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60억이 넘게 살아가는 이 행성 위에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가슴을 후벼 파는 절망적 상처, 그리고 누구에게 들킬까 꼭꼭 숨기고 숨기는 모든 이의 모든 상처들. 그 하나하나에는 크고 작음이 있겠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그 사람으로 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보지 않고서야 우리는 그것을 정확히 헤아릴 수 없다. 그러니 크고 작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그 모든 상처에는 차이가 없는 거다. 그래서 상처가 존재하는 이상 그 모든 상처는 똑같은 아픔의 크기의 상처다. 하나하나 비교하고 따져보기엔 애초에 그것을 다 헤아릴 만한 여유조차도 없다. 그래서 상처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끌어안고 앞으로 가야만 하는 것이다.
모든 이의 상처의 크기는 같다. 이것은 진실을 표현하려는 구절이 아니라 상처에서 헤어 나오는 해법을 말하는 구절이다. 상처의 크기를 비교하는 행위는 재산의 크기를 비교하는 것과 똑같은 정서적 결과를 가져다준다. 열등감 혹은 우월감이라는 취약한 감정상태로 치환되는 돈의 경쟁처럼 상처의 경쟁도 우월함과 열등감으로 치환될 수밖에 없다. 저 사람은 나 같은 상처가 없어서 잘된 거야. 저 사람은 나 만큼 다쳐보지 않았는데 왜 저리 아픈 척을 하지? 상처의 크기를 비교하는 것은 치유를 낳지 못한다. 결국은 그 비교와 경쟁 속에 내 상처의 존재감만 더욱 부각될 뿐이다.
모든 상처는 같은 크기라고 믿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널 치유할 수 있고 네가 날 치유할 수 있다. 그래야 너와 내가 공감할 수 있다. 대단해 보이는 그 누군가에게도 상처가 있고 비루한 나에게도 똑같은 상처가 있다. 그 모든 상처는 같은 크기의 상처다. 실제로 같은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모두 그렇게 믿어야 한다. 상처를 잣대로 마음의 비교우위에 서려는 모든 아집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치유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