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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는 번역가가 써야죠

by 김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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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는 제가 쓸게요!”


내 웹사이트의 첫 문장이자 번역가로서 내 신조다. 10여 년 전 편집자에게 받은 피드백에서 착안했다. 그는 내가 고생을 안 시켜서 좋다며 그런 번역가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편집자를 고생시키지 않는 번역가란 어떤 사람일까? 마감, 품질, 고집의 차원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는 마감을 칼 같이 지키는 번역가다. 출판사는 대체로 출간 일정이 빡빡하게 잡혀 있다. 아무리 작은 출판사라고 해도 책을 1년에 한 권만 내진 않는다. 그러니까 어떤 책의 출간이 밀리면 이후 일정에도 타격이 간다. 그래서 원고가 제때 들어와야 한다.


번역가 입장에서는 원고를 하루이틀 늦게 보낸다고 무슨 큰일이 날까 싶어도 받는 쪽에서는 원고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렇게 하루이틀을 낭비하면 출간 일정에 맞추기 위해 그만큼 편집자, 디자이너, 마케터가 시간에 쫓기며 일해야 한다. 입장을 바꿔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출판사에서 번역가에게 마감일을 사흘 앞두고 하루만 일찍 원고를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해보자. 고작 하루 차이지만 이틀 간 하려던 일을 하루 만에 끝내려면 밤을 꼴딱 새야 한다.


나는 지금까지 만으로 약 18년을 번역가로 일하면서 마감을 두 번 어겼다. 한 번은 갑작스럽게 담낭염으로 입원하고 수술을 받느라 일정을 못 맞췄고, 또 한 번은 계약 후에야 원문의 원고를 받아봤더니 사전에 이야기했던 것보다 분량이 훨씬 많아서 약속한 날짜에 일을 끝낼 수 없었다. 그래도 두 경우 모두 마감일을 보름 이상 남기고 출판사에 사정을 설명했고 출판사에서도 납득했기 때문에 일정을 늦출 수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마감을 어긴 게 아니라 조정한 것이다. 그 외에는 항상 늦지 않게 원고를 보냈다. 특히 아직 아이가 태어나기 전이어서 시간적 여유가 있던 시절에는 처음부터 마감일 일주일 전에 작업을 끝낸다는 목표로 일했다.


마감은 출판사와 약속이다. 마감을 지키는 것은 신뢰와 직결된 문제다. 프리랜서는 신뢰가 생명이다. 신뢰를 잃으면 일이 끊긴다. 마감만큼 신뢰에서 중요한 요소가 결과물의 품질이다. 편집자를 고생시키지 않기 위해서 신경 써야 할 두 번째 차원이기도 하다.


품질 좋은 번역이란 무엇인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자연스러운 문장이다. 자연스러운 문장은 대체로 한 번 읽고 이해가 되는 문장이다. ‘대체로’라고 단서를 다는 이유는 내용 자체가 어려워서 다시 읽어야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는 문장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번역가는 그런 문장이라 할지라도 최대한 잘 읽히게 옮겨서 ‘문장은 잘 썼는데 개념 자체가 어렵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한다. 일반 독자는 그런 차이를 모를 수 있어도 편집자는 문장이 난삽해서 안 읽히는지, 애초에 어려운 내용인지 알아보는 안목이 있다.


번역가가 자연스러운 문장을 쓰지 않으면 그 부담이 고스란히 편집자에게 전가된다. 번역문을 수정할 때 편집자는 품이 배로 든다. 남이 쓴 문장을 고치는 것은 잘못 조립된 레고 모형을 재조립하는 것과 같다. 무엇이 이상하게 끼워졌는지 파악하고 다시 끼워야 한다. 그러자면 설명서(원문)를 보면서 각 블록이 제 위치에 있는지 일일이 확인해야 하고, 블록 하나를 다시 끼우려면 주위 블록도 다 빼야 한다. 차라리 처음부터 맞추는 게 편하다.


잘 읽히는 번역문을 쓰려면 퇴고 과정에서 소리 내어 읽어보는 게 좋다. 눈으로만 글씨를 좇지 않고 청각까지 동원하면 어색한 부분이 더 잘 잡힌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요즘 나는 퇴고 때 입으로 읽지 않는다. 변명을 하자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다 들리기 때문이다. 나는 글을 읽을 때 속발음이 심한 사람이다. 속발음이란 마음속으로 소리 내어 읽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글을 읽을 때 마음속으로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읽는다. 그래서 30년 넘게 독서가 취미인데도 책 읽는 속도가 굉장히 느리다. 몇 번이나 속독을 시도해봤지만 속발음을 극복하지 못하고 실패했다. 독서가로서는 단점일 수 있다. 하지만 번역가로서는 그만큼 문장의 자연스러움을 의식할 수 있으니까 큰 장점이 된다.


