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비영리법인에는 [서포터즈]라는 자원봉사자 조직이 있습니다. 공식적인 활동은 겨울철에 하고 있고 비공식 활동기간인 봄 여름에는 사무국 간사들과 함께 한달에 한 번 월례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이 [서포터즈] 멤버 중에는 필자의 페이스북 홍보로 활동을 함께 하게 된 A님도 있는데(대학생 시절 한 연합동아리 활동으로 스치듯 인연을 맺은 지인) 그저께는 6월 모임을 가진 후에 A님과 우연히 귀가길을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알던 사실을 잊어버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우연찮게도 A님이 사는 곳이 필자와 같은 경기도 부천시였기 때문입니다.
A : 쌤네는 복지가 참 좋은 것 같아요
A님과의 인연에 관하여 흐린 기억을 되살리며 퍼즐을 맞추듯 이야기를 하던 도중 A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날의 모임은 함께 연극을 보는 일정이었는데 A님은 본 일정에는 참석하지 못하고 뒤풀이만 참석한 뒤였습니다. 아마도 연극티켓비용을 사무국에서 지원하는 것으로 알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A님이 [서포터즈]로 함께 한 뒤로 제대로 이야기 나눌 기회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우리 단체의 어떤 면을 두고 복지가 좋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그 날의 티켓은 참석자 각자가 비용을 지불했었습니다. 아마도 겨울기간동안 공식활동을 하면서 다른 간사분들로부터 우리 단체의 근무 환경에 대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복지라는 개념을 어디까지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사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비영리법인은 나름 복지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대목은 자평이기는 합니다. 여느 대기업처럼 휴가철에 콘도를 저렴하게 예약할 수 있다거나 자녀의 대학학자금을 지원한다거나 하는 등의 '어마어마'한 복지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10명 내외로 움직이는 비영리법인에 그런 복지는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겠지요. 다만 겨울철에 일이 상상이상으로 휘몰아치는 사업 특성상 봄 여름에는 근무를 탄력적으로 하고 있고(올해는 10시 출근 및 금요일 오전근무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겨울철에 토요일을 포함하여 5개월 동안 거의 쉬지못하고 일하는 관계로 연차나 휴가가 조금 많은 편입니다.(사무국 공동 휴가를 포함하여 연 30일 이상) 또한 간사들끼리 일정 조율만 잘하면 그 휴가를 굉장히 길게도 붙여 쓸 수 있다는 점도 누군가로부터는 부러움을 살 수 있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소소하지만 봄 여름 기간에는 월 5만원의 체력단련비와 동일한 금액의 문화활동비를 지원하는 점도 꽤나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제는 광화문 인근 헬스클럽에서 오랜만에 운동을 하고 왔습니다. 만약 A님이 그런 사정을 이전에 들었던 것이라면 복지가 참 좋다는 말은 어느정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그런 '자평'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 필자는 그 말에 웬지 모르게 쉽게 동의를 하지 못했습니다.
필자 : 뭐 복지라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른거니까요,
집에 돌아와 내가 왜 그렇게 대답했을까를 고민 해보았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런 답변을 한 이유에는 최근 업무상에서 느끼고 있는 '바쁨'이 배경심리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최고의 복지는 '적당한 일의 양이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들어갔던 것 같습니다.
2. 적당한 일의 양이란 어느 정도의 수준일까.
앞서 말한대로 필자는 근래에 업무상으로 조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겨울철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말하자면 영리법인의 '비수기'격에 해당하는 봄 여름기간을 보내고 있지만 예년과 달리 사업의 다각화를 시도하게 됨에 따라 그 흐름에 맞춰 담당해야할 업무도 늘어났습니다. 기획/홍보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필자의 최근 업무상의 중점 사항은 '우리가 하는 일이 더 잘 드러나도록 홈페이지 및 여러 소통채널을 개선해야한다.'는 미션인데 이것이 다양한 사업 시도와 맞물려 '우리가 하는 일' 부분이 양적으로 더 많아진 것입니다. 이를테면 홈페이지 방문자들이 "아 이 단체는 요즘 이런 일들을 하며 지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좀 더 친절한 홈페이지를 만드는 것이지요. 또한 점진적으로 활자 위주의 콘텐츠가 불편해지는 세상의 흐름 속에서 '이미지' 혹은 '동영상' 위주의 콘텐츠 제작을 하느라 동일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콘텐츠 하나를 만들어내는데 들어가는 품도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의 시류 속에서 '바쁨'이 양산되고 있다보니 일이 좀 적당했으면 좋겠다하는 생각이 은연중에 들었던 것 같습니다.
