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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하다 병 걸렸습니다

by 김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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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든 오래 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습관이 생긴다. 직업병이다. 내가 번역가로 일하면서 얻은 직업병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맞춤법이 틀리거나 호응이 맞지 않는 문장을 보면 자꾸만 고쳐주고 싶다. 디자이너가 간격이 맞지 않게 배치된 선을 보면 다시 그려주고 싶어 손이 근질거리는 것과 같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리 떳떳하지 못하다. 주어와 술어가 어긋나는 비문은 잘 안 쓰지만 맞춤법을 완벽히 지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행이 나는 마춤뻡이 틀린 문장을 현 수막에 인세해서 온동내 사람이 보게 걸어놓치는 안는다.


두 번째 직업병은 남의 번역물을 편히 감상하지 못하는 것이다. 번번이 나라면 어떻게 번역했을지 생각한다. 좋은 번역을 만났을 때나 아쉬운 번역을 만났을 때나 마찬가지다. 번역으로 먹고 산 게 한두 해가 아니니 내 머릿속에는 다양한 표현 패턴이 입력돼 있어서 원문의 대략적 형태가 잘 그려진다. 그래서 나라면 그 문장을 이렇게 멋지게 번역할 수 있었을까 하는 위기감을 느끼거나, 나라면 이러저러하게 번역해서 더 자연스럽게 읽히게 했을 것이라고 안도감을 느낄 때가 많다. 비교는 불행의 지름길이라지만 적당한 비교는 좋은 자극이 된다.


원문과 번역을 비교하는 병은 영상물을 볼 때 특히 심해진다. 책은 원문을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지만 영상은 원문이 바로 귀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책이든 영상이든 이렇게 번역을 평가하면서 보면 피곤한 게 사실이다. 쉬려고 앉았는데 공부하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피곤하다고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남의 번역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서든 본보기로 삼아서든 내 번역 능력을 평가해보는 게 재미있다. 어떤 객관적 평가 기준도 존재하지 않는 번역계에서 내 실력을 가늠해보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더 배우고 성장한다. 내가 느끼기에 출판계와 영상계 모두 과거에 비해 번역의 평균 품질이 상승했다. 그래서 타인의 번역을 보고 좋은 표현을 습득하는 재미가 있다. 특히 영상물은 말했듯이 원문이 바로 들리기 때문에 학습 효과가 뛰어나다. 영어 듣기 실력을 향상하기 위해 자막을 껐다가도 번역 공부를 해야 한다며 다시 켜게 되는 이유다.


잠깐 곁길로 새자면 나는 영어 듣기가 읽기만큼 잘되진 않는다. 영화 한 편을 자막 없이 보면 모든 문장을 알아듣지는 못한다. 일반적으로 문장이 안 들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단어를 모르기 때문이다. 가령 “He’s a sycophant”라는 대사가 나왔을 때 sycophant(아첨꾼)란 단어를 모르면 당연히 그 문장을 듣고도 무슨 말인지 모를 수밖에 없다.


영어 문장이 안 들리는 두 번째 이유는 뻔히 아는 단어인데도 귀에 익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령 어떤 게임을 하다가 “Officially feels like home again”이라는 대사를 들었다. 이제 진짜로 집처럼 느껴진다는 의미인 줄 알았는데 자막을 보니 “어장이 다시 집처럼 느껴지는군요”였다. ‘The fishery’를 ‘Officially’로 잘못 들은 것이다. ‘fishery’라는 단어를 알면서도 실제로 들어본 적은 많지 않아서 알아듣지 못했다. 책으로만 영어를 공부하면 듣기가 잘 안 되는 이유다.


