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x고 너는 y다

세상살이가 녹록지 않은 이유의 수학적 고찰

by 글객



to Globe
by Logic
from Originality

누구나 독창성이 있다
그것이 논리를 만나면
세상을 만날 수 있다

나는 그것을 GLO 해내고 싶다.






1. 박사과정의 그 동생은 조금 지쳐있었다.


작년 여름 어느 날 아는 동생으로부터 갑자기 연락이 왔습니다. 대학생 시절 연합동아리를 하면서 알게 된 동생인데 필자가 워낙 누군가와 개인적으로 연락을 하지 않는 성격이라 조금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 동생은 필자에게 갑자기 같이 자전거 타러 가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습니다. 작년의 필자는 자전거를 타고 19일간 유럽여행을 하기도 하고 출퇴근도 자전거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SNS나 이런저런 소문으로 주변인들에게 자전거 타는 사람으로 소문이 나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소식을 듣고 갑자기 자전거 타기를 제안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 동생과는 반포 한강공원 즈음에서 만나 자전거로 구리까지 다녀왔습니다. 그 친구는 맛있는 곱창집이 있다며 저를 구리까지 안내했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곱창집에서 식사를 하고는 다시 반포 한강공원으로 오던 길에 그 동생과 필자는 자전거 위에서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친구는 카이스트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친구였는데 아무래도 대학원 생활이 녹록지 않은 듯 보였습니다. 그 이전에도 논문 주제나 지도교수를 바꾼 경험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특정 한 명의 지도교수 밑에서 대학원 생활을 해야 하는 '학계'라는 곳의 생리에 왠지 지쳐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그 친구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동생 : 저희 아버지는 항상 가족과 같이 저녁식사를 했어요.


이 말 뒤로 그 친구가 했던 이야기가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어진 그의 하소연은 지금의 삶의 연장선상에서 과연 자신도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담겨있었습니다. 그런 푸념을 들으니 일류 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고 해도 세상 살이란 게 참 녹록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필자는 그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아버지 세대보다 훨씬 더 고차방정식을 풀고 있는 것 같애


그 친구와 저는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만났던 장소로 돌아와 헤어져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필자는 오던 길 그대로 집까지 자전거를 타고 귀가했습니다.




2. 세상이 복해지면 정답이 많아지지만 정답이 많아지면 세상이 복잡해진다.


필자가 근래 읽고 있는 책 [일취월장]에서는 '복잡계'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복잡계라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변수와 정보가 굉장히 많은 시스템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구체적인 설명을 위해 책의 설명을 그대로 인용해보기로 하겠습니다.


복잡계(complex system)는 복잡한 시스템을 말한다. 여기서 '복잡한'이란 의미는 뒤죽박죽 이어 혼란스러운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정보의 양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복잡성이 올라갔다고 표현하면 그 현상을 설명해야 할 변수들이 많아졌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수많은 변수들이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는데 그 관계가 비선형적임과 동시에 되먹임도 일어난다.

- 일취월장 中 [고작가의 심화 : 복잡계로 비지니스 이해하기]에서


여기서 정보의 양이 많다는 것은 이해하기 쉬우나 비선형적이라던가 되먹임이라던가 하는 말들은 생소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비선형적이라는 것은 수학적으로 입력을 2배로 해도 출력이 2배가 되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또한 되먹임이라는 것은 영어로는 피드백( feed : 먹이다. back : 다시)을 말하는데 이를테면 에어컨의 온도조절 능력을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현재 기온 26도에서 희망온도를 24도로 설정해두면 에어컨은 온도가 24도가 될 때까지 계속해서 냉방을 합니다. 여기서 계속해서 내려가는 실내온도는 에어컨이 가동돼서 발생하는 결괏값임과 동시에 그것 자체가 입력값이 됩니다. 24도가 되기 전까지는 외부 온도를 계속해서 입력값으로 넣어줘야 아직 24도에 도달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지하고 계속 냉방을 가동하기 때문입니다. 실내온도가 24도가 되면 에어컨은 가동이 중단될 것입니다. 결국 되먹임이란 결괏값이 입력값에 영향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복잡계라는 말을 좀 쉽게 이해하자면 '어떤 변수에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쉽게 예상하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필자가 자전거를 같이 탄 그 동생에게 '우리 세대가 더 고차 방장식을 풀고 있는 것 같다.'라고 이야기한 것은 이전 세대보다 그만큼 더 복잡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습니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과학기술이 눈이 부시도록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그것도 한국전쟁 이후에 급속도의 압축성장을 한 대한민국이라는 생태계에서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 세상의 복잡함의 차이는 어쩌면 그 아버지 세대와 조선시대만큼의 차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은행 적금이 10프로에 달해 저축만 잘하면 내 집 마련이 현실로 다가왔던 이전 세대와 달리 저성장과 저금리 속에서 내가 살 공간을 소유한다는 것이 저 먼 꿈같은 이야기가 되고 있는 현시대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변수는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푸는 어려움에서 많은 다름을 느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를 좀 설명하기 위해 아주 간단한 방정식을 가져와 겠습니다.

