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보다는 예스럽고 이발소와는 거리가 먼 사무실 근처 미장원에는 '남자 커트 1만 원'이라는 수기의 문구가 쓰여있었다. 오래간만에 월급이 통장을 스쳐 지나감을 제대로 느낀 직후여서 소비심리가 위축되었던 나는 1만 원이라는 단어에 혹해 주저 없이 미장원으로 들어갔다. 이미 더벅머리가 될 대로 되어버린 상태로 내일 있을 외부 일정을 소화할 순 없었다.
하지만 1만 원이라는 문구 아래 쓰여있는 '샴푸 별도'라는 말을 발견한 것은 가게 문의 손잡이를 쥐어 끌어당기고 난 이후에였다. 문 근처에서야 보일만한 얄궂은 사이즈로 적혀있는 '샴푸 별도'라는 문구. 그것을 알아차렸을 땐 나는 이미 몸의 관성에 의해 미장원으로 입장하고 있었다.미장원 안에는 두 명의 미용사와 두 명의 손님이 있었다. 두 명의 손님 중 서비스를 받고 있는 것은 한 명뿐이었다.나머지 한 명은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었다.
머리를 자르고 샴푸를 안 한다는 이야기는 태어나서 들어본 적이 없다. 영화배우 김보성처럼 허세로 샤워를 한듯한 사내가 이 동네에는 여럿이 존재하는 것일까. "선생님 샴푸는 됐습니다." 쿨하게 머리를 털고 미장원을 나서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득세가 주인 양반의 양심에 불을 지핀 것일까. 그래서 샴푸를 안 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혜택이라도 주고픈 마음에 가격을 내리고 샴푸 값은 별도로 하게 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샴푸 별도'라는 문구는 나에게 있어 참으로 생소한 문구였다.
샴푸 비용은 과연 얼마일까. 천 원? 이천 원? 허심탄회하게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꿈틀댔지만 별로 용기는 나지 않았다. 무언갈 꼬치꼬치 캐묻지 못하는 나에게 있어서 미용실은 그중에서도 가장 자기 존재감이 작아지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머리털은 잘려나갈 터이고, 샴푸를 안 할 수는 없는 노릇. 샴푸 비용을 듣고 머리를 자를지 마를지 결정하기엔 나라는 존재는 미용실 안에서 너무나 미약한 존재였다. 비싸 봐야 2천 원 정도 하지 않을까 하는 자기 위로로, 중년은 돼 보이는 여성 미용사분께 덥수룩한 내 머리를 맡겼다. 머리는 어떻게 해드릴까요? 보통 투 블록으로 밀어요. 몇 미리로 하세요? 9미리요. 간결한 몇 번의 대화가 오간 뒤에 내 머리털은 그녀에 의해 잘려나가기 시작했다.
샴푸 하실 거예요? 3천 원이에요.
하지만 그 샴푸 비용이 무려 3천 원이나 된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2천 원이라는 마지노선에 천원이 오버된 3천 원이라는 금액. 2천 원과 3천 원의 갭 차이는 애교와 사기를 구분 짓는 기준선이었다. 3천 원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당했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결국에 1만 3천 원이면 집 근처의 조금 더 세련된 미용실의 커트 비용보다 천원이 더 비싼 금액이 아닌가. 오분도 안 되는 남자 머리 감기는 일이 한 명에 3천 원이라면 나라도 당장 생업으로 뛰어들고 싶은 기분이다. 3천 원으로 책정된 샴푸 비용의 당위성은 어디서 오는 건가. 쓸데없이 고퀄리티로 마련한 것 같은 전동식 샴푸의자의 구매비용을 뽑아내기 위함일까. 어마어마하게 고급인 샴푸를 사용하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3천 원이라는 수치는 합당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차라리 반대였으면 어땠을까. 1만 원이라는 비용의 현혹 아래 교묘하게 3천 원의 샴푸 비용을 벌어드리는 대신, 샴푸 안 하면 3천 원 할인!이라는 문구였다면 더 기분 좋게 머리털이 잘려나가지 않을까. 다시는 발을 들이지 않을 것 같은 퇴근길의 미장원에서 '아'다르고 '어'다른 게 무엇인지 새삼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