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래도 괜찮다. 대단한 기능이 필요하진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되도록 내게 잘 맞는 제품을 찾기 위해 몇 가지 모델을 써봤고 하나씩 특성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
1. 애플 아이맥 27인치 5K
아이맥은 애플의 일체형 컴퓨터다. 생긴 건 모니터인데 내부에 컴퓨터가 들어 있어서 따로 본체를 연결할 필요가 없다. 애플 제품 중에서도 비싼 축에 속하는데 2016년에 살 때 300만 원을 줬다. 신혼이니까 가능했다. 각종 가전제품을 산다고 금전 감각이 무뎌진 틈을 타서.
아이맥은 5K인 만큼 엄청난 화질을 자랑했다. 화면이 굉장히 선명했다. 그 정도 화질에 컴퓨터까지 포함된 것을 고려하면 차라리 가성비가 좋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였다. 5년간 만족하며 썼다. 하지만 그쯤 되자 문제가 생겼다. 세월이 흐른 만큼 컴퓨터로서는 구형이 되어 속도가 느려졌지만 부품 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성능을 향상하려면 새 제품을 사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처분하고 맥북을 들였다. (아이맥 27인치는 이후 단종됐다.)
2. LG 32UN550
아이맥 대신 맥북을 연결할 모니터로 선택한 것은 LG의 32UN550이었다. 27인치와 32인치는 생각보다 차이가 컸다. 큰 화면에 익숙해지자 27인치는 작아서 돌아갈 수가 없었다. 32UN550은 해상도가 4K로 아이맥보다 떨어졌다. 거기에 패널도 흔히 선호되는 IPS가 아니라 VA여서 선명도가 떨어졌다. 하지만 5K IPS였던 아이맥에 비해서 흐릿했다는 것이지 내게는 충분히 선명했다. 낮에 일할 때만 아니라 밤에 게임을 하고 영화를 볼 때도 좋았다. 그게 문제였다. 32인치도 이렇게 몰입감이 있는데 더 크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긴 것이다.
3. LG 43UN700
급기야 43인치 모니터로 교체했다. 그리고 32UN550을 처분한 후 알았다. 실수였음을. 43인치는 책상에 놓고 쓰기엔 너무 컸다. 내가 쓰는 책상이 깊이 80cm로 일반 책상보다 크고 거기에 나는 키보드 트레이를 설치해서 책상 끝에서 더 떨어져 앉으니까 모니터와 눈의 거리를 약 90cm까지 뗄 수 있었다. 그런데도 화면이 한 눈에 안 들어왔다. 게임을 할 때야 더 멀리 앉는다고 쳐도 일할 때는 키보드 트레이의 위치 이상 멀어질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나의 눈은 어느새 VA 패널의 흐리멍덩한, 아니, 부드러운 화면에 익숙해져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IPS 패널은 너무 쨍해서 눈이 부셨다.
결국 43UN700은 당근마켓으로 갔다. 60만 원 주고 산 것을 두어 달 만에 40만 원에 팔았다. 인기가 없어서 안 팔리는 것을 어쩌나. 그때 아내의 눈빛을 보고 다음번에 비싼 모니터를 살 때는 내 용돈으로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4. 32UN550
다시 돌아왔다. USB-C 포트를 지원하지 않아 케이블 하나로 맥북의 디스플레이 입력을 받는 동시에 맥북에 전원을 공급할 수 없다는 점만 빼고는 완벽…… 한 줄 알았는데 또 호기심이 문제였다. 다들 게임하고 영화 보는 데는 OLED 패널이 최고라고 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OLED는 사무용으로 부적합하다고 해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OLED 다음으로 또 좋은 게 미니LED라는데 이건 사무용으로도 괜찮다나? 솔깃했지만 시중의 미니LED 모니터들이 IPS 계열이어서 참았다. 그런데 뭐? VA 계열 32인치 미니LED 모니터가 출시됐다고?
5. TCL 32R84
문제의 그 신형 모니터를 80만 원 주고 샀다. 앞서 다짐했듯이 내 용돈(월 30만)으로. 이번에는 바로 그날 실수임을 알았다. 아무리 VA 계열이라고 해도 너무 쨍해서 눈이 부셨다. 그리고 게임을 하고 영화를 봐도 320N550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나같은 눈을 ‘막눈’이라고 한다. 좋은 것을 보여줘도 뭐가 좋은지 모르는 축복받은 안구를. 나는 귀도 막귀여서 값비싼 헤드폰을 써도 차이를 모른다. 그런 내게 32R84는 사치였다. 바로 처분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32UN550을 쓰고 있다. 하지만 HHKB 스튜디오처럼 망가지면 새로 사면서까지 10년 넘게 쓰진 못할 것 같다. 벌써 단종돼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괜찮다. 비슷한 제품은 계속 나오고 있으니까. VA 패널 제품은 비교적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아내에게 사 달라고 해도 마음의 부담이 없는 것 또한 장점이다. 남들은 하급 취급하는 VA를 제일 좋다고 떠받들다니 막눈은 정말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