y = 2x

y=2x라는 아주 간단한 함수입니다. 이 방정식은 파악이 아주 간단합니다. y=10이라는 결과를 얻으려면 변수 x에 들어갈 숫자는 5라는 답을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일단 변수가 하나이고 1차 방정식이기 때문에 답을 찾는 것이 아주 쉽습니다. 그리고 선형 방정식이라 입력을 늘리면 늘릴수록 결괏값도 그에 비례해서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결과를 예상하기가 굉장히 쉬운 시스템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정도로 변수에 대한 결과가 쉽게 예상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요. 딱 맞는 비유일지는 모르겠으나(더불어 필자의 제한된 지식을 바탕으로) 과거 조선시대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아마 그 시대에서 성공을 이룩하기 위해서는(아마 출세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과거 시험을 통과하는 방법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단순한 시스템의 세상이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시스템이 단순하다는 것이 그 시스템에서는 결과를 얻기가 쉽다는 것을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과거시험을 통과한다는 것은 확률상으로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출세는 곧 과거시험 통과라는 시스템은 이해가 어려운 시스템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리고 과거시험 준비에 투여한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일단은 그 시험을 통과할 확률도 비례해서 늘어났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보다 좀 더 복잡한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방정식의 차원을 좀 높여보겠습니다. 3차 방정식 정도로 차원을 놉혀보면 세상이 어떻게 느껴질까 생각해보겠습니다.

y=2.0x^3-x^2-3x+1

이 방정식에서 y가 0이 되게 하는 x는 무엇일까요? 쉽사리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 해를 찾기 위해서는 인수분해를 통해 오른쪽 항을 좀 정리하거나 근의 공식을 활용하여 해를 찾아내야 할 것입니다. 수학에 별로 관심이 없는 분이라면 무슨 말인지 잘 모르실 수도 있겠으나 핵심은 답이 한 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필자는 수학에 학을 땐 족속입니다.) 또한 밑의 그래프와 같이 시스템이 비선형적이라 입력값이 2배가 된다고 해서 출력 값이 2배가 되지도 않을뿐더러 때로는 입력값을 높임에도 불구하고 출력은 줄어드는 구간도 존재합니다. 즉 변수에 따른 결괏값을 유추하는 것이 좀 복잡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이 정도 차원의 방정식은 사실 한창 학업에 정진하고 있는 학생들이라면 그리 어렵지 않게 해를 찾을 수 있는 수준일 것입니다. 하지만 방정식의 차원이 4차, 5차 점점 늘어날 때마다 점점 해를 찾는 것이 어려워지고 시간도 많이 걸리게 됩니다. 또한 3차 정도의 수준까지는 각 차수의 x항에 붙은 계수(2.0x^3에서 2에 해당하는 수)를 통해 그래프의 형태를 유추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고차방정식이 돼감에 따라 그런 형태를 유추하는 것도 불가능해집니다. 시스템이 어떻게 생겼는지 쉽사리 알아볼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복잡해진다는 것은 이런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세상의 차원이 높아질수록(복잡해질수록) 내가 원하는 결괏값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값을 투여해야 하는지 쉽사리 보이지가 않습니다. 때로는 똑같은 방법으로 입력값을 계속 높여가도(노력을 해도) 올라가는 듯했던 결괏값이 다시 내려가기도 하고(뭔가 후퇴하는 것 같고) 그런 구간을 지나면 다시 올라가기도 하고 어느 순간 또다시 내려가기도 합니다.(차원이 오를수록 그래프가 꺾이는 지점이 많아집니다.) 도무지 어떤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될지 잘 모르겠는 순간을 살면서 많이 만나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이제 좀 세상을 알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순간부터 세상은 다시 나를 등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도 이런 복잡한 세상의 속성이 반영되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아이러니 한 부분도 있습니다. 바로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해는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1차 방정식에서 해는 한 가지만 존재하지만 3차 방정식에서는 해가 3가지나 존재합니다. 방정식의 차원이 높아질수록 어떤 결과를 얻기 위한 방법도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과거시험 급제만이 성공의 길이었던 조선시대와 달리 현시대에서 성공하는 방식은 수 없이 많을 것입니다. 요즘은 유튜버가 대세인 것처럼 보이는데 성공으로 가는 길이 굉장히 다양해진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성공으로 가는 길이 많아졌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다시 그 시스템의 복잡도가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길은 많지만 어떤 길을 택하는 것이 성공으로 이어질지 알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입니다. 이 길이 맞는 것 같았는데 전혀 다른 방식을 선택한 누군가가 성공에 더 빠르게 도달하고 그렇게 성공에 도달한 듯 보였던 누군가가 또다시 나락의 길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도무지 시스템이 어떤 논리로 작동하는지 알아채기가 점 어려워집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어쨌든 x라는 변수를 스스로 잘 찾기만 하면 원하는 결과에 도달하는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진정한 문제는 변수라는 것이 '나 혼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3. 나는 x요 너는 y다.


