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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러먹은 세상을 기본값으로 두어요

by 글객

성인이 되면서 혼란스러운 것 중 하나가 세상이 굉장히 복잡하다는 것이다. 세상은 모순으로 가득하다. 명확한 정답이 없다. 계산이 안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마음대로,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한 사람이란 완벽하지 않은 존재이기에 모두 그 안에 어떤 모순성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고 그렇게 모순을 가지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뭉쳐 살아가는 세상은 앞뒤가 안 맞고 어딘가 어그러져있다. 어그러져있는 상태로 굴러가는 것이 세상이다. 태초부터 그렇게 하자가 가득한 상태로 굴러가기 시작한 것이 세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어려서의 세상이란 비교적 더 선명하고 명확하다. 어떤 성취를 이룰 때도 INPUT과 OUTPUT이 꽤 비례하는 경우가 많고 역할, 임무, 목표, 비전도 더 간결하다. 내 정신과 생각과 에너지가 나를 둘러싼 세상에 비해 그리 꿀리지 않기 때문에 그 세상을 판단하고 해석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른이 되어 진짜 세상에 나가보면 나보다 먼저 어른이 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그 세상이란 어딘가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심정이 생기게 된다. 누구나 어린 날을 그리워하게 되는 이유는 그 세상이 가지고 있었던 간결성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돌이켜보면 오히려 세상이란 원래 이렇게 생겨먹은 것이구나 생각이 든다. 성인이 될 때 거짓된 세상을 제공받는 것이 아니라 그전에 각색된 세상을 제공받고 있었던 것. 마치 세트장 안에서 살아가는 영화 트루먼쇼의 트루먼처럼 제한된 영역과 제한된 상황에서만 살아가고 있었던 것. 조작된 세상 속에서 살아갔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기획된 세상 속에서 살았다는 것. 영화 속 트루먼을 볼 때 아이들을 보는 것처럼 어딘가 어리숙함이 느껴지는 이유, 어른들이 아이들을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는 것과 트루먼쇼 속 감독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트루먼을 보면서 똑같이 흐뭇한 미소를 짓는 이유는 그들이 결국 같은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제한된 영역과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내뿜는 순수함. 그것이 그들을 웃음 짓게 만들었을 것이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그런 기획된 세상을 제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기 스스로 진실을 알아차리고 세트장을 탈출한 트루먼처럼 결국은 모두가 원래 모습의 세상을 마주하게 될 운명인데도 말이다. 그 마지막 장면에서 영화 속 감독은 트루먼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넌 진짜 세상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모른다고. 네가 살고 있는 세트장이 훨씬 더 행복한 세상이라고. 허나 그 말을 듣고도 트루먼은 세트장 밖으로 걸어 나간다. 결국은 우리도 이 난잡한 세상 속으로 흘러들어 갈 운명인 것처럼.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트루먼은 모든 것을 스스로 깨달은 후에 진짜 세상 속으로 나갔지만 우리에게는 세상 속으로 나가야 하는 시점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깨달았든 그렇지 않았든 간에 말이다. 세상에 대한 혼란스러움은 세상에 나옴과 깨닫지 못함의 괴리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모순과 형편없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그 괴리를 좁힐 수가 있다. 어린 날의 세상은 누군가가 만들어 둔 그럴듯한 기획상품이다.


세상이란 원래 이렇게 생겨먹었다. 하지만 나 자신도 나 아닌 사람도 모두 불완전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세상이 형편없다는 사실은 그리 억울할 일도 아니다. 도리어 세상의 모순을 기본값으로 두어야 그나마 괜찮은 일과 그나마 괜찮은 사건과 그나마 괜찮은 상황 속에서 그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기대가 높으면 실망도 큰 것처럼 세상에 대한 이상이 높으면 모든 것이 부족함으로만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모순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진짜 세상 속에서 살아갈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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