실은 예전에 이 '적당한 일의 양'에 관해 고찰해본 적이 있습니다. 아마 대학생 시절의 어느 날로 기억합니다. 적당한 업무의 양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의 양일까. 혹은 어느 정도로 느껴지는 수준일까하는 생활 철학적 물음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때는 이전 글에서 잠시 언급한 적이 있는 어느 어학원 본사에서 아르바이트 생으로 근무하던 시절이었는데 '반사회인'으로 업무라는 것을 경험하면서 일의 속성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그런 생각을 했던 이유는 일이라는 것이 적다고해서 능사가 아니고 또 많다고 해도 능사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일이 적으면 상대적으로 한 업무에 투여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기 때문에 좀 더 완성도 있는 일처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오히려 긴장감이 떨어져서 너무 여유를 부리게 되는 방만함이 꽃피는 것 같고 반대로 일이 너무 많으면 한 건 한 건의 일들을 단지 '처리'하는 데 급급해지기 때문에 에너지는 많이 쓰지만 그저 그런 결과물들만 수집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근무시간 단축이 큰 이슈인 요즘시대에 그 흐름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는 업무에서의 생산성 증대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일이 너무 많거나 혹은 너무 적으면 그 생산성을 일으킬 수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적당한 일의 양은 무엇인지를 탐구해보려면 일단 이 '일'이라는 것의 속성과 그것을 담아내는 그릇이라 할 수 있는 '인간'의 특성을 함께 살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일은 마치 신축성이 있는 고무공과 같고 그것을 담아내는 인간의 정신은 하나의 원통과 같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일을 '한다'는 것은 이 공들을 원통안에 하나 씩 집어넣는 행위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다양한 크기의 고무 공들이 널려있고 중앙에는 그보다 꽤 큰 원통하나가 있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일단 원통에 고무공을 하나만 넣어보겠습니다. 어떤 크기의 공도 괜찮습니다. 단지 공 하나이기 때문에 원통 안은 아직 공간이 많이 남습니다. 원통이 공에 비해 워낙 크기 때문에 그 공이 크던 작던 아직은 공간이 매우 여유롭습니다. 이 상태는 원통을 너무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직은 충분히 공을 더 담을 수 있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농땡이를 부리며 일하는 척만하는 '월급루팡'이 이에 해당된다고 생각됩니다.
아직 원통에 여유가 있기 때문에 주변에 널려있는 공들을 하나 둘 씩 더 넣어보겠습니다. 공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원통도 조금씩 차오를 것입니다. 그러면서 원통 안의 빈공간은 점차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다 어느순간에 돌입하면 그냥 옮겨 놓는 행동으로는 더 이상 공을 원통 안에 집어 넣을 수 없는 순간이 옵니다. 이제는 원통안에 공이 가득차 공을 넣어도 원통위로 그 공이 넘처 나오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순간까지 공을 어떤 순서로 집어 넣느냐에 따라서 넣을 수 있는 공의 갯수는 달라질 것입니다. 가령 처음부터 너무 큰 공 위주로만 계속 공을 집어 넣으면 공간이 남는데도 불구하고 작은 공을 넣을 수 없게됩니다. 공과 공사이의 빈틈을 잘 살펴보며 큰공과 작은공을 적절히 배치시켰다면 공간을 훨씬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겠죠. 아마 이것은 공을 넣는 사람의 능력일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공을 효율적으로 넣는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공과 공 사이에는 빈공간이 남기 마련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일을 생산적이고 효율적으로 한다는 개념의 최대치는 공과 공 사이의 빈틈을 최소화 하여 원통에 집어넣은 이 상태를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최대한의 순간에 보이는 공과 공 사이의 빈공간은 과업을 수행하는 사람이 최소한으로 부여받아야 할 '여유'라는 것입니다. 물론 앞서말한대로 사람에 따라 어느정도는 공을 더 효율적으로 원통안에 집어넣을 수 있겠습니다. 문제는 그 최대한의 상태에서도 추가적으로 공을 우겨 넣으면 공들이 더 들어가기는 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일은, 부여받아야 할 최소한의 여유와 추가적인 일 사이에서 등가교환이 일어나는 [과부하]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됩니다.