박사과정에서의 세상살이의 녹록지 않음을 토로하던 그 친구는 사실 제가 알기로는 학부생일 때 굉장히 유능한 친구였습니다. 필자가 알기로는 학업 성적도 뛰어났고 건장한 신체를 기반으로 운동신경도 뛰어났습니다. 동아리 엠티 때는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라는 노래에 섹시한 춤을 출 정도로 예능감도 뛰어났으며 심지어는 합창동아리 멤버이기도 했습니다. 남자라면 부러워할 만한 그리고 여자라면 반할 정도로 다양한 분야에 자질이 있는 소위 말해 건실한 청년이었습니다.


아마도 학부 시절, 그러니까 그 친구가 진정한 사회인이 되기 전에는(가보지는 않았지만 이공계에서의 대학원 생활은 거의 직장생활에 가깝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삶의 통제가 가능했을 것입니다. 왜냐면 방정식의 변수는 x(나 자신)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회라는 곳으로 진입하면서 변수는 자기 자신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게 되는데 여기서 문제는 그 많은 변수라는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삶의 목표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

w = (2x^3 -x^2+6x+1) + ( -3y^3 + y^2 - 3y -2) + ( z^3 + z^2 + 2z + 10) + ....

위의 방정식을 살펴보면 변수는 x 말고도 y, z 등 여러 가지로 확장됐습니다. 결괏값은 w입니다. 사회인으로서 어떤 조직 안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이런 상황을 말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내가 원하는 결괏값의 w를 도출해내기 위해서 내가 조정할 수 있는 것은 x 뿐입니다. 하지만 그것 만 가지고는 특정 w를 도출해낼 수 없습니다. y, z 등 다른 변수도 함께 조정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y, z를 조정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몫이며 내가 원하는 w값에 관심이 없습니다. 저마다 다른 w값을 원합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w값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그 w가 왜 필요한 것이며 왜 그러한 목표로 시스템이 향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설득해야 합니다. 런 설득에 실패하면 자신이 원하는 결과와는 동떨어진 무엇인가를 위해 스스로가 어떤 기능을 해야만 합니다. 이런 상황이 닥치면 조직이라는 생리 속에서 나 자신의 삶에 동기부여를 하기가 어려워질 것입니다.


애초에 방정식 자체가 고차원이라 풀어내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변수의 숫자까지 많아진다면 점점 더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집니다. 게다가 나 이외의 변수는 내가 통제할 수 조차 없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변수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기까지 합니다. 이를테면 요즘에는 '내가 OOO(보통 대기업)를 퇴사한 이유' 등의 이야기가 각종 플랫폼을 통해서 많이 돌아다니는데 그 이유가 '도대체 왜 이런 시스템으로 조직이 돌아가는지 이해할 수 없어서.'인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렇게 큰 기업집단은 구성원의 숫자도 어마어마하게 많을 것인데, 그것도 우리나라처럼 큰 기업이 한 분야가 아닌 여러 분야의 산업을 장악한 사회에서는 그 시스템을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영역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변에서도 대기업에서 일하는 몇몇 지인들을 보면 그런 이유로 무력감에 빠져있는 경우를 종종 볼 수가 있습니다. 필자와 같이 10여 명 규모로 일하는 작은 조직에서도 사람이 다 다르고 캐릭터가 다 다른데 그런 큰 규모의 조직에서 일한다는 것은 정말로 예상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 속에서 살아가는 삶이지 않을까 생각이 고는 합니다.