나는 이 두 번째 이유로 영어 문장이 안 들릴 때가 많다. 이때는 한글 자막을 보면 거꾸로 원문이 파악된다. 그러면 또 원문과 번역문을 비교해서 공부가 된다. 다만 듣기 실력을 키우려면 한글 자막은 방해가 된다. 꼭 들어야 한다는 의지가 반감되기 때문이다. 내 경험에 비춰 영상물로 듣기 능력을 향상하려면 동일한 영상을 무자막 → 원어 자막 → 무자막 순으로 반복해서 시청하는 게 좋다. 나는 20대 초반에 시트콤 <프렌즈> 시즌1~3 DVD 세트를 사서(당시는 2000년대 초반으로 스트리밍 서비스가 활성화되지 않았다) 같은 에피소드를 첫날은 자막 없이 보고, 다음날은 영어 자막을 켜서 원문을 파악하고, 셋째 날은 다시 자막 없이 봤다. 이렇게 하면 내가 못 들은 단어가 무엇이고 그 단어가 실생활에서 어떻게 들리는지 배울 수 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번역가의 직업병 중 세 번째는 실망할 것을 알면서도 자꾸 역서의 서평을 찾아보는 것이다. 인정 욕구 때문이다. 내가 수고한 것을, 내가 잘한 것을 누가 알아보고 칭찬해줬으면 해서. 온라인 서점과 포털에서 책 제목이나 내 이름을 검색하자면 두 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혹시 누가 번역 때문에 읽을 맛이 났다고 호평하진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과 번역이 좋은 책을 망쳤다고 혹평하진 않았을까 하는 불안감이.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결국 내가 느끼는 것은 실망감이다. 대부분의 독자는 번역을 언급하지 않는다. 독자에게 번역가는 저자의 그림자 같은 존재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눈에 띄지 않는다. 특별히 잘했거나 특별히 못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렇다면 번역에 대한 평이 없는 게 차라리 다행이다. 굳이 말을 꺼낼 만큼 못하진 않았다는, 적어도 무난하다는 의미일 테니까. 이렇게 실망감을 안도감으로 치환하며 브라우저 탭을 닫고는, 어차피 내가 저자도 아닌데 책이 칭찬을 받으면 무엇하고 욕을 먹으면 무엇하겠냐고, 이제 그만 찾아보자고 다짐하고는 또 며칠 후면 슬며시 검색창에 역서 제목을 입력한다. 말했다시피 인정받고 싶어서.


인정 욕구 역시 불행으로 가는 지름길이라지만 번역가에게는 이롭다. 내 역서를 읽을 불특정 다수의 독자를 항상 의식하고 있다면, 특히 그들이 온라인 서점과 블로그와 SNS를 통해 나에 대한 악담을 얼마든지 퍼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절대로 허투루 번역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혼자 컴퓨터 앞에서 일하면서도 등 뒤에서 수많은 독자의 눈길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번역가의 직업병은 일단 의뢰를 수락하고 보는 것이다. 이것은 프리랜서라는 특성과 맞닿아 있다. 프리랜서는 의뢰인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일이 끊기는 불안정한 직군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일이 없는, 그래서 소득이 없는 상태를 걱정 없이 버티지 못한다. 그런 사태를 막기 위해 일이 들어오면 되도록 수락할 수밖에 없다. 항상 1~2년 치 일감이 쌓여 있는 업계의 고수가 아니라면 함부로 일을 거절할 수 없는 게 프리랜서의 숙명이다. 나만 해도 일정과 보수만 맞는다면 내가 감당 못 할 만큼 전문적인 책이 아닌 이상 들어오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문제는 일단 그렇게 수락한 후에 터진다. 막상 번역에 들어가면 까다로운 본색을 드러내는 책이 세상에는 정말 많다. 계약 전에 가볍게 읽을 때는 할 만해 보였는데 작업을 시작해서 문장 하나하나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한국어로 옮기기 어려운 문체이거나 자료 조사가 많이 필요하거나 정확히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 켜켜이 쌓인 현실을 마주하는 것이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이미 계약금까지 받은 마당에 못하겠다고 물리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프리랜서는 신뢰가 생명이고 신뢰를 주려면 무조건 일을 끝내야 한다. 안 되면 되게 해야 한다. 원망할 사람은 무턱대고 일을 맡아버린 과거의 나밖에 더 있을까. 그리고 번역 경력이 몇 년인데 아직도 책을 가려 받을 처지가 안 되는 나밖에 더 있을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결국에는 끝이 난다는 것이다. 이를 악물고 한 문장 한 문장 번역하면 끝내 마지막 문장에 도달한다. 번역은 결승선이 분명히 정해져 있고 그 선이 절대 바뀌지 않는 경주다. 기본이 두세 달인 작업 기간을 고려하면 마라톤이다. 혼자 뛰지만 마감일이라는 시간 제한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말했다시피 보이지 않지만 길가에 서 있는 독자들이 있기 때문에 게으름을 피울 수가 없다. 그렇게 꿋꿋이 달려서 결승선을 넘고는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혼자 벅찬 성취감을 느낀다. 그게 나를 15년이 넘게 번역가로 살게 한 번역의 묘미다.


두세 달에 한 번씩(현재 나는 육아 때문에 파트타임으로 일하기 때문에 네댓 달에 한 번씩) 마라톤을 완주하는 것은 얼마나 뿌듯한 일인가. 나는 지금까지 그 마라톤을 60번쯤 완주했다. 잠깐, 이쯤 됐으면 이제 나도 시상대에 오를 때가 안 됐나? 번역상도 받고 전 국민이 다 아는 베스트셀러도 나오고. 하지만 번역은 원래 각광과 박수를 받는 일이 아니다. 다 알고 시작했다. 어쩔 수가 없다. 그저 계속 달리는 수밖에. 80번쯤, 100번쯤 완주하면 나도 빛을 볼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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