마감을 어기거나 부자연스러운 문장을 쓰는 것이 번역가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편집자를 고생시키는 세 번째 요인은 그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행위로, 바로 자신의 번역문을 고치는 것에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번역도 글을 쓰는 일이고 글 쓰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기 글에 대한 자부심 내지는 고집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토씨 하나 못 고치게 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도 종종 들린다.


하지만 나는 그만큼 고집이 센 사람은 아니다. 적어도 번역할 때의 마음가짐은 그렇다. 번역 원고는 애초에 남의 글을 빌려서 쓴 것이기 때문에 내 글만큼 집착하지 않는다. 그리고 번역가로서 내 안에는 늘 불안감이 존재한다. 혹시 내가 원문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내 번역문이 잘 읽히는 것은 아닌지, 원문을 모르는 사람이 읽고도 한 번에 이해가 될는지 궁금한 것이다. 이런 의구심을 해소해주는 사람이 편집자다. 편집자가 잘 안 읽힌다고 판단하면 독자에게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까 수정해야 한다.


나는 대단한 문장가가 아니란 것을 인정한다. 내 글에는 언제나 수정과 개선의 여지가 있다. 그래서 편집자의 개입이 그리 불편하지 않다. 애초에 그게 편집자의 일이다. 내 글을 있는 그대로 인쇄해서 팔려면 굳이 편집자가 왜 필요하겠는가? 그러니까 나는 편집자의 책임 혹은 권한을 인정한다. 그리고 편집자의 실력을 신뢰한다. 편집자도 번역가처럼 종일 읽고 쓰는 일로 밥벌이를 하는 전문가다. 그러니까 그의 의견은 적극 반영할 가치가 있다. 그래서 나는 원문과 의미가 달라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웬만하면 편집자가 교정한 문장에 손을 안 댄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목표는 동일하다. 책을 잘 만들어서 잘 파는 것. 서로 같은 배를 탄 동지끼리 굳이 경쟁의식을 느낄 필요가 없다. 그리고 엄밀히 따지면 반역가에게 편집자는 갑이다. 번역 계약서에는 번역가가 갑, 출판사가 을로 기재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돈 주는 쪽이 갑이다. 괜히 갑에게 속된 말로 ‘개겨봤자’ 좋을 것 없다. 번역가로 오래 살고 싶으면 갑이자 고객인 편집자를 만족시켜야 한다.


내가 15년 넘게 번역가로 생존한 이유가 바로 이런 ‘을 마인드’ 때문이다. 나는 태생적으로 남한테 폐 끼치기를 싫어하고, 불편한 소리 하는 것도 싫어한다. 그러니까 편집자를 고생시킬 일을 안 만들고 요구 사항도 잘 수용한다. 또 한편으로 나는 ‘큰일 아니면 그냥 내가 좀 손해 보고 치우자’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사는 사람이다. 번역할 때는 이런 마음이 ‘지금 내가 받는 번역료가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지만 그래도 그 이상의 번역을 하자’는 자세로 변형된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번역료로 장당 3,500원을 받았다. 그래서 장당 3,800원짜리 번역을 하겠다는 각오로 일했다. 번역료가 4,000원이 됐을 때는 4,500원을 받아도 부끄럽지 않은 번역을 하려 했고, 4,500원을 받을 때는 5,000원짜리 번역을 지향했다. 물론 번역의 품질을 정확히 얼마 어치라고 계량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늘 받는 것 이상의 품질을 낸다고 스스로 자부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일했다. 그런 마음이 허무맹랑한 것은 아니었던지 결국에는 차근차근 번역료가 올라서 결국에는 5,000원짜리 번역가가 됐다.


오해를 막기 위해 덧붙이자면 적은 번역료를 받는다고 실력이 못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내가 장당 5,000원을 받게 된 데는 내 노력만 작용하지 않았다. 내 실력을 좋게 보고 주변에 추천해준 동료 번역가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의 위치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귀인’을 만난 것은 행운이다. 그러니까 나는 운이 좋아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만일 누군가가 받는 것 이상으로 애쓰는데도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면 아직 때가 안 온 것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그때가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어쩌면 그 시기를 조금이라도 앞당기기 위해 내 실력을 노출할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여기에 대해서는 다시 글을 써보려 한다).


정리하자면 편집자들이 찾는 번역가가 되려면 편집자를 동료로, 또 갑으로 여기며 협력하고 협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영어에 이런 격언이 있다. “먹이 주는 손을 물지 말라(Don't bite the hand that feeds you).” 번역가는 일을 주고 돈을 주는 손을 물면 안 된다. 그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고 걸으면서 혹여라도 돌부리가 보이면 내가 먼저 치우겠다는 마음가짐이어야 한다. 그게 결과적으로는 나도 좋은 길을 가기 위한 전략이다. 그래서 애는 내가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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