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김태원은 리더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두 개를 주고 하나를 받는 것에 익숙해져야 하고 세 개를 주고 하나도 못 받는 것에 더 익숙해져야 하는 것이라고. 손해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는 자리가 리더라는 말이었다.
관계에 있어서도 내가 조금 손해 본다는 태도로 살아가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한다. 주는 것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받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과 결과적으로 같은 의미를 갖는데 그래야만 아상에서 벗어나는 측면이 있다. 기대를 한다는 것은 돌려받을 수 없는 빚을 늘리는 것과 같다. 상대는 돌려줄 생각이 없거나 돌려줄 형편이 아닌데 그것이 당장의 나의 재산인 것처럼 생각하거나 행동할 수 없는 것처럼 준만큼 돌려받겠다는 태도는 허망함을 낳는다. 그래서 주기로 마음먹었다면 애초에 주는 것 자체에서 만족해야 하고 그렇지 못할 바에야 애초에 주지 않는 편이 낫다. 사람은 받은 것을 준 것만큼은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더 주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오히려 균형이 맞춰지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나저러나 주는 것에 더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연인관계에서는 이런 태도가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매분매시 무엇인가를 주고받아야 하는 가까운 관계에서는 애초에 그 매 순간의 주고받음에 수지타산을 맞출 수도 없거니와 사람이란 무릇 변하기 어려운 존재이기에 불균형을 발견한다고 한들 근본적으로 그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 그래서 주는 것에서 끝내는 게 연인관계의 두 사람 모두에게 더 현명한 태도다. 최수종 하희라 부부가 서로를 서로의 자식으로 생각한다고 말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서로가 서로에게 절대자를 자처하는 것이다.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에서 김지원이 사회 속 모든 관계에서 신물을 느낀 후 손석구를 찾아가 자신을 추앙하라고 말하는 것은 되돌려줄 필요가 없는 절대적인 존재가 한 사람의 인생에서 얼마큼이나 필요한 것인지를 절절하게 말해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런 절대자의 역할을 누군가에게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내가 먼저 절대자가 돼주는 미덕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나를 추앙하라고 말했던 드라마 속 김지원도 결국은 자신이 손석구를 추앙하기를 선택했다.