빈틈이 여전히 존재하는 이상 공을 우겨 넣으면 어느정도까지는 원통안에 공이 더 들어갑니다. 관점에 따라서는 원통의 공간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공은 찌그러지기 시작합니다. 공이 찌그러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수행하고 있는 '일'들이 훼손되기 시작했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여유(빈공간)는 사라져갑니다. 그렇게 여유를 헌납하면서까지 조금의 일을 더 한 결과는 다른 일들 전반에도 영향을 줍니다. 그 공 하나를 추가적으로 집어 넣기 위해 다른 공들까지 '찌그러져'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공을 더 우겨넣으면 우겨 넣을수록 공들은 더 많이 찌그러져 갈 것입니다. 일을 우겨넣으면 우겨넣을수록 더 많은 일들이 더 많이 훼손되어 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더 위험한 것은 그런 과부하가 지속되다 보면 원통자체에 무리가 갈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 추세의 결과는 아마 둘 중의 한가지가 될 것 입니다. 응축된 공들이 한 순간에 밖으로 튕겨져 나가버리던지 아니면 원통 자체가 깨져버리던지. 사람이 '폭발'한다는 것은 아마 그런 정신적인 과부하의 순간을 의미할 것입니다.
'아직은 나에게 추가적인 일을 할 여유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의 위험성이 여기에 있다고 판단됩니다.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는 일을 더 부여받아도 아직 그 일을 해낼 여유가 있지만 찰나의 순간을 지나치면 과부하의 영역으로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경계는 참 오묘합니다. 그 경계가 누가봐도 명확하다면 그것을 지나칠 일이 없겠지만 어쩌면 그 지점은 어느정도의 경험이 쌓인 후에만 눈치챌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두에서 적당한 일의 양이 곧 최고의 복지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던 이유는 아마 일을 우겨 넣기 시작하다보면 '나'(원통)라는 존재자체가 깨져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의미에서 일을 함에 있어 최소한의 여유가 필요한 이유는 그래야만 일을 더 온전히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통에 공을 자꾸 집어넣으면 공들이 계속 구겨지고 찌그러져가니까요. 그래야 일도 살고 나도 살 수가 있습니다.
3. 적당한 양의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은 곧 일을 잘하고 싶다는 것
결국 적당한 양의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은 일을 온전히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자신의 자아정체성이 투여되는 대상이기에, 자기만의 방식과 범주와 정도가 있겠지만 그 누구도 자신이 담당하는 일을 망쳐버리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 미묘한 경계를 찾아내거나 확정하는 것은 자지 자신에게 달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흔한 SNS의 인생 조언처럼 인간은 본질적으로 남의 일에 크게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남의 일이 나에 일과 연관된 때에야만 인간은 비로소 그 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인간이 가지는 어떤 돌물적인 본성의 한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의사소통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국인은 자신이 하는 일을 너무 티내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끊임 없이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업무의 진행상황과 장애물에 대해서 언급하는 서양사람들과 달리 한국인들은 너무 '묵묵히' 일을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그런 한국인의 특성은 '모나면 정 맞는다'는 대한민국의 문화 역사 속에 쌓인 완전히 극복하기는 어려운 민족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의사소통이 단절된 조직은 어느 순간 소멸의 길로 빠져버릴 수 있기에 그런 틀을 깨 나가는 것은 다분히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더 바람직한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인 의미에서 개개인의 힘겨움이 공유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필자는 요즘 사무국 안에서 공유되는 구글 캘린더에 '할일' 과 '한일'을 최대한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나 이만큼 일 하고 있으니 알아주세요'하는 조금 유치한 마음인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무슨일을 어떻게 해나가고 있는지를 스스로 기억하고 여러 일을 하는 와중 하나의 일에 필요한 시간과 에너지는 얼만큼인가, 또 그것들 간의 조율은 어떻게 할 것인지를 파악해나가기 위함 인것도 같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기록을 해 나가니 나 자신도 내가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더 기억하기 쉽고 다른 분들도 내가 어떤 일을 얼만큼 하고 있는지 더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글을 쓰고 나니 당연한 이야기를 너무도 당연하게 이야기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명저 [총.균.쇠]또한 그런 식의 평가를 받은적이 있으니 뭐 이런글도 있다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한 글을 통해 필자가 근무하는 비영리법인이 마치 근로자를 비인격적으로 혹사시키는 것처럼 비춰졌다면 그것 또한 오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필자가 이 조직을 선택한 여러 이유 중의 하나가 '회의가 회의답다'는 것일 정도로 상당히 합리적이고 꽤나 건강한 조직문화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사업의 다각화'라는 새로운 변화의 시점을 맞이함으로 인해 전반적인 조직생리를 조정해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앞서 말했듯이 그런 변화의 흐름속에서 적당한 일의 양을 찾고 확정해나가는 것은 조직에서의 필자의 건강한 자아 정체성 유지를 위해 계속해서 탐구해야할 중요한 과업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