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는 체육시간이 왜 있는지 잘 몰랐다. 물론 체육시간이 싫었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때로는 귀찮은 날도 있었을 것이라 본다. 학기와 과정에 따라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종목이나 주제를 배웠을 수도 있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때때로를 제외하면 그 시간은 대부분 즐거운 시간이기는 했다. 그 시절 체육시간은 그저 지루한 일반 교과목 시간과 비교되는 일상의 소소한 일탈로 여겨졌던 것 같다. 하지만 왜 인간에게 체육시간이 필요한지에 관한 철학적 고찰까지는 없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몸이 서서히 무거워져 감을 느끼기 시작할 때야 비로소 체육이란 존재의 이유를 느끼게 된다. 여가나 일탈 혹은 애착 있는 교유관계의 형성을 위한 촉매적 수단에 국한됐던 '체육'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필요'의 영역으로 옮겨간다. 무엇에 대한 필요인가라는 물음이 따라온다면 생존을 위함이라는 대답이 따라올 것 같다. 단순한 재미나 일말의 문화적 사치라는 의미를 넘어 체육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하지 않으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만 하는 피할 수 없는 삶의 과정이자 일상의 영역이 되는 것이다. 방치된 몸은 근육이 해산되고 숨 쉬는 기능이 말라가며 건강하지 못한 정신을 야기한다. 그것은 일상을 더 힘들게 하는 결정적인 요소이자 어쩌면 죽어감,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인에게도 체육시간이 필요하다. 신체와 정신은 상호 간에 영향을 주는, 유기체가 살아가는 두 개의 축이자 그 존재의 모든 것이다. '아, 운동해야 되는데'라는 푸념은 멋진 몸매를 가지고 있는 누군가에 대한 동경이나 삼삼오오 모여 오줌 싸듯 내뱉은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그것은 잠재적으로 느껴지는 생존의 필수 불가결한 한 요소의 필요를 역설하는 무의식적인 외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