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습 복습 복습, 논문 논문 논문
대학원생에게도 꿀맛같은 방학이 주어진다. 종강과 함께 기말고사가 끝나면 방학이 시작되는데 직장인 겸 대학원생에겐 방학이 방학같지 않은 마치 계절학기 같이 바쁜 느낌이다.
학기중에는 공부보다 시험과 과제에 급급해서 학습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했었다. 못다한 공부는 방학에 다시 복습해야되는데 아무래도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나로서는 여전히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졸업 후에는 수련시험이라고 해서 병원, 센터마다 시험이 있는데 저마다 시험유형엔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정신병리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 심리검사, 심리평가에 대한 내용은 바로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정신병리의 바이블이라고 불리우는 DSM-5-TR은 감별진단, 진단기준, 주요특징 등 자세히 작성되어 있다. 영어명으로도 당연히 암기해야함은 물론이고 각 진단명에 대한 세세한 내용까지 다 외워야해서 엄청난 고통(?)이 따른다고 할 수 있겠다.
이외에도 심리치료이론이나 상담면접 또한 임상가가 되기 위해서 무엇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과목들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이론들을 나만의 것으로 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호기롭게 방학동안 공부할 리스트를 정리하고 나름 스케줄대로 소화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저 내용들이 가물가물해진게 아쉽고 슬프달까.
꾸준히 반복하고 암기하는 것만이 망각의 속도를 늦추고 장기기억으로 남을 수 있는데, 벼락치기처럼 반짝하고 중단하고 반짝하고 중단하는 패턴만 반복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방학 때 국가자격증인 청소년 상담사를 준비했다면 좋았을텐데(교육학과 졸업이라 3급 시험을 바로 볼 수 있었음) 자격증을 졸업하고 준비하게 되어서 그 부분이 좀 아쉽다(석사 졸업후에는 2급을 응시할 수 있지만 미리 3급을 취득했으면 상담관련 기관에서 경험을 쌓을 기회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자격증을 위한 공부는 범위가 어느 정도 정해져있어서 집중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데에 비해 수련 시험은 범위라고 하는게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 대학원 과정에서 배운 모든 것이 범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서 전략과 방향을 잘 설정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무튼 방학때는 수업내용 복습을 하며, 대망의 논문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재학했던 학교의 졸업제도는 논문없이 졸업할 수 있는 방법과 논문 작성하는 졸업 이렇게 두 가지가 있다. 정규 5학기 과정이지만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4학기 조기졸업이 가능하기도 하다(물론 조기졸업은 무조건 논문을 써야함).
논문이 강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쓸지 말지 고민을 정말 많이 했던 것 같다. 학기 초반에 정한 주제를 지금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새내기 대학원생의 패기가 느껴지는데 박사과정에서도 쉽지 않을 '외상 후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는 집단과 극복한 집단의 유전적 요인 및 인지적 요인'에 관한 주제를 연구하고 싶다고 생각했다(불가능한건 아니겠지만 논문에 '논'자도 모르는 새내기의 주제치고는 꽤나 무겁다고 할 수 있겠다).
동기들중에도 '논문은 석사과정에서 해볼 수 있는 중요한 경험이다' VS '안써도 졸업이 되는데 굳이 안해도 된다' 로 니뉘었다.
석사 논문은 아무래도 학위 취득을 위한 조건에 초점이 맞춰지다보니 학문적 가치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오히려 부담감을 내려놓고 논문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마음을 좀 내려놓고 논문 작성해본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주제만 잘 선정'하면 나머지는 크게 걱정할 필요 없다고 논문을 써보라고 추천했다(그 주제를 잘 선정하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미래의 내가 겪을 고통을 예감하지 못한채 논문을 쓰기로 다짐하고 2학기 개강 전에 지도교수님께 논문 졸업을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자, 논문을 쓰기로 했으니 어떤 주제, 어떤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구할 것인지, 관련 주제에 대한 선행연구는 어떠한지부터 찾아봐야 한다.
이 작업부터 만만치 않음을 깨닫는 순간 발빼기는 이미 늦었다.
이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무조건 써야한다. 첩첩산중과 같은 논문이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