물론 필자가 발췌한 [일취월장]에서 설명하는 복잡계에서의 변수는 사람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더 근본적인 의미는 '세상이 복잡해지면 복잡해질수록 어떤 현상을 설명하는 변수가 많아지기 때문에 어떤 변수의 조합이 특정 어떤 결과물을 도출하는지 예측하기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복잡계에서는 운의 영향이 커진다. 따라서 그 운의 선택을 받는 확률을 높이는 방법을 알아야 어떤 성공을 성취하는 확률도 높일 수 있다.' 정도의 의미입니다. 하지만 그 친구가 당시에 느낀 세상에 대한 무력감은 사람의 영향이 지대한 박사과정 연구실에서의 삶으로부터였기에 그 변수는 사람이 절대적이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히려 그 변수가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변수를 더 어찌할 수 없으므로, 더 큰 무력감에 빠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뛰어난 역량으로 자기 삶을 제어할 수 있었던 학부시절을 거쳤기에 그런 무력감을 더 크게 느꼈으리라 생각됩니다.




4. 버가 답이라고들 니다.


세상은 더 고도화되고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럴수록 세상이라는 복잡계를 도통 어떻게 돌파해내야 하는지 감은 더 잡히지 않을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실행에 좀 더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을까 생각도 듭니다. 어쩌면 방정식이 고차원으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그 방정식을 풀어내는 것보다는 그냥 변수에 값을 집어넣어, 거칠게 말해 '뗴려 맞추는'것이 더 현명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정답을 때려 맞추는 박명수(1:20부터) 박명수는 무한도전 시절 상황을 예측하여 행동하기 보다는 본능적인 행동이나 발언을 끊임없이 시도하며 웃음을 터트리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개그맨 박명수 씨는 끊임없는 실행이 왜 중요한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니다. 그는 이미 유명해지고 개그맨으로서의 권위가 높아진 시점에서도 상황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하거나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습니다. 편집 이후의 상황에서도 그런 장면이 보인다는 것은 편집 이전에는 그런 맥락 없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런 무논리 무맥 락에도 불구하고 예능의 홈런성 타구를 치는 것은 또 박명수의 몫이었습니다. 전혀 예기치 못하던 상황에서 터지는 그만의 웃음은 시청자들에게 폭소를 유발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또한 수많은 주변의 편견에도 불구하고 음악인으로서 또 DJ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낸 점도 굉장히 본받을만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끊임없이 실행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를 몸소 보여주는 인물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직장생활을 하면서 유튜브에서 노래하다 부활의 보컬이 된 가수 김동명의 사례도 생각이 납니다. 그는 가수의 꿈을 잃지 않기 위해 유튜브에 자신의 노래를 하나씩 올리다 정동하의 탈퇴로 공석이 된 부활의 보컬을 찾던 김태원에게 '발견'되어 가수로 데뷔하게 됩니다.


유튜브에서 노래하다 김태원에게 '발견'된 부활의 보컬 김동명

어쩌면 김동명의 사례처럼 어떤 성취를 얻는다는 것은 누군가로부터 발견될 준비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축적되어있는 실행의 양이 많을수록 누군가로부터 발견될 확률도 더 높아질 것입니다. 수많은 변수로 이루어진 방정식일지라도 나의 입력값이 높으면 높아질수록 시스템의 결괏값은 나의 입력값에 더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정확한 결괏값을 얻을 수는 없을지라도 양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그 시스템을 휘두를 영향력은 조금씩 더 커질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존버가 답이다'라는 요즘 말이 뜻하는 바도 역시나 같은 의미라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어떤 하나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세상에 흘러 다니는 운을 나의 쪽으로 끓어 당기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스템이 어려워질수록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보다 뭔가를 시도하는 게 더 중요해질 수 있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떤 태도가 그 실행을 가능하게 할까로 이어집니다. 세상이 별로 알아주지 않는 상황에서 뭔가를 실행하는 동기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최근 방영되었던 [대화의 희열]에 출연했던 유시민 작가의 말씀을 동영상으로 인용하면서 이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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