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보 단 둘, 둘 보다는 셋

[ 제주는 언제나 나를 품는다_episode_18 ]

by 글객
7/30(목) - DAY 4_3



#47


자리에 앉아 30분이나 한 시간 정도 책을 읽었을까. 언제였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한담 해변 앞바다에 카약을 타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카약 이용은 30분이니 11시가 조금 넘어 카페를 나가면 12시경에 점심을 먹기에 충분하다고 생각을 했다. 음료는 다 마셨지만 머핀은 조금 남아있어서 전날 카페에서 대파브래드를 포장했던 봉지에 남은 머핀을 담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겨 카페를 빠져나왔다.


좀 전과는 다르게 해변은 활력이 돌고 있었다. 그리고 해변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절벽 위에서 카약 운영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손에 봉투를 들고 배낭을 멘 채 뚜벅뚜벅 그곳으로 걸어간 후 인터넷으로 예약한 페이지를 보여주자 주인은 간략한 절차를 소개하고 장비를 챙겨주었다.


" 저쪽 바구니에 신발 벗어서 넣어두시고 슬리퍼로 갈아 신고 오세요. "

" 가방 보관할 곳은 없나요? "

" 가방은 여기 테이블 위에 올려두시면 됩니다. "


그 말 그대로 가방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바구니에 수북이 담긴 슬리퍼로 신발을 갈아 신으니 주인이 구명조끼를 건네주었다. 조끼 구멍에 자연스럽게 팔을 집어넣고는 클립 버클을 딸깍 딸깍 잠그니 이번에는 주인이 아랫도리에 치마 모양의 천을 둘러주었다.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카약 안쪽으로 물이 튀어 바지가 젖는 것을 방지할 목적이었다.


세팅을 끝낸 후 절벽을 돌아 내려가 선착장 역할을 하는 해안으로 가니 건장한 남성들이 내려오는 손님들을 교대로 맞이하고 있었다. 그중 나를 맞이한 한 남자는 자갈밭에 정박(?)되어 있는 2인승의 카약 하나를 끌고 오더니 뒷자리에 나를 앉게 하고는 간단한 설명을 들려주었다.


" 바다에 나가시면 멀리 빨간색 부표가 보이실 텐데요, 부표 바깥으로는 나가시면 안 됩니다. "


안내를 마친 남자는 내가 앉은 카약을 물 쪽으로 힘차게 밀어줬다. 작은 만처럼 되어있는 해안이라 남자가 카약을 민 방향은 바다 쪽이 아니라 절벽 쪽이었다. 그렇게 밀린 카약의 방향을 먼바다 쪽으로 돌리는 것부터가 체험객이 짊어져야 할 작은 책임의 시작이었다.



#48


좌우 끝에 플라스틱 물갈퀴가 달린 노를 양손으로 잡고 번갈아가면서 저으니 배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사실 살면서 노를 저어본 일이 있었는지 싶었다. 카약을 탈 생각만 했지 노를 젓는 아주 구체적인 느낌까지는 상상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물론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그런 장면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대략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는 인지가 된 상태였겠지만 노를 젓는 힘의 세기랄지 아니면 팔의 위치나 각도 등과 같이 디테일한 부분은 직접 체험하며 익혀야만 했다. 몇 번 노질을 해보니 노를 잡는 양손의 높이는 가슴 정도를 유지하는 게 좋아 보였고 그 위치를 축 삼아 대칭으로 엑스자를 만드는 느낌으로 노를 저으니 뭔가 균형을 이루는 기분이 들었다.


혼자서 카약을 타고 노질을 하는 것에는 꽤 오묘한 부분이 있었다. 그건 어쩔 수 없이 배가 갈지자를 그린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양쪽의 노질을 동시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건 둘이서 노를 젓는다면 겪지 않을 일이었다. 둘이서 앞 뒤로 배를 타고 한 사람이 왼쪽으로 노를 저을 때 다른 사람이 오른쪽으로 노를 저으면 자연히 힘의 균형이 맞기 때문에 배가 앞으로만 가겠지만 혼자서는 그렇게 보조를 맞춰줄 사람이 없었다. 노를 너무 세게 저으면 배가 좌우로 크게 출렁거렸다.


CB mass 시절 '혼자 보단 둘, 둘 보다는 셋'을 외치던 최자개코는 커빈과 작별하며 다이나믹듀오가 된 후에 '셋보다 나은 둘'을 외쳤다. 카약을 타는 것도 그랬다. 혼자서는 뜻하지 않아도 비효율이 추구됐다. 혼자 보다는 둘이 낫고, 셋 까지는 불필요한 일이었다. 세상에는 그런 일이 많다. 둘이 하면 금방 해낼 일을 혼자서는 서너 배로 애를 써야 완성할 수 있는 일들. 또, 둘이면 충분하지만 셋이면 뭔가 부산스러워지는 일들 말이다. 혼자 살아도 화장실이 하나는 있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둘이 산다고 화장실이 꼭 2개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혼자임은 꽤나 비효율적임을 생산한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을까 싶다. 처음 차를 사고 혼자 어딘가를 갈 때면 4~5인승의 자동차를 혼자 영위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치를 품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종종 하고는 했다.



#49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순간에 누군가를 몹시 그리워하지는 않았다. 너무 약하지도 너무 강하지도 않은 노질의 세기를 대충 알게 되자 중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제법 속도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슈퍼 파워를 발휘하며 팀워크를 통해 앞으로 세차게 나아가지는 못해도 혼자서 유유자적 하기에는 충분했다. 사자성어 유유자적에서 세 번째 글자인 스스로 자자 조차 혼자임을 뜻하지 않는가. 여유는 혼자일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해안에서 너무 멀지 않은 범위 내에서 카약을 타고 이곳저곳을 누볐다. 육지에는 조금 전 시간을 보낸 봄날 카페가 보였고 하늘은 몹시도 파랬다. 그 파란 하늘을 듬성듬성 채우는 흰색의 구름들은 일부러 그래픽 효과를 넣은 것처럼 하늘색에 자연스럽게 섞여있었다.


해안가 인근의 바다는 하늘과 같이 파란색을 뗬지만 조금 더 바깥의 바다는 애매랄드 빛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그 둘은 명확한 구분선을 만들고 있었다. 애매랄드 빛 바다는 여기가 더 먼바다라는 것을 자신의 색으로 말하는 듯 보였고 그 중간에는 내 카약을 힘차게 밀어줬던 남자가 말한 빨간색 부표가 두둥실 떠있었다. 파도에 따라 위아래로 출렁이지만 계속 고정된 자리를 사수하고 있는 빨간색 부표는 비록 생물은 아닐지라도 그 조차 유유자적함을 느끼는 듯이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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