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착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네이버에 착하다를 검색하면 '착하다'는 이렇게 정의된다.
善(착할 선)
착하다: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
사람들은 대개 착한 사람을 좋아한다.
누군가 자신에게 언행이나 행동을 바르고 상냥하게 하면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그렇다면 사람들이 말하는 착한 사람이란 무엇일까?
아마도 이타심(利他心)이 있는 사람.
- 타인을 위해 희생을 기꺼이 할 수 있는 사람
- 사회의 공익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사람
이타심과 착하다는 같은 의미일까?
이타심과 착한 것은 긍정적이기만 한 것일까?
착함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착하다의 반대말은 나쁘다일까?'
'착하다'는 것만큼 주관적인 뜻을 가진 단어가 있을까?
그동안 나에게 '착하다'는 의미는 나보다는 타인을 위하거나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남을 이롭게 하는 마음은 세상의 균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영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생각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뭐든 지나치면 안 하느니 못하다고 자신을 이롭게 하는 최소한의 선을 지키면서 타인을 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이런 생각을 한번 해본다.
그렇다면, 착하다는 행위는 '대가'를 바라지 않아야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나를 돌아봤을 때, 착한 행위의 출발점은 순수한 의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선을 베풀 때 타인이 그것을 알아줬으면 좋겠고, 내게 의미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나의 행동 가치를 높게 인정받고 싶었다. 때로는 그들도 내가 행한 정도의 선을 베풀기를 바라기도 한다.
양심고백을 하자면,
타인에게 선을 행하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자아 욕구를 충족하는 면이 큰 것 같다.
이러한 나의 선함의 가치는 어떠한가?
남들이 나의 착함을 알아주면 민망하다가도 막상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한 감정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을까?
나는 타인과의 갈등을 선호하지 않는다.
아니, 선호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많이 싫다.
어느 누가 갈등을 좋아할까 싶지만, 갈등을 통해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얻는 것이 분명 있기 때문에 갈등 없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갈등의 필요성을 어느 정도 인지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갈등의 조짐이 보이면,
타인에게 웬만하면 맞추고 상황을 빨리 벗어나려고 한다.
그렇게 타인을 위한 선한 행동을 한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인정까지 받기를 원하지만 그것이 충족되지 못하면 타인에 대한 서운함과 더해 실망까지 이어지기도 한다(타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요구한 적도 없는데 나 혼자 기대하고 실망하니 많이 당황스러울 거 같다).
선행에는 '적당한 선(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내가 손해 보고 나를 깎아가면서까지 타인을 위한 선행을 한다는 것은
‘나 자신은 해롭게 하면서 철저히 타인만을 이롭게 하는 이타심과 그것을 알아주길 바라는 이기심일 것이다.’
오늘도 사람들이 내게 착하다는 말을 하면
'나 자신은 생각 안 하고 타인만을 위한 행동이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선함에 대해 뭐가 옳고 그른 것인지 정의 내릴 필요는 없지만, 착하다는 것이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긍정적이고 바른 것인가에 대한 고찰은 한 번쯤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