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정말 건강을 되찾고 싶다.

알레르기 성 비염이 가져다주는 인생의 잔혹함

by 글객

몇 년 전인지 기억이 자세하진 않지만 3년 전이라 추정되는 시절에 나는 알레르기 반응 검사를 했다. 등판에 수십 개의 바늘구멍을 내고 시약을 떨어뜨리면 반응이 나타난다. 반응이 심한 시약은 내가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항원이고 아닌 건 아닌 거다. 그때 검사 결과로는 진드기 먼지 동물의 털 곰팡이 등이 '조심해야 할 수준' 정도의 항원이었다. 나머지 것들은 알레르기가 있다고 하기엔 조금 미약한 수준이었다.


시계를 현재로 돌려 오늘 나는 같은 알레르기 검사를 했다. 길게는 1년 정도 호흡하는 것이 계속 불편하여 혹시 호흡기 계통에 문제가 있나 싶어 어제 진료를 받았다가 천식 검사를 권유받았기 때문이다. 천식 검사는 알레르기 검사를 동반했다. 당일에는 담당 선생님이 일정이 안돼 오늘 아침에야 그 검사를 받은 나는 그 선생님의 놀라운 반응을 지켜봐야 했다. 그분의 말에 따르면 반응이 없는 게 없을 정도로 거의 모든 항원에 대하여 수준 이상의 알레르기 반응이 있었다. 이전에 수치가 높았던 항원들은 그 수치가 더 높아져있었다. 선생님은 놀라 나에게 '많이 가려우시죠? 반응이 심하세요'라는 말을 전했다. 엎드려 있어 표정을 보지 못했지만 음성으로만 들어도 조금 놀란 기색이 그대로 전해졌다. 다행히 천식 판정까지 받지는 않았다. 다만 기관지 상태가 천식에 가까워 알레르기 증상이 심할 때는 천식기가 일어난다는 진단을 받았다. 가끔 기침을 참을 수 없을 때가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 거였다. 다행히 폐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고 만성 비염이 증상이 계속 심해져 호흡에 점점 더 큰 문제를 일으킨 것이었다. 알레르기 수치가 치솟은 것이 그런 상태를 설명해줬다.


아픔만큼 잔혹한 게 없다. 인간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느낄 수 없다. 사람이 아무리 아파봐야 다른 사람에게 그것은 쉽게 잊히는 일이다. 그래서 적당히 아픈 티를 내서는 사람들이 내가 얼마큼 아픈지 어떤 심각한 삶의 힘겨움과 마주하고 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나마 같은 질병을 앓았던 경험이 있다면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타인의 인식에 내 아픔이 자리하기 힘들다. 그래서 자기 몸은 자기가 챙겨야 하는 거라고 어른들이 흔히들 말하는 것이다. 참 서러운 말이다. 아픈 건 그 자체로 고독이라는 이야기니까. 아픈 건 아픈 걸 넘어 외로움을 동반한다. 나는 근 1년간 잠드는 게 두려웠다. 극심한 알레르기 성 비염과 관련된 증상으로 아침에 눈을 뜨면 기관지와 호흡기가 다 메말라있는 기분을 느꼈다. 아침은 나에게 하루 중 가장 힘겨운 시간였고 잠은 나를 전혀 회복시켜주지 못했다. 잠은 단지 내 힘겨운 시간을 잊게 해주는 데 불과했다.


난 내 나이 29살에 심한 아홉수를 겪었다. 뭐하나 되는 일이 하나도 없던 그때 나는 길에서 친 형과 카톡을 하다가 울었다.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외톨이 같은 심정에 사뭇혀 있을 때 메시지 창으로 전해온 친형과의 대화는 복받치는 감정에 불을 집혔다. 난 그때가 내 인생 최고의 고비로 남을 줄 알았다.


하나 2019년은 나에게 또 한 번의 아홉수다. 몸이 아픈 것이 삶을 통째로 뒤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절절히 느끼게 해주는 해다. 극심한 비염은 삶의 많은 것을 뒤흔든다. 기억력 감퇴, 집중력 장애, 불편한 호흡, 멍한 정신, 체력 부족, 사물의 인지 감이 흐려지고 언어능력에 타격을 준다. 비염이 만들어내는 삶의 짓눌림은 한 손으로 꼽기 어렵다. 그렇게 순번을 정하여 계속해서 나를 찾아오는 증상들에 계속 휩싸이면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지게 된다.

누군가는 증상이 너무 힘들어 병원을 찾아 울음을 터트린다고 한다. 비염은 정신을 갉아먹기 때문에 한 사람의 인생에 치명적이다.


전체가 질병과의 사투였다고 볼 수도 있는 2019년의 아홉수를 통과하면 나도 건강을 되찾을 수 있을까.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에서 느껴지는 맥락의 부족이 총기가 사라진 나의 정신력을 대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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