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빠시네요.
—동네 아주머니
며칠 전부터 아침 일찍 억돌이를 아기띠로 매고 동네 산책을 다니고 있습니다. 하루라도 밖에 안 나가면 집에 있는 거 지겹다고 소리 지르고 난리를 치기 때문에 매일 나가야 하는데요, 오후에 엄마가 데리고 나가긴 하지만 아침에도 나가면 오전에 성질 좀 참고 있으려나 싶어서 제가 아침 7시쯤 해서 날 선선할 때 짧게 20분 정도 동네 구경시켜주고 옵니다.
오늘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는데 같이 탄 아주머니가 억돌이한테 “어디 가니?”라고 물어요. 그럴 때는 또 아빠가 아기 목소리 비슷하게 내면서 “산책 가요”라고 대답하는 게 예의죠. 그러니까 아주머니가 “좋은 아빠시네요”라고 하십니다.
엊그제 미술 학원에 갔을 때는 아침에 애 때문에 일찍 일어나서 피곤하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그래요. “나 아는 사람은 아침에 애 울어도 남편은 잔다던데…….” 그러자 옆에 있던 세 아이의 어머니도 맞장구를 치십니다. “우리 남편도 그래요. 안 들린대!” 그리고 덧붙이는 한 마디. “일등 신랑이시네요.”
제가 이렇게 좋은 아빠와 남편 코스프레를 할 수 있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프리랜서라서.
다른 아빠들처럼 회사 다니면 아침에 출근 준비해야지 무슨 한가하게 애랑 산책인가요. 그리고 회사에서 안 졸려면 아침에 최대한 많이 자둬야죠. 또 회사 생활이란 게 얼마나 피곤합니까. 안 해본 저도 다 알 정도예요.
저야 그냥 서재에 들어가서 앉으면 출근이니까 준비하고 자실 것도 없고 낮에 졸리면 그냥 침대에서 한숨 자면 그만이죠.
후우. 근데 이 코스프레도 점점 힘들어집니다. 애가 무거워지고 성질이 생기니까 몸도 마음도 힘드네요. 아내도 힘들어 하지만 저는 일을 한다는 핑계로 육아 분담률이 점점 낮아지고 있어요. 전에는 아내가 7, 제가 3 정도 됐던 거 같은데 지금은 9 대 1입니다.
일찍 낳을 걸 그랬어요. 마흔 가까워지니까 체력이 달리네요. 지금은 애가 누워만 있는데 이제 곧 기어 다니고, 걸어 다니고, 뛰어다니면 어떻게 해야 할지 벌써 눈앞이 캄캄합니다.
이십 대 같은 체력(+외모)을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