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시간과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여느 때와 달리 어제는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오후 출근을 하는 날이었다. 겨울에 바쁜 나날을 보내는 우리 사무실은 토요일에도 오전까지 근무를 하는데 어제는 조금 예외적인 날이라 혼자서 오후 근무를 했다. 하지만 바이오 리듬에 루틴이 생겼는지, 두 눈은 원래 내가 일어나던 시간에 맞춰 떠지고 말았다. 한 달만 전이었어도 극심한 비염 증상으로 인해 기상과 함께 불쾌함이 찾아왔겠지만 몇 주전 알레르기 약을 처방받은 게 도움이 되었는지 요즘은 정말 오래간만에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는 중이다. 덕분에 경쾌한 기운으로 아침을 맞았다. 게다가 부모님은 거의 내 기상과 동시에 볼 일이 있다며 집울 나가 예외적인 시간에, 예상치 못하게, 혼자 집에 남겨지게 되었다.
그렇게 고요한 토요일 오전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 고요함은 습관처럼 쳐다보는 스마트폰을 켜는 것조차 민감하게 느껴질 정도로 순수했다. 나는 방 안에 멀뚱히 서 그 고요를 즐겼다. 뭔가 좋은 생각이 날 것만 같은 기운. 방과 거실 사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그 충만한 기운을 느꼈다. 그 충만함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뭔가가 회복되고 충전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외부의 소리에서 멀어지자 내 안의 소리가 조금씩 들리는 것 같았다. 인간에게 일상에서의 작은 공란이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가 새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내 방 문 뒤에 세워져 있는 기타의 케이스를 벗겨 손에 쥐었다. 종종 그렇듯 겨우 코드만 외울 수 있는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Glen Hansard'의 'Say it to me now'. 한 창 기타를 칠 때만큼 섬세한 연주는 당연히 나오지 않았지만 몇 번을 되돌리며 곡을 연주하자 조금씩 음악에 몰입할 수 있었다. 섬세한 강약 조절이 되지를 않으니 그저 온 힘을 다해 스트로크를 해댔다. 원래 그런 스타일의 곡이긴 하지만 원곡자보다 더 미친 듯이 피크를 휘둘러댔다. 오래 방치해 낡아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으나 짧게 잡은 피크를 기타 줄에 매섭게 휘둘러대니 순식간에 피크 세 개가 작살이 났다. 피크는 작살이 났지만 뭔지 모를 가슴속의 응어리는 풀어져가는 느낌이 들었다.
거의 아무에게도 보여준 적이 없지만 한 때 나는 방구석 기타리스트였다. 기타를 잘 쳤다는 이야기는 전혀 아니지만 나름대로 소리를 섬세하게 컨트롤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말랑말랑한 손끝에서 투박한 연주가 펼쳐질 뿐이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내 안의 감정과 에너지를 누구의 방해도 없이 발산할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가 느껴졌다. 어쩌면 내 안에서는 계속해서 소리가 나오고 있었지만 매서운 크기로 매 순간 들려오는 외부의 소리가 내 안의 소리를 잠식했는지도 모르겠다. 나 만의 공간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그리고 그것을 갈망하는 이유는 아마도 아직 남아있는 내 안에 소리를 누구의 방해도 없이 듣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외부의 소리에 계속해서 매몰되다 보면 내 안에 소리가 있었는지 조차 잊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나만의 공간을 갖지 못했다. 조금은 창피하지만 아직 부모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독립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그것은 나를 잊지 않기 위함이다. 외부의 소리가 완전히 차단될 수 있는 완벽한 나만의 공간. 그 나만의 시간과 나만의 공간이 나는 지금 몹시도 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