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는 말 그대로 ‘프리’하기 때문에 일할 곳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번역가라고 하면 은은한 커피향과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카페에서 일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카페는 가끔 기분 전환하러 가기 좋은 곳이지 매일 일하러 갈 곳은 아니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카페가 번역가의 작업 공간으로 적합하지 않은 이유는 일단 소음 때문이다. 번역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다.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그런데 이 집중력에도 기복이 있다. 집중력이 잘 발휘되는 날은 상관이 없겠지만 유독 집중력이 떨어지는 날은 카페의 음악과 대화 소리에 자꾸 생각의 흐름이 끊긴다. 그러다 보면 생산량은 줄어들고 번역 품질은 나빠진다.
카페가 매일 작업하기에 불편한 두 번째 이유는 인체 공학 때문이다. 카페의 테이블과 의자는 장시간 컴퓨터 작업을 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잠깐 쉬어가기 편하게, 그러나 너무 오래 쉬지는 못 하게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 업무용으로 사용하자면 높이가 적당치 않아 불편한 경우가 많다. 더욱이 모니터를 설치할 수가 없어서 노트북을 쓰게 되는데 그러면 화면을 눈높이에 두지 못하니 자연스럽게 허리가 굽거나 고개가 숙여진다. 오랫동안 그런 자세로 앉아 있으면 몸이 망가진다.
틈틈이 스트레칭을 해주면 낫긴 하다. 목과 어깨를 풀어주는 것은 기본이고 중간중간 일어나서 허리도 좀 펴줘야 한다. 하지만 카페는 나 혼자 쓰는 공간이 아니라서 아무래도 큰 동작을 자유롭게 하기 어렵다. 그래서 스트레칭을 건너뛰기 쉽다. 그런 날이 반복되면 일과를 마칠 때 상당한 피로가 몰려온다. 이런 이유로 카페는 매일 몇 시간씩 앉아서 일하러 갈 만한 곳이 아니다.
카페가 아니라면 번역가는 또 어디서 일할 수 있을까? 공동작업실을 구할 수도 있다. 여럿이서 비용을 분담해 함께 이용하는 공간이다. 보통 의자와 책상은 갖춰져 있고 개인 장비만 준비하면 된다. 지정석이 있다면 모니터를 설치할 수도 있다. 요즘은 흔히 ‘코워킹 스페이스’나 ‘공유 오피스’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 말이 유행하기 전인 15년 전쯤에 한동안 공동작업실 생활을 했다.
공동작업실에서 일할 때 장점은 동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프리랜서는 조직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다 보니 대개 혼자 일하고 그러다 보면 고립감을 느끼기 쉽다. 공동작업실에 나가면 분야는 달라도 똑같이 혼자 일하는 프리랜서들과 친분이 쌓인다. 나는 그 시절에 작업실 동료들과 건물 옥상에 올라가 시가지 사진을 찍고 나름의 합평회를 했다던가, 가끔 일을 마치고 저녁에 근처 술집에서 함께 하루를 정리했던 일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이런 친교는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동지애가 업무의 영역으로 밀고 들어오면 그렇다. 예를 들면 한창 집중해서 일하고 있는데 옆에서 특별한 용무 없이 말을 건다던가, 같이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가 그 자리가 길어져 늦게 돌아오는 것이다. 같이 어울리는 게 재미있으면 어차피 ‘프리’하니까 오늘은 좀 쉬고 내일 더 일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늘어지기 쉬운데 그런 날이 반복되면 마감을 코앞에 두고 몇 주 전의 자신을 원망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공동작업실은 회사가 아니라서 업무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모두 자기 나름의 리듬
으로 일한다. 그래서 남의 리듬에 끌려가지 않게 주의해야 하는데 그 시절의 나는 그게 잘 안 됐다. 아직 싱글이어서 오늘 못 하면 내일 채우자는 역시 ‘프리’한 마음으로 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공동작업실 다음으로 고려해 볼 것은 개인작업실이다. 말 그대로 혼자 쓰는 공간이다. 나는 공동작업실 생활을 정리하고 당시 살던 원룸 근처에 또 원룸을 빌려서 작업실로 썼다. 상가 건물 옥탑방으로 월세가 20만 원쯤 했다. 매일 아래층 카레집에서 채소 볶는 냄새가 올라오긴 했지만 봄과 가을에는 좋았다. 혼자 조용히 일하니 집중이 잘 되고, 생활 공간과 확실히 분리되어 일하는 곳이라는 명확한 인식이 있으니 쉽게 늘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여름과 겨울에는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말이 방이지 사실상 건물 옥상에 컨테이너를 올려놓은 것에 불과해서 아무리 에어컨을 켜거나 바닥의 전기 난방기를 틀어도 덥고 추워서 버틸 수가 없었다. 특히 겨울에는 유일한 통로이자 낭떠러지처럼 생긴 야외의 간이 철제 계단이 얼어서 오르고 내리기가 무서울 정도였다. 그런 계절에는 멀쩡한 작업실을 놔두고, 아니, 멀쩡하진 않았지, 지글지글 끓거나 손마디가 꽁꽁 어는 작업실을 놔두고 근처 카페를 전전했다. 좋은 곳을 얻었으면 그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방은 2010년대 초반인 당시에도 보증금 수천만 원을 제하고 월 4~50만 원은 줘야 했는데 그때 나의 소득으로는 꽤 비싼 금액이었다(덥고 추울 때 카페에 갖다 바친 돈을 합하면 사실 그 정도 돈을 낸 셈이긴 하지만).
