 비춰 창작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먼저 온 미래》를 읽으며 소설가로 사는 것 역시 고달프고 AI 시대에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도 소설가가 되겠다니, 쯔쯧.
어떻게 보면 운명이다. 8은 꼬여서 원점으로 돌아간다. 나는 다시 꿈의 원점으로 돌아간다. 처음부터 이렇게 될 팔자였던 것이다. 번역가가 된 것은 운명이다. 소설가도 내 운명이다. 결국에는 될 것이다. 애초에 그렇게 생긴 것이다. 여러분은 지금 낙관 편향의 실제 사례를 보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