카페나 공동/개인작업실을 빼면 남은 건 집이다. 나도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집에서 번역했다. 위에서 말한 개인작업실과 같이 원룸이고 꼭대기층이었지만 정식으로 설계된 공간이라 에어컨과 보일러로 그럭저럭 날씨를 버틸 수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집에서 일하면 편하다. 누구 눈치 볼 필요도 없고 옷을 차려입을 필요도 없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잠옷 차림으로 책상 앞에 앉으면 바로 작업 시작이다. 몸이 좀 뻐근하면 엎드려서 요가를 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그러나 편안함은 독이 될 수 있다. 편하면 늘어지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그 시절에는 의자 뒤에 바로 이부자리가 있었다. 반으로 접어 놓은 매트를 펴면 그게 바로 침실이었다. 견물생심이라고 이불을 보면 눕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그래서 일하다 말고 잠깐 눈을 붙인다며 이불 속에 들어갔다가 해 떨어지고 일어날 때가 적지 않았다. 혹은 일하다 말고 TV를 보거나 게임을, 아, 정말 게임은 문제였다. 분명히 점심 먹고 딱 한 판만 하자고 게임기를 켜면 저녁도 거르고 몰입해 있었다.
게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했는지 모른다. 게임이 시간 낭비라는 말은 아니지만 그렇게 일해야 할 시간에 게임을 붙들고 있으면 분명히 낭비다.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고도 번역 원고만 아니라 대학원 과제까지 모두 제때 제출한 것을 보면 어느 사주 아저씨의 말이 옳았던 것 같다. “한량 팔자인데 책임강은 강해서 성실해.”
여하튼 집은 편하기 때문에 위험하다. 그래서 지금은 어디서 일하는가 하면…… 집입니다. 이제는 집이 그리 위험하지 않다. 공동작업실과 개인작업실 생활을 끝내고 다시 집에서 일한 지 10년이 넘었다. 원룸, 투룸을 거쳐 지금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방 한 칸을 서재 겸 작업실로 삼아서 책상, 의자, 책장 정도만 뒀다. 그래도 집인데 늘어지지 않을까? 딱히 그렇지 않다. 생활 공간과 분리돼 있기 때문이다. 이 방에는 침구가 없기 때문에 눕고 싶지 않다. 개인작업실을 따로 뒀을 때만큼은 아니어도 적당한 분리감이 있어서 여기 있으면 일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든다.
게임기는 신형으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책상 밑에 존재한다. 하지만 일에 방해가 되진 않는다. 일해야 할 때 게임을 참을 정도의 자제력은 있기 때문이다. 그게 안 됐다면 지금까지 집에서 일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글만 해도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아직 아이들이 깨기 전에 게임을 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2시간째 쓰고 있다.
내가 15년이 넘게 프리랜서로 일해 보니 작업 공간과 생활 공간이 어느 정도 분리되고 좋아하는 것을 하루 7~8시간 정도 참을 자제력이 있다면 집에서 일하는 게 편하기도 하고 따로 비용이나 이동 시간도 안 들어서 좋다. 그럼에도 나는 개인작업실에 대한 로망이 있다. 예전의 그 낡은 옥탑 말고 30평쯤 되는 스튜디오를 얻어 나만의 취향을 전시한, 하지만 미니멀하게 빈 공간을 만들고 싶다.
그런 곳으로 출퇴근하는 기분…… 잠깐 출퇴근은 귀찮은데? 차라리 그 시간에 일을 해서 돈을 벌거나 게임을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통근 시간은 짧을수록 좋다. 그러면 계획을 변경하자. 같은 아파트의 다른 호실을 빌려 나만의 공간으로 꾸미는 것이다. 다른 식구들은 철저히 내 허락 하에만 사용할 수 있다. 맥시멀리스트인 그들이 나의 공간을 온갖 짐으로 채울 게 뻔하다.
유감스럽게도 아직 그런 걸 걱정할 단계는 아니다. 당장 그런 집을 구할 돈이 없으니. 정말 부자가 되지 않고서야 아파트를 작업실로 쓴다니! 생각만 해도 설레잖아. 역시 돈을 많이 벌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